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영화 포스터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포스터 ⓒ 알토미디어

 
사진작가, 영화감독, 다큐멘터리 감독, 비주얼 아티스트, 설치예술가. 아녜스 바르다를 정의하는 이름들이다. 많은 호칭을 갖게 한 도전만큼이나, 그녀의 삶 자체도 '경이로움'이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놀랄만한 상상력은 그녀의 "호기심 많은 눈"에서 비롯된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는 아녜스 바르다가 자신이 만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일생을 반추하는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그녀의 작품이 곧 그녀의 삶임을 보여준다.

그녀의 수많은 작품의 탄생은 그녀가 인간에게 가진 '호기심'이 얼마나 진지하고 무궁한가를 알게 한다. 영화뿐 아니라 사진, 비주얼 아트의 설치물들은 그녀의 놀라운 창의성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80이 넘은 나이에 디지털 기기를 접하고, 그로서 비주얼 아트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함'을 증명한다.
  
"올 테면 와라, 나는 물러서지 않겠다" 노감독의 기백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스틸 컷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스틸 컷 ⓒ 알토미디어

 
그녀는 그녀의 작업을 "영감, 창조, 공유"로 정의한다. 영감을 제공받아 "왜 영화를 만들까"를, 창조를 개입시켜 "어떻게 만들까"를, 그리고 이 영감과 창조의 산물을 '공유'함으로써, 그녀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완성한다. 사물, 사람, 상황을 바라보는 그녀의 독특한 관점은 평범을 비범으로 전환시킨다.
  
사물조차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 바르다는, 어떤 이에게는 사물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아 존재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영감을 제공받는 바르다는 그녀의 영화 인생에 "우연은 큰 조력자"였음을 밝힌다. 일상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소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탁월함.
 
영감, 창조로 빚어낸 작품이 널리 공유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바람이다. 훌륭한 작품이라도 사람들에게 나눠지지 않는다면, 작품 스스로 말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작품은 공유되면서 공유한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재창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작품성을 인정받는 것과 무관하게, 그녀에게 아쉬울 수밖에 없다.
 
바르다는 "80이라는 나이를 맞닥뜨릴 때, 뭔가가 덮쳐오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마치 기차의 전면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느낌이었는데, 달려들길래 그냥 "들이받았다"고 했다. 인생에 어떤 것이 쳐들어온다 해도 물러나지 않는다는 태도는, 그녀의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80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 무서운 속도로 밀고 들어오는 삶의 무게를 두고 "올 테면 와라. 나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노감독의 기백은, 그녀의 심장이 여전히 뜨겁게 뛰고 있음을 알려준다. 80의 심장이 저토록 뜨겁게 요동칠 수 있다니.
  
"우연은 큰 조력자"라는 아녜스 바르다의 믿음, 그리고...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한 장면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스틸 컷 ⓒ 알토미디어

 
"우연은 큰 조력자"라는 아녜스 바르다의 믿음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을 누비며 조우한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출연섭외를 하고 대형사진을 만들어 전시하는 행위는 순발력 있는 영감이 직조해내는 창조성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삶의 진실을 포착해내는 고도의 집중력은 과연 훈련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의 조력자이고 인생의 동반자이던 남편 자크 데미가 먼저 떠나자, 바르다는 그 쓸쓸한 마음을 설치예술로 표현한다. 한 바닷가 마을을 찾아가, 홀로된 여인들의 쓸쓸한 독백들을 영상에 담는다.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 고적히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의자에 앉아 홀로된 여인들의 고백을 듣는다. 설치된 의자에선 오직 한 여인의 고백만 들을 수 있는데, 마치 여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이 설치예술물은 홀로된 여인들의 고독을 전달하는 도구로서 세심하고 탁월하게 고안되었다. 동질감이 예술의 큰 매개임을 보여준다.

"나는 페미니스트였고 지금도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영화 속 발언은 아녜스 바르다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한 번도 떼어낸 적이 없음을 증명한다. 90이 넘은 여성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하는 것은 얼마나 뜨거운 일인가? 90세의 '페미니스트'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존재 자체로 페미니스트들을 일으켜 세운다. 눈물이 난다. 그녀의 수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그녀이기도 하고 시대를 공유하는 우리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임을 새기며 작품에 임했을 그녀의 다짐이 영화 전반에 공기처럼 스며있다. 자랑스럽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어 보듬어보는 예술가의 회고는 할 일을 다 마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충만함을 드러낸다.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으며 예술인생을 풀어낸 그녀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아녜스 바르다는 바다를 사랑했다. 마음의 풍경인 해변은 그녀에게 영감의 장소다. 영화의 엔딩은 "바다는 항상 옳다"는 바르다를 해변으로 이끈다. 모래를 싫어 나르는 바람 속에 JR 감독과 해변에 앉은 바르다는 이제 곧 바람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다. 쓸쓸한 일이지만, 누구라서 헤어짐을 피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수다와 함께 사라지겠노라는 아녜스 바르다는 마지막 독백을 한다. "저는 떠납니다."
 
영면한 아녜스 바르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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