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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봉.
 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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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제64회 현출일 추념사에서 언급한 김원봉(金元鳳, 1898~1958년, 약산) 선생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고향 경남 밀양에서는 "이번 기회에 서훈이 추서되어야 한다"는 반응이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임시정부는 1941년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광복군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청와대와 집권세력이야말로 우리 사회 가장 극단에 치우친 세력"이라고,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국민 통합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보수와 진보를 나누지 말자는 대통령의 언급이 김원봉 등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까지 서훈하기 위한 이 정권의 분위기 조성용 발언은 아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원봉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만주로 건너가 성장기를 보냈고, 1919년 '의열단'을 만들었다. 그는 1930년 '조선의용대'라는 강력한 군사조직을 결성했고, 조선의용대는 1941년 광복군 제1지대로 합편되었다.

김원봉 선생은 1942년 광복군 부사령에 취임했고, 1944년 임시정부의 국무의원과 군무부장을 맡았다. 약산 선생은 해방 이후 일제강점기 형사 출신의 경찰에 체포와 고문, 수모를 당했고, 1948년 월북했다.

김원봉 선생의 부인 박차정(朴次貞, 1910∼1944년) 선생은 의열단원으로 활동했고,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여자 교관, 조선의용대 부녀복지단장 등을 지냈다. 박 선생은 1939년 2월 중국 장시성 쿤륜산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유증을 앓다가 1944년 병사했다.

김원봉 선생은 해방 뒤 박차정 선생의 묘소를 중국에서 밀양으로 이장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김영삼정부 때인 1995년 박차정 선생한테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고, 부산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극단 '밀양'에서는 2008년부터 김원봉 선생을 담은 뮤지컬을 제작해 해마다 공연해 오고 있다.
 극단 "밀양"에서는 2008년부터 김원봉 선생을 담은 뮤지컬을 제작해 해마다 공연해 오고 있다.
ⓒ 장창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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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는 약산 선생을 기리는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의 두 차례를 포함해 모두 네 차례 우리 정부에 약산 선생에 대한 서훈 신청을 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월북했다는 게 이유다.

극단 '밀양'은 2008년부터 해마다 김원봉 선생을 비롯한 의열단을 담은 뮤지컬 공연을 해오고 있다. 또 밀양 사람들은 해마다 9월, 박차정 선생을 비롯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의 묘소에 벌초를 해오고 있다.

장창걸 극단 '밀양' 대표는 "일제는 김구 선생보다 김원봉 선생에 대해 현상금을 더 높게 걸 정도로 위협적이었다"며 "약산 선생을 빼고 어떻게 독립운동사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냐. 약산 선생 같은 분들이 독립운동을 했기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고, 지금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약산 선생은 해방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일제 때 친일했던 경찰에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해방 이후 독립투사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제거하기 위한 논리가 '빨갱이'라 덧칠을 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북으로 갔다고 해서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네 차례 서훈 신청이 있었지만 되지 않았다. 서훈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시 나라가 빼앗기더라도 적당히 친일하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일선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연구소는 이전부터 약산 선생에 대한 서훈 추서 신청을 해왔다. 우리는 밀양 독립운동가의 자료를 찾아 서훈 신청하거나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장영우 밀양시의원은 "약산 선생에 대한 서훈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일제가 김구 선생보다 더한 현상금을 걸었을 정도니까, 일제는 김구 선생보다 약산 선생을 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던 것"이라며 "그만큼 독립운동의 공적이 높다. 이제라도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서 서훈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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