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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19.6.6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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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의 제64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이 거론된 것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김원봉에 대한 문 대통령의 언급은 좌우합작에 의한 광복군 창설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루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지난  3월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 복원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 말을 꺼낸 것은 국민통합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임시정부가 좌우합작으로 광복군을 창설해 대일 항전에 나선 역사를 통해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럴 목적으로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거론한 다음, 김원봉이 언급됐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칭송한 것은, 임시정부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진영, 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 더불어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까지 통합해서 광복군을 결성했다는 점이었다. 주된 칭송의 대상은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아니라 김구의 임시정부였던 것이다. 김원봉 같은 인물까지 통합해서 한국광복군을 결성한 사실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한국청년전지(戰地)공작대는 1938년 결성돼 류저우·충칭·시안 등에서 활약한 독립투쟁단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 더불어 아나키스트 진영 및 조선의용대까지 함께 광복군이라는 통합 조직을 이뤄낸 사실에 문 대통령이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통합이 역사에 기여한 점을 높이 샀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원봉까지 참여시킨 좌우 통합에 기반한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김원봉을 칭송한 게 아니라, 김원봉까지 통합한 임시정부를 칭송하는 말이었다. 결과적으로 김구를 훨씬 더 칭송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전체 맥락을 놓고 보면 김구와 임시정부를 칭송하는 것인데도, 보수 야당들이 김원봉 부분만 떼어내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1948년 월북해 6.25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 뒤 "6.25 전사자들을 뒤에 모셔두고 눈물로 세월을 견뎌낸 가족들을 앞에 두고 북의 전쟁 공로자에 헌사를 보낸 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보수·진보를 떠나 최소한의 상식의 선 안에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6.25 전사자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곳에서 6.25 전쟁의 가해자에 대해서는 한마디 못하면서, 북한의 6.25 전쟁 공훈자를 굳이 소환하여 치켜세우며 스스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구와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을 소환해 치켜세운 것인데도 이처럼 김원봉한테 초점을 맞추었으니, 논의의 초점을 벗어난 엉뚱한 비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원봉은 전도유망했던 독립운동 지도자
 
 김원봉.
 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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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과 미래당은 김원봉이 북에서 대단한 추앙을 받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그가 월북한 것은 김일성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가 김구·김규식과 비슷한 시점에 북으로 간 것은 남북 분단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분단을 기도하는 미군정과 이승만에 맞설 힘을 규합하고자 북에 올라갔다가 그냥 머물렀을 뿐이다.

거기서 김원봉은 최상의 대우를 받지도 못했다. 김일성의 정적들이 대거 숙청되던 때인 1958년 12월에서 1959년 1월 사이, 그는 공식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1958년에 그는 60세였다. 숙청됐다는 설도 있고 옥중에서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최후가 쓸쓸하기는 했지만, 해방 이전만 해도 김원봉은 전도유망한 독립운동 지도자였다. 문 대통령이 그를 직접적으로 칭송한다 해도 조금도 문제 될 게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격한 칭송을 들어도 모자랄 만큼 업적을 많이 세웠기 때문이다.

김원봉의 공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점은 일본이 가장 무서워한 독립투사 중 하나였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외무대신이 "김원봉을 체포하면 즉각 나가사키 형무소로 이송할 것이며, 소요 경비는 외무성에서 직접 지출할 것"이라고 상하이 총영사관에 지시한 사실은 일본 내에서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게 한다.

그가 이끄는 의열단은 한·중·일 삼국을 무대로 일본인과 일제 기관에 폭탄을 던지고 총탄을 발사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약산 김원봉 평전>은 "일제 군경과 관리들에게 의열단원은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며 "언제 어디서 의열단원이 나타나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들이댈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원봉은 일본인과 일본 기관에 대한 개별적 폭탄 공격만 한 게 아니다. 그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대 조직도 갖추었다. 후삼국 시대의 견훤과 궁예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독립군 군대를 만들었다. 조선의용대라 불린 이 군대는 한때 300명을 넘는 병력을 보유했다.

권혁수 중국 요녕대 교수의 논문 '중국항일전쟁과의 연관성으로 본 조선의용대 항일 업적의 역사적 의미'는 "1940년에 이르러 조선의용대는 총대부(본부) 및 세 개의 지대를 포함한 314명으로 발전"(<충청문화연구> 제10호)했다고 설명한다. 외국 땅에서 총 한 자루, 폭탄 하나를 구하기도 벅찼을 텐데, 무려 300여 명을 무장시켰다는 것은 그가 민족 독립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뛰어다녔는지를 짐작게 하고도 남는다.

기득권 포기하고 김구 중심 좌우합작에 참여 
 
 조선의용대 참립 기념 사진.
 조선의용대 참립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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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대단한 것은 그만한 병력을 이끌고 스스로 광복군에 편입됐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 측의 압력도 있었지만, 기득권을 포기하고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그가 민족해방이라는 대의 앞에서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했음을 의미한다. 자기를 중심으로 한 좌우합작이 아니라 김구를 중심으로 한 좌우합작인데도 가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후보 단일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한국 현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라이벌을 대통령으로 밀어주고 자신은 후보직을 사퇴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김원봉은 그런 일을 해냈다. 라이벌일 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맞지 않는 김구와의 통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임시정부 및 광복군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좌우합작과 통합의 정신을 이처럼 모범적으로 보여준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용대라는 군대를 만든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라이벌 김구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대의를 위해 야심을 접을 수도 있는 큰 그릇이었던 것이다.

보수 야당들의 비판과 달리 문 대통령은 김원봉을 높이 띄우지 않았다. 김구와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김원봉과의 통합을 언급했을 뿐이다.

사실, 김원봉의 실제 활약상을 생각한다면, 문 대통령이 김원봉을 좀더 직접적으로 칭송했다 해도 별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격찬을 한다 해도 그의 희생과 용기에 보답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강렬하게 격찬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아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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