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간 KBO리그에 타고투저 현상이 심해지면서 타자들의 홈런수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여전히 200홈런은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실제로 KBO리그 38년 역사에서 200홈런 고지를 밟은 선수는 아직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야구에 관련된 모든 면에서 '천재'라는 말을 들었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LG트윈스 2군 총괄코치, 194개)이나 역대 최고의 외국인 거포로 불리는 타이론 우즈(174개)조차 200홈런에는 미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서 200홈런은 국내 타자들에게 더욱 어려운 고지였다. 한국에서는 2002년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였던 '빅초이' 최희섭을 시작으로 KBO리그를 평정했던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박병호(키움 히어로즈),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현수(LG), 황재균(kt 위즈) 등이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200홈런은커녕 통산 50홈런을 기록한 선수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00년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180cm의 크지 않은 체격을 가진 이 선수가 미국 진출 19년, 빅리그 데뷔 15년 만에 메이저리그 200홈런 고지를 달성했다. 5일 볼티모어 올오리올스전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최초로 빅리그에서 200번째 홈런포을 쏘아 올린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추 트레인' 추신수가 그 주인공이다.

'거포형 타자'가 아니었던 이치로와 미국 진출 시기가 늦었던 마쓰이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왼쪽)가 2019년 5월 18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전 투런 홈런을 터뜨린 후 동료 제프 메티스(오른쪽)와 자축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왼쪽)가 2019년 5월 18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전 투런 홈런을 터뜨린 후 동료 제프 메티스(오른쪽)와 자축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추신수가 시애틀의 마이너리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지난 2001년, 시애틀은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 이치로 스즈키를 영입했다. 노모 히데오, 박찬호, 고 이라부 히데키, 김병현 등 아시아 투수들이 빅리그에서 통한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됐지만 아시아 타자의 성공여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많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치로는 빅리그 데뷔 첫 해 타율(.350)과 최다안타(242개), 도루(56개) 부문 1위에 오르며 아메리칸 리그 MVP와 신인왕을 휩쓸었다.

이치로의 대성공 이후 일본인 타자들에 대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고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는 지난 2003년 일본에서 세 번이나 홈런왕을 차지한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를 영입했다. 마쓰이 역시 빅리그에 데뷔하자마자 2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며 일본인 거포도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사실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2001년부터 올해 초까지 햇수로 무려 19년 동안 빅리그에서 활약한 이치로는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262개)을 비롯해 통산 3089안타와 10년 연속 올스타 출전 등의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장타보다는 공을 맞추는 능력에 특화된 이치로는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시즌이 단 3회에 불과했다. 안타기록 만으로도 충분히 '전설'이 될 만한 위치에 올랐지만 통산 홈런은 117개에 불과(?)했다.

만 29세였던 2003년부터 빅리그 커리어를 시작한 마쓰이는 빅리그 진출시기가 다소 늦은 것이 아쉬웠다. 빅리그에서 정확히 10년 동안 활약한 마쓰이는 2004년 31홈런, 2005년 23홈런, 2007년 25홈런, 2009년 28홈런을 기록하며 뛰어난 장타력을 뽐냈다. 하지만 언제나 꾸준했던 이치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상이 많아 기복이 심했던 마쓰이는 2012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면서 통산 175홈런 760타점으로 빅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이치로와 마쓰이의 성공 이후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대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지만 성공사례는 6년 동안 .285 33홈런 98도루를 기록한 아오키 노리치카(야쿠르트 스왈로스) 정도 밖에 없다.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지마 겐지가 48개, 이구치 다다히토가 44개, 후쿠도메 고스케가 42개로 상위권에 있을 만큼 빅리그에서는 50홈런 고지를 밟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꾸준했던 추신수, 아시아 최초로 200홈런 등극

부산고 3학년 시절 투수로 시애틀과 계약한 추신수는 미국 진출 후 타자로 전향했다. 물론 고교시절의 추신수는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던 '초고교급 투수'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상대적으로 체격이 크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야수 전향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시애틀 시절에는 '슈퍼스타' 이치로와 포지션이 겹치며 자리를 잡지 못하던 추신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이적 후 2008년부터 풀타임 빅리거로 자리 잡았다.

사실 추신수는 마쓰이처럼 뛰어난 파워를 앞세운 전형적인 장거리 타자 유형은 아니다. 하지만 빠른 배트스피드와 타구 속도로 체구에 비해 긴 비거리를 만들어내는 타자로 유명하다. 실제로 손가락 부상을 당했던 2011년을 제외하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년 동안 7번이나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했다. 게다가 뛰어난 선구안은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고액연봉을 받으며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다.

추신수는 한 번도 시즌 25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적은 없지만 20홈런 시즌을 6번이나 만들었을 정도로 꾸준히 장타를 생산하는 선수다. 작년 시즌엔 후반기 부진으로 만족스런 시즌을 보내지 못했지만 전반기에만 타율 .293 18홈런 43타점을 기록하는 대활약으로 빅리그 데뷔 14년 만에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200홈런 고지를 점령하며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추신수의 홈런 기록은 한동안 아시아 선수가 깨기 어려운 기록이 될 전망이다. 현재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아 타자는 최지만(템파베이 레이스)과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뿐이다. 하지만 최지만은 만28세 시즌에 실질적인 빅리그 풀타임 첫 시즌을 보내고 있다(게다가 최지만 역시 많은 장타를 치는 유형은 아니다). 루키 시즌에 22홈런을 쳤던 만24세의 오타니는 팔꿈치 재활을 마칠 경우 타격에만 집중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추신수는 통산 타점에서도 734개로 아시아 역대 1위 이치로(780개)에게 46개 뒤져 있다. 추신수가 1번 타자로 나오면서 타점 생산 속도는 예전같지 않지만 늦어도 내년 전반기 정도엔 충분히 아시아 최다 타점 1위에 등극할 수 있다. 추신수는 이치로 만큼 큰 업적을 남기지도, 마쓰이 만큼 큰 임팩트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아시아 타자들은 모두 '아시아 최초의 200홈런 타자' 추신수를 목표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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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 추추 트레인 200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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