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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민을 수양자식으로 삼은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들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새터민을 수양자식으로 삼은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들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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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엄마, 저희를 자녀로 받아주시고 부모님이 돼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마음으로도 아껴주시고 보살펴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맡겨진 일 열심히 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비례대표)이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받은 편지다. 북한에서 탈출해 지내다가 7년 전 한 가족이 된 새터민(탈북민) 아들·딸로부터 받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써 내려간 편지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말을 자주 멈췄다. 그는 24년간 사무처 당직자로 일하다가 지난해 10월 같은 당 오세정 의원의 사퇴로 비례의원직을 승계받아 국회의원이 됐을 때보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더 기뻤다고 말했다.

임 의원이 이들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12년. 당직자로서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일하던 때다. 10여 년간 다니던 교회의 부목사 소개로 처음 만났다. 그는 "북한에서 나와 어렵게 사는 남매가 있다고만 들었다. 이름·나이를 아는 정도였는데, 나중에 탈북민 관련 행사에서 다시 만나 얘기한 뒤 가족으로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임 의원은 이들을 수양 가족으로 삼았다. 북한에 이들의 생부·생모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논의 끝에 법적 입양 절차는 밟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매달 만나 가족회의를 열어 집안 대소사를 결정하고, 서로를 "아빠·엄마" "아들·딸"로 부르며 '진짜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혼자 커온 임 의원의 외동 아들에게도 이들은 친형·친누나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탈북한 20대 남매를 수양 가족으로 삼은 뒤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해 11월, 딸 결혼식에서 딸을 안아주는 임 의원 모습(오른쪽).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탈북한 20대 남매를 수양 가족으로 삼은 뒤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해 11월, 딸 결혼식에서 딸을 안아주는 임 의원 모습(오른쪽).
ⓒ 임재훈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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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말 수양딸의 결혼식 때는 임 의원이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했다. 그는 "아버지로 식장에 서는 건 처음이었다. 평소에 잘 떨지 않는데 그날은 심장이 쿵쾅대서 혼났다"라며 웃어보였다. "최근 딸이 임신해 아기 배냇저고리를 사러 갔는데 아내가 너무 소녀처럼 설레하더라"고도 덧붙였다.

이런 인연은 법안 발의로도 이어졌다. 국회 교육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인 그는 지난 5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중국·몽골 등 제3국에서 출생한 북한이탈주민 자녀도 정부 지원을 받게 하는 내용이다. 그는 "아이들로부터 여러 상황을 전해 듣고 직접 만난 게 법안 발의의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오마이뉴스>가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임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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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탈북한 나의 수양자식들... 신기할 정도로 금세 가족 됐다"

- 장성한 새터민 두 명을 자녀로 들였다고 하던데, 어떤 사연이 있나.
"2012년도에 다니던 교회에서 부목사님에게서 처음 얘길 들었다. 20대 초반 남매가 탈북해 서로 의지하면서 산다고, 관심 갖고 기도해달라고 해서 이름·나이·학교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탈북민지원(봉사)단체 행사에서 다시 만나서 얘기를 나누게 됐다. 딸아이를 처음 봤는데 제게 '부모가 돼줘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신앙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나중에 아내 의견을 물으니 적극 동의하더라. 친가·외가가 모두 모여 가족회의를 두 번 더 한 뒤 결정했다.

저는 원래 자식이 아들 한 명이었다. 아내가 더 낳고 싶어 했는데 임신이 어려웠고, 그래서 아들이 늘 혼자 외롭게 자라는데 부모로서 미안했다. 그런 무의식도 가족으로 맞겠다는 결심에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나중에 수양 아들은 저희 집에 들어와 같이 살았다. 그때 중학생이던 친아들이 잘 받아들일까 걱정됐는데, 누나와 형이 생겼다며 되레 무척 좋아하더라. 다만 의논 끝에 등본 상에 올리진 않기로 했다. 북한에 아이들 친부모가 살아있는데, 혹시 만날 수도 있어서다."

- 후원은 몰라도 가족으로 함께 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려움은 없었나.
"당시 남매가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딸은 대학 다니며 아르바이트 중이었고, 정부에서 생활비도 소액 나온다고 했다. 아내와 상의해 우리가 사는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신기할 정도로 바로 가족으로 함께 묻어나더라. 수줍음 많은 아이들인데 둘 다 '엄마·아빠' 소리를 자연스럽게 했다. 아침저녁 같이 먹고 모여서 회의하고, 보통 가족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지냈다. 친아들과는 나이가 비슷해서 그런지 자기들끼리 잘 어울려 놀더라.

그때부터 7년, 딸은 대학 졸업 뒤 취업했고 결혼도 했다. 그 딸이 아내와 저를 정말 잘 챙긴다. 그러지 말라는데도, 이번 어버이날에도 용돈·꽃다발과 함께 손편지를 써 보냈더라. '부모님이 돼주셔서 고맙다. 아빠·엄마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읽다가 자꾸 눈물이 났다. 저는 뒤늦게 의원이 됐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정말 기쁘다. 그러나 아들·딸로부터 받은 저 편지 한 통의 기쁨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 실제 생활은 어떨지 궁금하다. 함께 울고 웃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부모 역할이 쉽지만은 않았다. 새로 만난 아들이 당시 서울 모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기초학력이 뒤처지다 보니 적응을 못 해 F학점을 받는 등 힘들어 했다. 저와 자주 얘기하면서 아들의 손재주가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그 대학을 자퇴했고, 지금은 다른 대학의 전기과로 재입학해서 다시 공부 중이다. 얘들을 더 잘해주거나 하진 않았고, 친아들과 똑같이 해주고 똑같이 혼냈다. 그러면서 가까워졌던 것 같다.

지난해 11월 딸아이가 결혼했다. 결혼식장에 딸 손을 잡고 들어가는데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그런지 너무 떨리더라. 잘 안 떠는 편인데 그날 심장이 쿵쾅대서 혼났다. 그 딸이 임신해 3개월 뒤면 아이를 낳는다. 아내가 딸과 함께 새로 맞을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사러 갔는데, 그게 너무 행복했다면서 소녀처럼 설레했다. 그런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일은 있었지만 그때 결심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

"중국 등에서 태어난 탈북민 자녀 1500여명,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임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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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5월 탈북학생 교육지원 토론회를 열고,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것도 자녀들 때문인가.
"그렇다. 아이들 말이 결정적이었다. 아들딸로부터 탈북민 상황, 잘 정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내는 탈북지원단체에 나가 정기적으로 탈북민을 만나기도 한다.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2018년 탈북자가 3만2476명이다. 그런데 이중 대부분은 월 소득 200만 원 이하 비정규직 노동자다. 말투와 생활방식 등 탈북자인 게 드러나면 취업이 어려워 정착이 쉽지 않다고 한다.

특히 안타까운 건 아이들이었다. 요즘 탈북민은 통계상으로 제3국, 즉 북한이 아닌 중국·몽골 등에서 태어난다. 아예 한국말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10대 아이들이 1500명 정도, 문제는 탈북민으로서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는 거다. 사각지대에 있다.

기존 탈북민에 지원되는 학자금 등 지원이 없다 보니 학교를 중퇴하고 나와서 하는 일이 대개 식당 허드렛일·막노동 등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도 학자금·생활 지원 등 동일한 혜택을 주자는 법안이다. 아이들을 제도권으로 흡수해 사회정착에 도움을 주면, 이들이 나중에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

-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자녀들은 이미 장성해 법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제 아이들이야 이미 다 컸고, 나름 잘 자리를 잡고 있으니 괜찮다. 그런데 사각 지대에 방치된 아이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 10대 청소년, 20·30대 탈북 청년들은 계기만 있으면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아들딸을 보면서 적절한 교육 환경만 있으면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고 느꼈다. 이런 아이들에게 정부 지원으로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거다. 특히 탈북민, 탈북 여성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들이 한국인들에 있다. 그런 인식을 꼭 바꿔야 한다고 본다."
 
< '걸어다니는 인명사전'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누구? >
 
임재훈 의원은 여의도 안에서 대표적인 '조직통'으로 불린다. 그의 정치 경력 덕이다. 임 의원은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사무처 당직자로 정치를 시작했다. 2016년 국민의당 창당 때 합류했지만 조직 사무부총장과 조직국장 등을 맡는 등 활동 반경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24년 넘게 사무처 당직자로 생활한 그는 지난해 10월 오세정 바른미래당 의원의 사퇴로 비례의원직을 승계받았다.

지난 4월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엔 권은희 의원을 대신해 잠시 사법개혁특위 위원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자연히 손학규 대표 퇴진·혁신위원회 구성 등을 둘러싼 당내 갈등 상황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처지다. 그러나 임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곧 혁신위원회가 들어서면 당 내홍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며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가 혁신위원장으로 들어오면 당 지지율도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 의원직 승계로 지난해 10월 뒤늦게 국회의원이 됐다. 본인을 소개한다면.
"지난 총선 때 당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나온 13명까지 의원이 됐는데, 제가 14번이라 제 앞에서 문이 닫혔다. 그렇게 24년간 사무처 당직자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의원에 입성했다. 의원 된 지는 9개월이다. 그땐 저도 의원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참 피상적이었다. '놀고먹는 국회'인 줄 알았는데 법안 발의,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현장 방문 등 일이 많다. 제가 선거를 치른 경험은 많아도 특정 분야 전문성은 적다. 그걸 메우려 하니 더 바쁘다.

25년째 정당 생활 중 선거를 58번 치렀고, 40여 번 패배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재산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매일 만난 사람, 간략한 대화 내용 등을 메모 습관을 들였고, 그렇게 쓴 수첩이 벌써 25개째다. 예전엔 약 300명의 개인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녔다. 지금도 300여 명 의원의 출생지·당내입지·정치경력 등 웬만한 히스토리는 다 안다. 그래서 제 별명이 '걸어 다니는 인명사전'이다. 그게 저만의 경쟁력이다."

- 혁신위 등 바른미래당 내홍이 거듭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6월 4일) 직전 의원총회 때 혁신위원회 구성에 다들 합의하지 않았나. 양측이 날 세우는 현재 상황은 어렵지만, 곧 혁신위원회가 들어와 내부를 정리하면 내홍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 본다. 위원장에 따라서 당 정체성을 새롭게 만드는 게 혁신위와 손학규 대표가 할 일이다. 혁신위 설치는 의원들 간 합의됐으니 더 이상의 극렬한 반대는 없을 거라고 본다. 혁신위원장에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가 들어와 혁신하면 바른미래당 지지율도 다시 올라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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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자세히 보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A political reporter. I'm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