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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로 이미 8000년 전부터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던 조지아에서는 지금도 수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크베브리 와인양조법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러니 조지아 여행에서 와인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조지아 사람들이 일상에서 포도주를 대하는 법이 예사롭지 않음은 여행 초기부터 여기저기서 감지되었다. 첫날 묵었던 호텔 객실의 냉장고 안에는 수제라벨까지 붙여진 수제(사제?) 와인이 비치되어 있었다. 와인병이 마치 나에게 '웰컴 투 조지아, 여기가 바로 조지아야'라고 말하는 듯 하였다.
 
    조지아 가정들은 직접 와이을 담그는 경우가 많다. 숙성중인 와인과 라벨링 기계, 압착기 , 병입기 등이 모두 갖춰져 있는 트빌리시 시내의 한 호텔의 와인셀러
▲ 조지아 한 호텔 지하의 와인저장실   조지아 가정들은 직접 와이을 담그는 경우가 많다. 숙성중인 와인과 라벨링 기계, 압착기 , 병입기 등이 모두 갖춰져 있는 트빌리시 시내의 한 호텔의 와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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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지하에는 와인셀러까지 있었는데, 포도를 으깨는 프레스와 코르크마개 삽입기, 와인을 젓거나 퍼담는 긴 국자 같은 와인 제조에 필요한 도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한 켠에는 오크통과 플라스틱 와인통들도 놓여 있었다. 객실의 와인은 호텔 사장이 카헤티 지방에 소유하고 있는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을 병입한 와인이다. 

호텔 근처의 제빵소 직원들은 바빠서 점심을 감자나 오이, 빵으로 대충 때우면서도 와인은 꼭 챙겨먹었다. 작업장 한 켠에는 늘 커다란 와인통이 놓여 있었다. 감자 한 알에도 와인이 있어야 하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조지아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묵은 호텔 거리에는 화덕에서 빵을 구워내는 제빵소가 있었다. 남자 3명이 함께 하루종일 빵일 구워냈다. 그들의 점심은 구운감자와 오이, 그리고 집에서 담근 와인이었다.
▲ 조지아 사람들의 점심식사  내가 묵은 호텔 거리에는 화덕에서 빵을 구워내는 제빵소가 있었다. 남자 3명이 함께 하루종일 빵일 구워냈다. 그들의 점심은 구운감자와 오이, 그리고 집에서 담근 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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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에서 우리네 편의점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와인숍이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산꼭대기 카즈베기 마을 중심에도 와인숍이 있었다. 진열된 와인들을 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조지아산 와인인 데다가, 생산지별로, 제조사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한 제조사에서 출시된 와인 종류만도 최소 5, 6가지가 넘고, 와인 이름은 같은데 제조사가 다른 와인들도 수십 종이다.

조지아 전역에서 와인을 만들지 않는 지역이 없고 와인 회사만도 수십 개가 넘는다. 집집마다 가양주를 담는다고 치면 조지아의 와인 종류와 맛의 수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지아에서는 누구나 와인마스터이이자 소믈리에들 같다. 

조지아 하우스와인에서 느껴지는 가풍과 전통

'조지아 여행 중에 와인은 실컷 맛볼 수 있겠구나' 했던 나의 기대는 하우스 와인 몇 잔에 그치고 말았다. 나 홀로 여행이다보니 생각보다 와인을 많이 마실 수가 없었던 것. 그래도 대부분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잔 와인을 판매하는 덕에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조지아 레스토랑에서는 자체 '뽀그립(Погреб, 셀러)'이 있어 직접 담근 와인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시그나기의 '골든 라이언'과 '미로니시' 같은 이름없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맛보았던 와인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과 조상들에게서 전수받은 비법으로 담근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보드베 수도원 앞 카페에서 돼지고기 샤실릭(꼬치구이)과 함께 먹었던 와인은 잊을 수 없다. 덤으로 한 잔 더 따라주는 조지아 인심은 두고두고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간혹 아주 이상한 맛의 와인도 있었다. 메스티아의 한 카페에서 마신 레드와인은 마치 오이지를 담근 듯한 퀘퀘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나서 한 모금 마시고 그대로 남겨 두고 나왔다.

조지아에서 하우스 와인은 말 그대로 집집마다 맛과 향, 풍미가 달라서 '맛'을 보는 재미가 있다. 덤으로 재밌는 집안 얘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와인을 마시면서 한 집안의 전통과 내력을 알아가는 맛이 조지아 와인의 맛이다.
   
조지아의  레스토랑이나 수도원, 박물관 등에도 지구스타찌야(시음장)가 많다.
▲ 카헤티 그레미성의 시음장 조지아의 레스토랑이나 수도원, 박물관 등에도 지구스타찌야(시음장)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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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여행 중에는 수도원, 레스토랑, 카페, 박물관 등에 Погреб(뽀그립), Дегустация(지구스따찌야)라고 적힌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와인셀러'와 '와인테스팅'이라는 뜻으로 와인을 시음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조지아 와인의 최대 미덕은 가격이 착하다는 것이다. 비싼 빈티지 와인이나 아주 고급 와인이 아닌 이상 1병에 30~40라리(2만 원 정도) 정도면 꽤 훌륭한 와인을 살 수 있고, 15라리(6천~7천원) 정도로도 괜찮은 와인들이 널렸다.

스탈린이 좋아했다는 흐반치카라 와인은 슈미(SHUMI) 와이너리에서 나온 것이 46라리였다. 참고로 슈미보다는 샤토 무흐라니 흐반치카라가 더 내 입맛에 맞았다.

와인은 조지아를 이해하는 키워드  
  
   와인은 조지아 기독교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전례에 사용하는 와인은 수도원에서 제조한 레드와인(제다쉬)만 사용하였다.
▲ 네크라시 수도원의 마라니(와인저장고)  와인은 조지아 기독교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전례에 사용하는 와인은 수도원에서 제조한 레드와인(제다쉬)만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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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여행자들에게 와인은 그저 이국적인 알코올이지만, 조지아인들에게 와인은 힘의 원천이자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조지아인들에게 와인은 힘의 원천이다. 조지아 병사들은 전쟁에 나갈 때에도 포도씨앗을 품고 전쟁터에 나갔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으면 그 자리에서 포도가 자라났다. 수없이 외세의 침략을 감당해야 했던 조지아인들에게 와인은 바로 힘의 원천이고 와인을 마시며 외치는 건배는 승리에 대한 기원과 다짐인 것이다." - 조지아 알라베르디 수도사의 말, EBS다큐 '세계의 와인' 편

와인은 조지아인들의 일상과 종교 및 문화에 녹아 들어 있다. 전통적인 조지아 가정에서 포도를 고르고, 포도수확시기를 결정하고, 포도주를 통에 옮겨 담는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남성 가장의 몫이다. 공동체에서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사람과 가정은 특별한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전통은 조지아의 '타마다' 전통으로 이어졌다. 타마다는 건배제의자란 뜻으로 연회(수프라, Supra)에서 참석자들의 인사말과 건배자의 순서를 정하는 등 원활하게 연회가 진행될 수 있게 하는 사람이다.
   
    비니스 유적지에서 발견된 7세기에 제작된 타마다상은 조지아의 와인문화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은 시그나기 박물관 앞에 세워져 있는 타마다상.
▲ 타마다상  비니스 유적지에서 발견된 7세기에 제작된 타마다상은 조지아의 와인문화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은 시그나기 박물관 앞에 세워져 있는 타마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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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바니시' 유적지에서 발견된 7세기에 제작된 타마다상은 조지아에서 타마다의 전통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와인저장고는 집안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였으며, 귀한 손님에겐 밀봉된 크베브리를 따서 새 와인을 대접했다.

조지아의 구전민속이나 민속음악에 남아 있는 포도나무와 포도주와 관련된 내용들과 다양한 포도재배와 관련된 어휘들 모두 조지아인들의 삶에 와인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와인은 조지아 기독교 문화에도 많은 흔적을 남겼다. 포도나무 십자가로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는 수도원에서 농부들이 만든 레드와인(제다쉬)만을 사용했다. 조지아에서 '생명의 나무'는 곧 포도나무이며, 포도나무는 동시에 성모마리아를 상징한다. 11세기에 만들어진 찬송가 '주는 포도나무(thou art a vine)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불리우고 있다.

이처럼 조지아 역사와 함께 시작된 와인은 조지아를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태그:#조지아와인, #카헤티, #크베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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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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