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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진석 사진작가가 지난 2월 26일 '고려인의 길' 취재에 나섰다.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고려인의 기차 이동 경로를 거꾸로 달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지금은 모스크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거친 뒤 러시아 사할린과 캄차카의 고려인을 만날 예정이다. 김진석 작가의 '고려인의 길' 연재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단독으로 게재한다.[편집자말]
우크라이나 태권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알렉 남 관장. ⓒ 김진석
 
지금까지 출전한 태권도대회의 출입증. ⓒ 김진석

아제르바이잔 취재를 마치고 우크라이나로 왔다.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는 약 2만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특히 5년 전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으로 내준 크림반도에만 3000~4000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크림반도 지역은 현재 여행철수 권고 지역으로 한국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돼 있다. 그밖의 남부 하리손과 현재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에도 많은 고려인이 이주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우선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Kiev) 시에 있는 고려인 식당 '아리랑'을 찾았다. 이 곳 식당 주인이 고려인이다. 그를 통해 알렉 남을 소개받았다.

키예프 외곽의 어느 주택 단지. 비슷해 보이는 건물 탓인지 몇 바퀴째 헤매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알렉 남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을 찾을 수 있었다.

태권도장은 여느 도장과 마찬가지로 열기과 땀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10여 명의 선수들과 학생들이 숨을 몰아쉬며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 가운데서 알렉 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려인 3세 태권도 사범, 알렉 남

알렉 남은 1974년생이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태어났다. 알렉 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937년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해 왔다. 알렉 남은 고려인 3세인 셈이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과 태권도를 좋아했던 알렉 남은 30년 전 지금의 부인인 도라 남과 함께 이곳 우크라이나로 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고, 좀더 많은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단다. 

당시 소련이 해체되고 난 뒤 중앙아시아의 많은 고려인들이 이곳 동유럽쪽으로 이주했다. 알렉 남 역시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알렉 남은 우크라이나에 오래 머물 생각이 아니었다. 열심히 운동하고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게 되면 부모님이 계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단다.

"고민이 많았어요.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려고 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몇 년만, 몇 년만하다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우크라이나 태권도 선수들의 연습 장면을 지켜보는 알렉 남 관장. ⓒ 김진석
 
우크라이나 태권도 선수들의 연습 장면을 지켜보는 알렉 남 관장. ⓒ 김진석
 
그는 우크라이나 태권도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알렉 남이 운영하는 '래인저 도장'에는 우크라이나 태권도 선수 15명과 일반 회원 300여 명이 다니고 있다. 특히,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노몰다노바 이리나 선수도 알렉 남 관장의 제자다. 

"(노몰다노바 이리나 선수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금메달을 획득했으면 좋았겠지만, 은메달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처음이었거든요."

알렉 남 관장은 선수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거론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비록 시설과 투자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우리에게는 목표가 있어요. 바로 2020년 도쿄올림픽의 금메달이에요. 내가 젊었을 때 아낌없이 도움을 준 우크라이나에 금메달을 안겨주고 싶어요."

목표는 제자들의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

태권도장에는 알렉 남 관장 말고도 다른 사범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선수 출신이며 태권도 4단이다. 

"우리 도장 출신이고 제 제자입니다. 지금은 저를 도와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 그리고 제 며느리이기도 합니다."

알렉 남은 크게 웃으며 며느리 야나를 소개했다. 

사연은 이렇다. 알렉 남 관장의 아들 바룩 남(28세, 태권도 4단) 역시 태권도를 배우고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야나와 바룩 남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운동을 시작했는데, 알렉 남은 둘이 연애하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연애는 선수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는 연애를 금지했었다는데.

"어느 날, 둘이 찾아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놀랐지만, 음... 뭐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은 이렇게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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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태권도 선수들과 함께 기념촬영. ⓒ 김진석
  
아들 바룩 남과 며느리 야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한 알렉 남 관장. ⓒ 김진석
태그:#우크라이나, #알렉남, #태권도, #고려인, #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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