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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묻고 엄마의 인생이 답하다' 여섯 번 연재 동안 광주항쟁에서 위안부 이야기까지 작가 윤정모가 어떻게 그 사건들에 관여되었고, 활자로 남겼는지에 관해 쓰게 되었다.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던 분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고, 그 시절을 겪은 분들은 '말도 안 되지만 우리가 겪은 일'이라며 다시금 1980년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다면 엄마 윤정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는 인세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삐 베스트셀러
▲ 고삐 베스트셀러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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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윤정모를 소설 <고삐>의 작가라고 소개하면 40대 이상의 분들은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이 장편 소설은 정인이란 여성의 삶을 통해 매춘과 외세와의 관계, 한 인간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민족사를 만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988년 풀빛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소위 대박이 났다. 나는 엄마랑 가끔 출판사에 갈 때면 나병식 사장님이 보여주던 장부에 기록된 일일 판매량을 아직도 기억한다. 책은 하루에도 몇천 부에서 몇만 부씩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렇게 많이 팔렸는데도 사치를 부려본 기억이 없어 한 번은 엄마에게 물어본 적 있다.

"그 돈은 다 어디 갔을까?" 
"그때 양심수 후원회, 민가협 등 운동하는 데 다 가져다 줬잖아." 


민가협은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로 양심수 가족들의 모임이었다. 엄마는 그 부모들과 친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가 있는 아들, 딸을 위해 엄마는 자신의 인세를 썼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를 괴롭게 하는 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고삐>를 읽었다는 이유로 군대에서 구타를 당했다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존재했다. 그중에는 고막이 파열된 이도 있었다. 그런 죄책감에 엄마는 인세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고삐> 출판 후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자주 나왔다. 길거리를 다닐 때면 사람들이 다가와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심지어 시골에 살 땐 집 앞에 독자들이 진을 치고 있기도 했다.

전화벨이 밤낮으로 울려대자 엄마는 글을 쓸 때나 우리가 잠에 들 때면 전화기 코드를 빼놓았다. <고삐>는 엄마를 정신없이 만들었다. 바쁜 시간에도 엄마에겐 데모가 먼저였다. 데모를 마친 후에야 일정을 소화했다.

"부당한 것에는 두 번 생각할 이유가 없었어"
 
당찬 엄마 윤정모
▲ 당찬 엄마 윤정모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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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실제로 보면 키도 작고 아담하며 어떤 각도로 봐도 드센 느낌이 없다. 도리어 집에서는 작은 일에도 고민이 깊고, 사소한 실수에도 자책하는 사람이다. 밀크캬라멜을 좋아하고 맥주 몇 잔에 취하는 여느 엄마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1980년대 당시 엄마의 삶은 용감했다. 어떤 일을 도모할 때나 시위 현장에 늘 앞장섰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대한 질문에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다.

"부당한 것에는 두 번 생각할 이유가 없었어."
 
고삐 소설 옛날에는 활자가 이랬구나
▲ 고삐 소설 옛날에는 활자가 이랬구나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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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혼돈을 우리 가족도 비껴갈 수 없었다.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대부분 대한민국 국민과 같이 우리 집도 망했다. 여전히 엄마를 찾는 사람은 많았지만 돈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성인이 된 나는 사람들이 엄마를 알아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가끔씩 엄마에게 다가와 헛된 희망을 심어주고 외면하는 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엄마는 '다 그럴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하고 말았다.

그 많은 베스트셀러와 누적된 판매량에 대해 받지 못한 돈이 있을 것 같아 알아봤지만, 출판사가 망하거나 장부 정리가 제대로 안 돼 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강연이 있어도 강연비가 없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엄마는 묻지 못했다. 다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그런데도 엄마의 창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책을 냈다. 하지만 성적은 변변치 못했다. 이 가운데서도 엄마는 잘 안 되는 본인보다 이름조차 잊혔을 많은 동료와 후배를 걱정했다. 창작의 욕구를 어디에서 어떻게 해결하며 살고 있을지.

이제 엄마의 소원은 다달이 나가는 집세 걱정 안 하면서 독서를 실컷 하는 것이다.

"나는 사후에 내 작품이 남을까봐 걱정되는 사람이야. 책 억지로 내서 주변 사람들한테 사서 읽게 만드는 민폐 되는 인생이 제일 무서워."
"엄마는 엄마를 어떤 사람이라고 하겠어?"

"극복의 과정조차 혹독했던 사람."

한동안 무거운 공기가 공간을 꽉 채웠다. 갑자기 엄마가 킬킬 거리면서 쑥스럽게 말한다.

"시인 이상국, 상국이가 나한테 붙여준 별명이 있어. 나더러 '철 안 드는 영혼'이래."

평생 벗으로 지내고 있는 엄마와 나는 좋고 때로는 나쁜, 비참하다가도 어떨 땐 괜찮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작가 윤정모로 신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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