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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만든 글로벌 비영리조직 ‘아쇼카’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체인지메이커)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관행과 시스템을 바꾼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체인지메이커들의 도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스타트업, 비영리 단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헤이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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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21일 오후 1시]

"젊은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아이를 낳으면 커리어가 끝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곳에서 출산과 커리어를 동시에 꾸려가고 있는 분들을 만난 거죠. 그들을 보면서 어떤 유형의 회사를 다니고,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먹으면 두 가지를 병행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도 하고..."

출산이 여성의 발목을 잡는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그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는 '커리어 우먼'에게 '출산'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는 "단지 돈을 좀더 준다고 할수있는 일이 아니고, 여성이 일하고 출산을 해도 자기 자신으로 살 수있다는 확신이 있을때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헤이조이스'를 통해 꾸준히 일하는 여성들과 소통중이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케이스 스터디'의 터전

지난 7일 서울 강남구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특히 일하는 여성에 대한 것이었다.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고민을 극복해낸 사례'가 필요하다. 그래서 주변에 묻는다.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이다. 일하는 여성에게도 '사례'가 필요했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쉽지 않았다. 비슷한 고민을 했을 회사 내 '선배급' 여성들은 수 자체가 드물었다. 있다고 해도 말 한 번 걸기 쉽지 않을 만큼 바빴다.

이나리 대표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여성들이 알기만 했더라도, 여성의 삶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졌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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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가 지난해 9월 서울시 선릉역 근처에 '헤이조이스'를 연 것도 이와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헤이조이스는 우리나라 최초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기반 멤버십 서비스다. 꼭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더라도, 인생에서 일이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이 한 곳에 모여 '케이스 스터디'를 벌인다.

구성원들은 헤이조이스가 주최하는 다양한 이벤트와 모임 등을 통해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를 '님'이라고 부르며 느스한 커뮤니티를 경험할 수 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는 여성을 위한 '임신과 출산의 진실이 궁금한 당신에게'나 다양한 성격의 상사에 대처하는 방법을 주제로 한 '언니의 社생활, 새 BOSS를 만났다' 이벤트가 대표적이다.

멤버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3개월에 45만 원, 1년에 150만 원을 내야 한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그런데도 현재 헤이조이스의 회원 수는 300명을 넘어섰다. 연간 회원으로 멤버 등록한 이들은 전체의 60% 이상이다.

중장년 남성들의 인맥 문화에서 배제된 여성

"그만큼 여성들끼리 일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가 없었던 셈이죠."

헤이조이스의 인기 비결을 묻자 이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중장년 남성들이 만들어온 인맥 쌓기 문화 속에서 여성이 갈증을 느껴온 것에 대한 증거라는 말이다. 기존 중장년 남성들이 만들어온 문화를 정의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술과 담배, 골프로 이뤄진 관계 맺기 방식이라고 답했다.

"술과 담배, 골프 등 중장년 남성들에게는 무엇을 함께하면서 뭉치는 문화가 있어요. 이것들을 함께하지 못 하면 문화 속에 포함될 수 없는 거죠. 대다수의 여성들이 배제됐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에요. 저도 폭탄주를 한 잔이라도 더 먹어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요."

이 대표 역시 중장년층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여성 중 하나였다. 그는 20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술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던 때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술자리가 예정된 날, 자리에 참석하기 전, 떡볶이와 양갱을 꾸역꾸역 뱃속에 집어넣었다. 탄수화물을 먹으면 조금은 천천히 취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남성들의 '형-동생 문화' 앞에서는 또 다시 배제됐다.

"중장년층 남성들이 서로를 형 동생이라고 부르는 게, 가끔씩 연극 같기도 해요. 서로가 갖고 있는 자원을 교환하려고 하는 연극. 여성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다보니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본질적으로 한계가 생기고요. 그런 관계가, 모두에게 합리적인 관계가 맞긴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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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원래 나'를 찾을 수 있도록

헤이조이스 커뮤니티는 중장년 남성들이 만든 인맥 쌓기 방식과 어떻게 다를까. 이 대표는 "이곳에서 여성들은 진짜 나를 찾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여성들은 어릴 적부터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육체적으로 다친다면서요. 여자니까 밤에 나가면 안 된다는 등. 누구도 여성에게 '리더십'이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요구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여성들은 야망을 드러내지 않게 됐어요."

하지만 이 대표는 자신 있게 말했다. 헤이조이스에 들어온 순간부터 여성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말이다. 이 대표는 가장 큰 변화로 자기소개를 하는 자세를 꼽았다. 커뮤니티 가입 후 첫 모임에서 자신을 '어떤 회사의 누구다'고만 소개했던 여성들이 점차 '어떤 분야를 좋아하고, 어떤 취미가 있으며 어떤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영원히 나답게'라는 헤이조이스의 비전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 대표는 구성원이 리더십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원하는 이들에게 리더의 자리를 제안한다고도 했다. 헤이조이스 내에서 열리는 프로젝트나 소모임인 미니밋 등에서 리더로 모임을 지휘하게 되는 셈이다. 이 대표는 구성원들에게 나이가 어려도, 엄청난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설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렇게 리더 경험을 한 여성은 300명이 넘는 헤이조이스 구성원 중 100명 이상이다.

문맥에 대한 부연 설명 없이, 직접적으로 여성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여성 커뮤니티의 장점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이를 '딥 다이브(Deep dive)'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일반적인 HR 컨퍼런스에서는 'HR부서에는 왜 주니어 여성들은 많은데 시니어 여성들은 없는지'와 같은 질문이 나오기 쉽지 않아요.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 '남자들과 싸우자는 말이냐'는 반응이 나올 테니까요. 하고 싶은 질문을 하기 위해 맥락부터 설명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헤이조이스 HR 컨퍼런스에선 그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거든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바로 본질적인 질문으로 들어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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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여성에게 기회가 열리는 세상

여성 커뮤니티로 출발한 헤이조이스지만, 이 대표의 최종 목표는 '합리적인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대표는 그 대안이 '느슨한 관계'라고 말했다.

"점차 인맥을 맺는 방식이 '느슨한 관계'로 바뀌어 갈 거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서로 취미를 공유하면서 느슨하게 엮여 있는 관계. 가치관이나 성격은 알고 있으면서도 언니-동생 사이라거나 선배-후배 관계로는 얽히지 않고요." 

이 대표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 방식도 현재의 공개채용 형태에서 느슨한 관계를 통한 채용으로 바뀌어 갈 거라고 했다. 회사 내에서 일하는 방식이 점차 개인 위주에서 팀 위주로 바뀌면서 의사소통 능력과 같은 부드러운 능력, 이른바 '소프트 스킬'을 가진 인재가 각광받을 거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금도 스타트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에게서 인력을 추천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고 했다. 그렇게 받고 있는 제안만 일주일에 한 건 이상이라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 대표는 실제로 헤이조이스 내부에서 알게 된 이들끼리 비즈니스를 시작한 경우가 꽤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른 바 '콜라보'다. '뷰티'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와 '향'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가 만나 화장품 재료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또 변호사나 세무사 등 전문직 종사들과 '테크' 나 마케팅 회사가 손잡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느슨한 관계'를 통한 인맥 쌓기 방식이 밀레니얼 남성 세대들에게도 유익할 거라고 본다.  

"밀레니얼 세대 남성들도 가끔 저한테 이야기해요. 남성용 헤이조이스를 만들어 달라고요. 성별과 관계없이 '느슨한 관계'가 밀레니얼 세대의 힘을 얻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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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헤이조이스, #여성커뮤니티, #커뮤니티, #밋업,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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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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