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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와 2019년 홍콩 사진 닮은 꼴'. 1980년 광주와 홍콩의 시위 진압 사진을 대비시켜놓은 기사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홍콩으로 가야 하는 건지 고민할 틈도 없이 이미 나는 항공권 예약을 마치고 있었다.

나는 홍콩 시민들에게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홍콩이라는 공간에서 시민들이 누려오던 자유를 박탈당하고 언제든 중국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폭력 경찰 앞에 선 당신들을 전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으며, 언제든 함께 하고자 한다고. 그들에게 말하기 위해 홍콩역 앞으로 가야했고, 그들과 같이 길 위에 서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 홍콩에 관심이 많다거나 그곳을 자주 여행한 것도 아니었다. 난 한 번도 홍콩에 가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현지에서 함께 할 친구가 필요했다. 소셜미디어에서 홍콩 시위 관련 검색을 해보니 '홍콩 정부와 경찰이 취재를 방해하고 있다'면서 '몇 명의 통역사가 있으니 연락 달라'는 글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메시지를 보냈고, 홍콩에 도착하면 '검은옷 행진'을 함께 할 신디(Sindy)와 만나기로 했다.

16일 홍콩역에 도착한 나는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신디(Sindy)와 의사인 시니(Shnnie)를 만났다. 우리 셋은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까지 송환법에 반대하는 '검은옷 행진'과 저녁 추모집회를 함께 하기로 했다.

완차이역에서 '검은 옷 행진'을 시작하다
 
량링제를 추모하는 휴지 국화꽃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 16일 완차이역 인근에서 한 시민단체가 전 날 투신자살한 량링제씨를 추모하기 위해 휴지로 국화꽃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량링제를 추모하는 휴지 국화꽃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 16일 완차이역 인근에서 한 시민단체가 전 날 투신자살한 량링제씨를 추모하기 위해 휴지로 국화꽃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김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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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30분 예고됐던 빅토리아 파크에서 입법회 건물까지의 100만 행진이 경찰의 도로 봉쇄로 막히자 우리는 홍콩역에서 완차이역으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역에 들어서자 수많은 '검은 옷' 시민들이 역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민들은 입법회 건물 인근 완차이역으로 모여들었다. 경찰 대응 상황은 모두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고 있었고, 시민들은 이에 맞춰 유동적으로 움직였다.

'검은 옷 시민'들 사이로 어렵게 완차이역을 나오는 순간 헤네시대로(Hennessy Rd)에 꽉 들어찬 '검은 옷 시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주 시위의 드레스코드는 '흰 옷'이었는데 오늘은 '검은 옷'이었다. 이른바 '검은 옷 행진'. 하루 전 사망한 35세 청년 량링제씨를 추모하기 위함이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한 꽃을 들고 대열에 선 시민들도 꽤 보였다. 한켠에서는 시민들이 휴지로 국화꽃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대열에 들어서자 눈 앞에 보인 것은 "학생들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피켓이었다. 지난 12일 경찰이 최루액과 함께 고무탄을 쏜 것에 대한 항의였다. 함께 걷던 신디는 "경찰이 고무탄을 쏠 때 하반신이 아닌 상반신을 노리고 쏘았다"면서 얼굴에 고무탄을 맞은 시위대 사진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시민은 '최루액 발사하지 말라. 우리도 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라는 피켓을 들고 행진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미 송환법은 통과됐을 것"

우리는 행진 대열에 합류해 행진을 시작했다. 한쪽 단상에 선 여성이 부상자들을 위한 모금을 독려하고 있었다. "6월 9일과 12일 시위에서 젊은이들이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에 부상당해 병원으로 가거나 경찰서로 붙들려 갔습니다. 기금을 모아 그들에게 보내려 합니다. 그 학생들이 없었다면 송환법은 이미 통과됐을 것입니다"라며 연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모금함은 이미 지폐로 가득했고, 행진 대열 속 시민들은 계속해서 모금함으로 손을 내밀었다.
 

완차이역 인근 사우손 축구장(Southorn Playground) 앞에서는 캐리 람(Carrie Lam) 행정장관 학교 동문 30여 명이 모여 "당신과 함께 학교를 다닌 것은 치욕"이라면서 강력하게 사퇴를 종용했다. "이번 시위는 조직된 폭도들이 벌인 짓"이라는 람 장관의 발언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었으며, 행진 곳곳에서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외침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었다.
 
조심스럽고도 천천히 행진하던 시민들이 갑자기 한바탕 웃어댔다. 누군가 '캐리 람은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서 "행정장관 캐리 람은 좋은 어머니인가"라고 연신 외쳐대고 있었다. 반대 시위 초기 시위대를 '떼쓰는 아이'라며 힐난한 람 장관을 겨냥한 것이었다. 행진 대열 이곳저곳에서 "확실히 그녀는 좋은 엄마는 아니지"라고 화답했다.

곳곳에서 식수와 간식 등 나눠... 80년 광주 연상케 해

8시간 넘게 예정된 '검은 옷 행진'과 추모집회에 대비해 물과 간식을 구입한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여러 시민 단체들이 물과 물수건, 간단한 간식 등을 준비해 곳곳에서 시위대에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놀라웠던 건 행진 대열 속에 있던 시민들이 자신들이 준비한 여분의 물과 음료를 아이스박스에 채워 넣는 장면이었다. 마치 1980년 광주의 '주먹밥 공동체'가 2019년 이곳 홍콩에서 재현되고 있는 듯 했다.
 
상하이 산업투자 빌딩을 지나 교회 앞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중간중간 시민들을 향해 "행진을 하다 힘들면 교회로 와서 쉬어도 좋다"고 말했다. 우리 셋은 교회로 들어갔다. 6층짜리 교회 안에서는 식수 제공은 물론 휴대폰 충전 등을 할 수 있도록 휴식 공간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모든 층의 화장실을 개방하는 것은 당연했다.

교회에서 휴식을 취한 뒤 나와 신디, 시니 세 사람은 다시 행진 대열 속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단체에서는 물과 의약품을 준비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의사인 시니(Shnnie)도 자신의 가방을 벗어 내려놓았다. 꽤 무거웠던 가방 속에는 혹시나 모를 부상자에 대비해 거즈며, 소독약이며 각종 의약품이 들어있었다. 시니는 이곳 텐트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료품을 모두 건네주었다.

"오늘 시위는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것"

행진 대열의 중심에서 아들과 딸을 데리고 나온 가족을 보고 우리는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최루액과 고무탄이 날아들던 시위현장에 8살, 9살짜리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나오는 아버지라니. 오늘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다는 아버지 도날드(Donald)는 "홍콩 사람들은 모두 이성적이고 오늘은 위험하지 않다"면서 오늘 시위에 나온 이유를 묻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며,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의 마음을 알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신디는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오늘은 아버지의 날이야."

퀸즈웨이(Queensway)에 다다를 즈음 시위대 분위기가 차분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바로 어제 15일 저녁 35세 청년 량링제씨가 송환법에 반대하며 투신 사망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시민들은 가지고 온 꽃을 도로변에 쌓아 그를 추모했다. 수 많은 꽃들 속에 놓여있는 '앞으로 남은 길은 우리가 가겠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적힌 포스터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편 헌화 행렬 한쪽에서는 한 남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화가 페리 디노(Perry Dino)는 "그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워 이곳에 나와 현장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서 "민주화 되는 것을 꼭 봐야하니 그 전에 절대 죽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페리 디노는 2014년 우산혁명 때도 79일간 25개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공권력의 폭력과 시민의 비난, 무엇이 더 나쁜가"

홍콩 민주화 현장을 지키던 예술가와 조우를 마치고 우리 세 사람은 티머 스트리트(Tamar St)를 지나 정부청사 건물에 다다랐다. 이곳은 시민들과 충돌을 피하겠다는 홍콩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듯 경찰 30여 명만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었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얼마 안 지나 주로 젊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더욱이 시위대 바로 뒤편은 인민해방군 주 홍콩부대건물이었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비난과 조롱이 계속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찰에 대한 비난 강도가 높아지자 우리 앞에 있던 네 가족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감싸면서 말했다. "시민들이 경찰을 비난하는 게 나쁜 걸까, 아니면 경찰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쓰는게 나쁜 걸까." 아이들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던진 물음은 아이들의 가슴 속에 평생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내 마음 속에도.

☞ [참가기 ②] 홍콩 청년들 "우산혁명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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