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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섬 나라'인 신안에 가려져 고흥이 '섬의 고장'이란 사실이 묻혔다. 고흥에는 유인도 23개, 무인도 207개로 무려 230여 개의 섬이 있다(고흥군 통계 2016년 기준). 그 섬들 중 핫한 섬이 있다. 올차게도 미술 전시가 상시로 미주알고주알 열리는 연홍도, 자연이 만든 힐링의 성지 쑥섬(애도)이다.
 
힐링파크 쑥섬(애도) 제1호 민간정원이자 힐링의 성지인 쑥섬이다. 섬 정상에 조성된 비밀의 화원은 300여 종류의 꽃들이 계절별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이다. ⓒ 최정선

섬 전체가 작은 미술관인 연홍도는 고흥의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이 섬은 2015년 '가고 싶은 섬' 사업 일환으로 섬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나 섬에서 얻은 재료로 작품을 연출한 점이 놀라웠다.
 
1996년 섬에서 육지가 된 나로도는 고흥의 지명도를 더 높인 곳이다. 우주 발사대로 우주시대를 개막한 주인공이다. 처음 나로도라는 단어를 읽고 한글인가 의심이 들었다. 조선 때 말 목장이 있어 '나라 섬'이라 불렸던 지명의 발음이 변한 것이다. 장황한 설명은 나로도의 부속 섬인 쑥섬(애도)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 섬은 고흥의 민간 정원으로 여러 방송에서 소개됐지만 그래도 가려 있는 고흥의 보물이다.
 
짭짤한 기운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길고 긴 여름이 막 시작된다. 여름의 매력은 화려한 꽃과 녹음이다. 여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남도의 끝, 고흥 연홍도와 쑥섬(애도)으로 향해 보자.
 
꿈꾸는 작은 미술관, 연홍도
     
섬, 자체가 미술관인 연홍도 걷는 길마다 카메라 세례를 안 할 수 없다. 마을 전체를 수놓은 정크아트는 동화 세계로 온 듯 착각을 들게 한다. ⓒ 최정선
 
소록대교와 거금대교를 건너자 신양 선착장이 나온다. 선착장에서 뱃길로 5분 정도 있는 연홍도는 작은 섬이다. 300년 전 밀양 박씨가 연홍도에 들어온 이후, 1980년대에는 김 양식으로 900여 명이 거주할 정도로 황금기가 있었다. 여타 섬들이 비슷하듯 연홍도의 수산업 쇠퇴로 현재 51가구 82명 주민이 산다.
 
섬 모양이 말을 닮아서 마도(馬島)로 부르다가 1921년 바다에 떠 있는 연(鳶)과 같다고 해서 연홍도(鳶洪島)가 됐다. 그 후 거금도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로 '이을 연(連)'으로 바뀌었다.
 
연홍도에 닿는 순간 하얀 소라와 자전거에 올라타 바람개비를 돌리는 아이들의 조형물에 눈이 멈춘다. 초입부터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섬이란 느낌이 든다. 고흥의 '지붕 없는 미술관'이란 아우라가 생긴 건 연홍도 공이 큰 듯.
 
한땐 고흥 주변에 흩어져 있는 230여 개 섬에 묻혀 연홍도를 아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섬이 미술관으로 변모하자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홍도의 정크아트 섬 전체가 작은 미술관인 연흥도는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나 섬에서 얻은 재료로 작품을 연출한 점이 놀랐다. ⓒ 최정선
 
선착장에서 출발해 마을을 통과하는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골목 곳곳이 정크아트로 꾸며져 있다. 걷는 길마다 카메라 세례를 안 할 수 없다. 벽화는 동화 세계로 온 듯 착각하게 한다.
 
어느새 작은 쉼터가 있는 해변에 도착했다. 작은 섬이지만 둘레길은 꽤 긴 것 같다. 남쪽의 '아르끝'에서 북서쪽의 '좀바끝'까지 조성된 둘레길은 대략 4㎞로 족히 2시간은 바삐 걸어야 한다.
  
바다와 어우러진 은빛 물고기 조형 프랑스 설치미술가 실뱅 페리에(Sylvain Perrier)가 작업한 은빛 물고기 조형물에 마음이 빼앗겼다. ⓒ 최정선
 
프랑스 설치미술가 실뱅 페리에(Sylvain Perrier)가 작업한 은빛 물고기 조형물에 마음을 빼앗겼다. 바다의 윤슬에 반짝이는 조형물이 주는 미학은 느닷없는 감동으로 물결친다. 닿을 듯 말 듯한 물고기 조형물을 한참 바라봤다.
 
연홍 미술관은 폐교를 개조한 곳으로, 선호남 관장의 땀으로 일궈 낸 미술관이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미술관이 파손됐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 보상처럼 2015년 전라남도가 선정하는 '가고 싶은 섬'에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노력이 열매를 맺은 결과다.
 
미술관의 정원에서 휴식하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좀바끝으로 향했다. 희뿌연 시멘트 임도를 따라 걸었다. 중간에 좀바끝에서 돌아오는 동료와 마주쳤다. 혼자 걷는 길이 지루해 시간을 가늠해 보고자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요?"
"금방입니다. 얼른 가보세요. 후회 안 할 겁니다."

 
툭하고 던진 말에 힘을 내 계속 걸었다. 시멘트 임도가 끝나고 흙길이 나왔다. 갑자기 '과연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공포가 엄습해 왔다. 그래도 용기 내 좀바끝 방향의 곰솔 길을 걸었다. 2층 정자가 보였다. 다행히 두 명의 동료들이 그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좀바끝의 2층 정자 정자에서 본 풍광은 제멋대로 너부러진 나무 때문에 꽝이다. 소나무에 가렸지만 멀리 거대한 기암절벽이 시아로 들어온다. 그나마 후박나무 방풍림처럼 아기자기한 멋을 풍겨 마음을 달래줬다. ⓒ 최정선
 
기대와 사뭇 달라 후회막급 해졌다. 고생한 만큼 볼 것이 없다. 제멋대로 너부러진 나무에 막혀 풍광이 꽝이다. 소나무에 가렸지만 멀리 거대한 기암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후박나무 방풍림이 멋스러워 마음을 달래줬다.
 
다시 선착장으로 가는 길은 소원 오름길을 선택했다. 가는 길에 마주한 300살 팽나무와 인사를 마지막으로 연홍도를 떠났다.
 
- 신양 선착장 1일 7회 운항(5분 소요)
- 탐방길: 연홍도 선착장 – 마을 골목 벽화길 – 작은 쉼터 – 아르끝 해안길- 연홍도 미술관- 좀바끝(정자) – 소원 오름길 – 팽나무 – 선착장


제1호 민간정원이자 힐링의 성지, 쑥섬
 
나로도의 바깥 섬인 외나로도. 그곳의 나로도 여객선터미널에서 쑥섬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나로도 항에서 쑥섬을 거쳐 사양도로 오가던 여객선의 운항 중단으로 현재 12인승 작은 배가 운행 중이다.
  
갈매기 카페 갈매기 카페와 헐떡거리며 걷는 길을 지나 원시 난대림으로 조성된 당산 숲으로 들어갔다. ⓒ 최정선
 
애도를 섬 주민들은 굳이 '쑥섬'이라 했을까? 그 답은 김상현 교사의 설명에서 찾았다. 울릉도가 쑥이 유명하지만, 그보다 쑥이 향긋하고 맛이 찰지다는 섬 주민 자부심에서 '쑥섬'이란 명패를 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 '애(愛)'가 아니라 쑥빛 '애(艾)'가 입도 초입의 석간판에 새겨져 있다. 쑥섬 앞바다가 평온한 호수 같아 봉호(蓬湖)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쑥을 사랑한 주민들의 건의로 2010년 애도(艾島)로 명칭이 바뀌었다.
 
나로도항 대기실에 만난 김상현 교사는 쑥섬의 전파자다. 쑥섬의 정상(해발 80m)에서 10여 년이 못 되게 정원을 가꾼 주인공이다. 그의 부인 고채훈 약사도 힘을 합해 쑥섬을 전라남도 제1호 민간 정원으로 만들었다. 이들 부부가 2000년 새해에 꿈꿨던 '사회복지사업'의 꿈이 이 섬에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섬으로 향하는 작은 배의 승선 인원이 12명이라 세 번을 나눠 입도했다. 섬을 둘러볼 계획을 대략 2시간 정도 가늠하고 여유 있게 탐방 계획을 잡는 것이 좋다. 매월 20일은 마을 배가 운행되지 않는 정기휴일이다.

배는 꽃섬이란 이미지를 그대로 느낄 정도로 아기자기했다. 섬에 도착해 오른 편으로 먼저 갔다. 이중으로 쌓은 돌담이 인상 깊다. 그 옛날 섬으로 불어온 샛바람의 심술을 피하고자 궁여지책으로 쌓은 섬사람의 지혜가 엿보였다.
 
이 섬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개, 닭, 무덤이다. 대신 고양이가 엄청 많다. 쉬~ 하면 고양이 열댓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난다. 작은 섬엔 70~90대 노인 삼십여 명이 산다. 주민과 대등하게 고양이도 30마리가 넘는다. 일종의 부정을 탄다는 미신과 당제(堂祭) 차원에서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그래도 곡식을 탐하는 쥐는 잡아야 했기에 고양이는 기른 듯하다.
 
선착장 왼편에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인 당산 숲이 있다. 500여 종의 나무와 30여 종이나 되는 야생화가 자라는 곳이다. 숲은 동백을 비롯해, 육박, 후박, 푸조, 돈나무 등 아름드리 고목들로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난대 원시림은 제1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누리상을 받기도 했다.
  
쑥섬의 당산숲 마을 사람들이 자랑하는 당산 숲이다. 500여 종의 나무와 30여 종이나 되는 야생화가 자라는 고이다.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난대 원시림으로 제1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누리상을 받았다. ⓒ 최정선
 
갈매기 카페와 헐떡거리며 걷는 길을 지나 당산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다양한 나무 신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 코알라가 올라탄 듯한 나무 혹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주에서 건너온 녀석인가 보다. 걷는 내내 희귀한 나무 사이로 새들이 노래했다.

숲을 벗어나자 기암절벽이 용의 발톱처럼 바다를 움켜쥐고 있다. 이곳엔 여러 군상이 있다. 윗쪽 켜켜이 쌓인 바위는 삼형제의 얼굴, 아래는 헤엄치는 인어가 있다. 오른쪽으로 소거문도와 손죽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호젓한 산길은 3㎞에 이르는 몬당길이다. 몬당은 '언덕'의 사투리다. 이 길을 오르자, 만나는 꽃밭은 전라남도 1호 민간 정원이다. 이름은 '별 정원'. 연중 300여 종류의 꽃들이 계절별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쑥섬이 자랑하는 비밀의 화원 쑥섬 정상에 조성된 비밀의 화원인 '별정원'이다.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 최정선
 
버려진 묵정밭을 꽃피게 한 주인공 김상현 교사. 그의 외조부님 고향이 쑥섬이다. 외조부님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를 보살피고자 쑥섬에 들어온 것이 계기가 돼 정원을 가꾸게 됐다. 
 
성화 등대를 만나고자 서둘러 바위가 군데군데 난 산길을 걸었다. 정상 부근 '산포 바위'가 반긴다. '경치가 좋으니 잠시 쉬면서 한숨 돌리고 가라'는 의미다. 휘영청 달 밝은 밤이나 명절에 여자들끼리 놀던 장소다. 그럼 남자들도 회포 푸는 장소가 없냐는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있고 말고다. 여자와 남자가 밤놀이하다 눈 맞던 장소가 바로 산포일 게다.
  
성화등대와 신선대 섬 북쪽 끝머리 선 성화 등대의 일몰이 쑥섬의 비경으로 꼽힌다. 선화 등대로 내려가 신선대를 감상할 수 있다. ⓒ 최정선
 
섬 북쪽 끝머리, 성화 등대의 일몰이 쑥섬의 비경으로 꼽힌다. 등대를 만나기 전 신선대의 안내판과 마주했다. 아쉽게도 그곳에선 신선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등대로 내려가야 신선대의 기암절벽과 동굴을 마주할 수 있다. 동굴은 '중빠진 굴'로, 신선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 탁발승이 떨어진 설화가 서린 곳이다.

선화 등대로 내려가 신선대를 보는 과정은 나에겐 힘든 역경이었다. 고소공포증으로 밖이 훤히 보이는 철 계단은 곤욕이었다. 고마운 동료 한 분이 길을 안내해 겨우 내려갔다. 조심히 등대를 뒤로 한 채,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마주한 후박나무,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추억이 서린 쌍우물과 눈웃음 했다.
 
조금 더 걷자, 200~300년을 살아온 동백나무가 무성한 임도와 마주한다. 이 길은 <한국인의 밥상> 촬영 당시 최불암씨가 오프닝을 한 곳이란다. 동백은 내년을 기약하지만 시쳇말로 힐링이란 파도가 가슴속으로 밀려온다.

선착장 입구, 정자엔 마을 주민들의 작은 시장이 열렸다. 주먹 밥부터 쑥 식혜까지 다양하다. 쑥섬 탐방은 섬 할머니들의 정성 어린 음식으로 마무리했다.
 
- 나로도 연안여객선터미널 1일 8회 운항(5분 소요/12인승)
- 탐방길 : 쑥섬 선착장 – 갈매기 카페 – 난대 원시림 – 환희의 언덕 –몬당길 – 별정원(비밀의 화원) – 쑥섬 정상 – 성화등대 – 신선대 - 동백길 – 사랑의 돌담길 – 선착장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고흥, #연홍도, #쑥섬, #애도, #나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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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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