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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면 금개구리들의 울음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대장동 들판이 신도시건설 논란으로 시끄럽다. 지난 5월 7일, 부천시가 발표한 대장동 신도시 개발 계획에 따르면 대장동, 오정동, 원종동 일원 약 343㎡(104만평)에 주택 2만 호가 건설되고, 첨단 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멀티스포츠센터와 수변공원 등이 들어선다고 한다.

고질적인 교통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김포공항역과 부천종합운동장역을 S(Super)-BRT(간선급행버스)로 연결하고, 고강IC와 서운IC가 신설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산업·문화·주거가 공존하는 친환경 명품 스마트 자족도시가 곧 우리 부천에 출현할 예정이다.

발표가 나자 대장동에는 신도시 건설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었다.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재산권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교육, 의료, 교통 등 각종 주거 환경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당해온 주민들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다수 환경 단체들은 녹지율이 전국 꼴찌 수준인 부천에서 대장동마저 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장이 세워진다면 부천의 각종 환경지표는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장동 들판을 통해 유입되는 신선한 바람이 차단되어 안 그래도 최악인 부천의 열섬현상과 대기오염은 더욱 가중될 것이고, 재두루미, 제비, 금개구리, 맹꽁이 등 다양한 보호종들도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 신도시로 지정된 대장동 들판은 인근 김포공항 논 습지와 함께 법정보호종 32종(야생조류 27종, 양서.파충류 4종, 포유류 1종)이 서식하는 수도권 생태계의 보고(寶庫)로서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대기오염과 열섬현상의 완화를 위해서도 대장동 들판은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또 한 가지,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휴식과 치유를 위해서도 대장동 들판은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어찌 보면 그곳은 사막 속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도시 한 가운데 이처럼 드넓은 평야가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축복이다.

이따금 가슴이 답답하거나 마음이 우울할 때면 대장동 들판으로 나가보라. 우중충한 도시의 콘크리트 숲에 갇혀 있다가 대장동의 탁 트인 들판을 마주하면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듯 가슴이 후련해진다. 그곳에는 물과 바람과 흙으로만 이루어진 태고의 자연이 있고, 크고 작은 생명들이 빚어내는 삶의 환희가 있다.
 
황금빛 들판 위로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이 절모한 구도를 이루었다.
▲ 가을, 대장동 들판 황금빛 들판 위로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이 절모한 구도를 이루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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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 건설 계획이 발표 된 후 대장동 들판을 다시 찾았다. 지난해 가을 방문 이후 불과 몇 달 사이지만 왠지 내가 아는 대장동이 아닌 것 같아 낯설다. 상당수 논들은 아직도 성토(成土) 작업이 진행 중이고, 풀 한 포기 없는 논둑엔 백로 몇 마리 우두커니 선 채 갈 곳을 잃었다. 비닐하우스도 많이 늘어났고 아예 과수원이나 밭으로 변신한 논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하지만 곧 대규모 아파트와 공장이 곧 들어선다고 하니 이런 모습이나마 볼 수 있는 날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비록 30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여 금개구리와 재두루미가 마음 놓고 서식하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해도 많은 이들이 원하는 대장동이 그렇듯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주변의 논들보다 한층 높이가 높아졌다.멀리 보이는 산은 부평 계양산이다.
▲ 성토 공사를 마친 대장동 들판의 논 주변의 논들보다 한층 높이가 높아졌다.멀리 보이는 산은 부평 계양산이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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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장동 들길을 걸으며, 대장동을 생명과 환경,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심 속 농촌 마을로 꾸몄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능형로봇, 첨단소재, 항공, 드론 등과 같은 첨단 제품의 생산기지로서 보다는, 대장동 들판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린 채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가, 공예가들이 거주하며 창작 활동에 전념하는 그런 공간 말이다.

더구나 부천은 지난 2017년 동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아닌가? 관광산업과 연계하여 주민들의 소득도 증대하면서 문학창의도시로서 부천의 특색도 살린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데부둑은 동부간선수로라고도 하며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인공수로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강 물로 대장들, 중동들, 오정들, 고리울들, 신상리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지었다.
▲ 데부둑에서 만난 왜가리 데부둑은 동부간선수로라고도 하며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인공수로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강 물로 대장들, 중동들, 오정들, 고리울들, 신상리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지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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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라질 대장동 들판의 운명을 예감하듯 위태롭게 서있다.
▲ 둘레길에서 만난 솟대 곧 사라질 대장동 들판의 운명을 예감하듯 위태롭게 서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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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부천의 시인들이 힘을 합쳐 <60인, 부천을 노래하다>라는 시집을 펴낸 바 있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작가회의 우형숙 교수에 의해 영문으로 번역되었다. 서너 분의 시인이 대장동 들판을 소재로 한 시를 썼는데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이제 곧 대장동이 개발된다고 하니 어쩌면 이 시가 대장동을 노래한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기장수 설화, 말 무덤 이야기 등 대장동 들판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또한 개발과 더불어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대장동 들판에 서서>

대장동 들판에 서서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의 황금물결과
그 물결 너머로 불끈 솟아오른
북한산 연봉(連峯)들을 보지 않으셨다면
아직 부천에 대해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눈 덮인 대장동 들판에 서서
무리지어 나는 새들의 화려한 군무(群舞)와
그 새들의 우렁찬 울음소리
들어보지 않으셨다면
아직 부천에 대해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그 마을 어름의 허름한 목로주점에 앉아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아기장수와 말 무덤에 대한 얘기
들어보지 않으셨다면
아직 부천에 대해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그렇더라도, 대장동 들길을 걸으며
멀리 계양산 너머로 스러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지 않으셨다면
그 해를 바라보며 맥없는 눈물 한 방울
흘려보지 않으셨다면
아직은 부천에 대해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 현해당 시, <대장동 들판에 서서> 전문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콩나물 신문에 연재되었습니다.


태그:#대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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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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