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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5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오신환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5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오신환 원내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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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의 현실, 끝없는 내홍

손학규 대표체제 유지론, 정병국 혁신위론, 안철수 조기등판론, 안철수-유승민 공동대표론, 국민의당계-바른정당계 분당론 등 바른미래당에 대한 논의는 매우 다양하다. 이같이 다양한 논의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바른정당이 위기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신호다. 안정된 정치 세력은 체제가 공고화되기 때문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의 녹색 돌풍, 2017년 19대 대선에서 안철수 당시 후보의 의미 있는 득표율 기록, 2015년부터 조금씩 확대 되어온 개혁 보수 유승민의 입지, 3선급 중진 정치인 등 바른미래당은 성공할 수 있는 요소가 매우 많은 정당이었다. 그러나 현재 바른미래당은 전에 없는 위기 상황이다.

위기의 원인에 대해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관련 기사 : '정치 갈등' 중심에 선 바른미래당, 뒤바뀐 운명).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고 본다. 바로 '누구를 대표하는가?'의 문제이다.

정치, 그 중에서도 선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누구를 대표하는가'이다. 현재까지 한국 정치계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 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87년 13대 대선에서 YS의 PK, DJ의 호남, JP의 충청, 노태우의 TK라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후 1988년 14대 총선에서 위의 구도가 그대로 정당 구도로 굳어짐에 따라 한국 정치계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 체제로 나아갔다.

물론 이에 대해 2016년 20대 총선을 기반으로 크게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당시 안철수-국민의당은 호남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기에 전국 단위에서 유효한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 2018년 지방선거 역시 TK와 경남 서부에서 자유한국당이 분전하기도 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체제는 유효했던 것이다.

물론 계급-이념을 대표한 정당도 존재했다. 2002년 지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원내에 진입한 민주노동당 이후의 진보정당들이 그랬다.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 정당들은 블루칼라 노동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했기에, 이를 기반으로 전국 정당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바른미래당은 누구를 대표하는 정당일까. 소속 의원들의 구성을 놓고 보면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표 정치인인 안철수는 고향이 부산이며, 유승민 역시 대구가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이다. 원내대표인 오신환 역시 지역구가 서울이며 혁신위원장으로 거론되었던 정병국은 경기 북부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바른미래당은 특정한 이념-계급을 대표하는가. 이도 정확하지 않다.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의 출신 성분을 놓고 보면 민주노동당계 정당, 자유한국당계 정당, 더불어민주당계 정당, 정치 신인 등 그 출신이 치우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안철수 전 의원은 과거 '극중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안철수 전 의원이 2017년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을 때 주장했던 내용이다. 당시 한국 정치계에서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존재했다. 

안철수의 극중주의, 영국 자유민주당의 극중주의

그러나 극중주의(radical centrism) 정치세력이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이들이 성공을 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비슷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안철수의 극중주의와 가장 맞닿아 있는 정치세력은 영국 자유민주당과 닉 클래그(Nick Clegg)로 볼 수 있다.

영국의 자유민주당은 한 때 보수당과 함께 영국 정치계를 양분했던 정당이다. 글래드스턴, 애스퀴스, 로이드 조지와 같은 걸출한 수상들을 배출하기도 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윈스턴 처칠과 베버리지 역시 한 때 자유당 소속의 정치인들이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이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자유당은 이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또한 영국 농촌의 지주계급과 도시의 공장 자본가들은 보수당이 지지자로 포섭함에 따라 자유당은 빠르게 몰락했고 1945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393석, 보수당이 213석을 가져간 데 반해, 자유당은 고작 12석을 차지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이후 10년 넘게 자유당은 원내 10석도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지지부진 하던 자유당은 1988년 노동당 탈당파인 사회민주당 의원들과 세력을 규합하여 자유민주당을 창당한다. 이후 꾸준하게 성장세를 이어오던 자유당은 2007년 닉 클레그가 당수가 되고, 그가 급진적 중도주의가 자유당의 정신임을 강조하며 국가와 시장 사이의 중도적 입장을 자유당의 공식입장으로 상정하게 된다.

노동당과 보수당 모두에게 실망했던 유권자들과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던 자유주의 유권자들이 자유민주당에 지지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2010년 총선에서 자유민주당은 57석을 얻으면서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에게 연립정권 제의를 받았고, 닉 클래그 자유민주당은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수립하는 등 정치적으로 부활하기도 했다. 

안철수의 '생각' 그리고 '현실'

안철수 전 의원이 극중주의를 내건 건, 영국 자유민주당의 모델을 참고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안철수 전 의원은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양대 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를 규합하고 시장중심과 국가중심주의 모두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적 개인주의자들을 규합하여 당을 경영할 것임을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생각'은 정확했을 수도 있다. 안철수 전 의원 자신이 정치적으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과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국민의당의 선전은 분명 위와 같은 정치적 요구를 대표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의 '현실'은 이제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과 합당 함에 따라 물리적 세력은 확장되었다. 그러나 유승민 의원을 위시한 바른정당은 기본적으로 보수주의 정치세력이다. 안철수 의원은 보수주의도 품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바른정당과 합당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탈당파이면서 보수주의자들인 바른정당 의원들과의 합당은 국민의당과 안철수가 대표하던 유권자들이 지지를 포기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안철수 전 의원의 극중주의는 자신과 국민의당의 선전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주창한 이념이었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대표했던 유권자들은 양당에 대해 실망한 유권자들과 국가중심 주장과 시장중심 주장 어디에도 포섭되지 않은 정치적 개인주의들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 전 의원의 미래 예측은 현재까지로는 틀린 것으로 보인다. 보수세력을 포섭하면서 안철수-국민의당이 대표하던 유권자들이 지지를 거둔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바른정당과의 합당은 물리적 세력을 넓혔지만 현재의 지지자들과 잠재적 지지자 모두를 잃게 만든 악수였던 것이다.

과연 현재의 바른미래당은 생존할 수 있을까. 끝없는 분당 논쟁이 발생하는 바른미래당의 생존은 역설적으로 분당에 있을 수도 있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대표했던 유권자들은 분명히 존재하며 현재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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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사회복지학 학사 졸업. 사회학 석사 졸업. 사회학 박사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