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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트레일 중 가장 길고 험하다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피시티) 4300km. 미국 LA 문화단체 '컬쳐앤소사이티' 기획으로 고난의 행군을 자처한 한국 하이커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 기자말
 
햇빛의 줄기 수많은 가닥의 햇살이 나무를 가르며 나의 길에 빛을 비췄다. ⓒ 주민수
 
'고시원, 학원, 독서실' 공시생 삼각지대 

오전 6시. 두 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 휴대전화 알람 소리가 울린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다. 좁은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 공용 부엌으로 내려간다. 스팸을 굽고 라면을 끓여 배를 채운다. 오전 7시 독서실 앞에서 스터디원들과 만나 인사를 하고 각자 공부하러 간다. 이른바 기상스터디다. 공부할 의지가 약하거나 아침잠이 많은 공시생들이 주로 한다.

학원 앞이다. 강의실 문에는 벌써 공책들이 긴 줄을 서고 있다. 200~300명을 수용하는 대형 강의실의 앞자리를 맡기 위해 원생들이 본인 대신 공책으로 줄을 세우고 공부하러 간 것이다. 점심밥이라고는 학원과 독서실 사이를 이동하며 먹는 3000원짜리 컵밥이 전부다. 학원 강의가 끝나면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공시생은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일과를 보낸다.

꽉 막힌 생활이 답답했다. 스트레스로 여드름이 얼굴을 가득 덮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외출도 안 했다. 내가 준비하고 있던 것은 토목직 공무원. 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친다는 것 자체가 꿈이 없는 청년, 낙오자 같았다. 2016년 10월, 나는, 서울 노량진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THIS IS ME 세상에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다. ⓒ 주민수
     
'유레카' 피시티의 꿈을 키우다
 
미국 캘리포니아 종단 4300km 트레킹 루트인 피시티(Pacific Crest Trail)를 알게 된 것은 대학친구가 나와 성향이 비슷할 것 같다며 세계여행을 하는 A를 소개해주면서다.

A의 인스타그램에서 여행 사진이 부지런히 올라왔다. 내가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있을 때쯤 A의 인스타그램에는 피시티 사진으로 도배됐다. 끝 없는 사막, 드높은 푸른 하늘, 야생의 눈길 등 대자연의 풍광들이 펼쳐졌다.
 
그러던 어느 날 피시티가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 <와일드>(Wild)를 봤다. 주인공은 망가지고 힘든 삶 속 인생의 전환점으로서 피시티에 도전했다. 여정에서 본인의 존재 이유와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았다. 마음 속으로 '유레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 안방에 있던 엄마와 아빠를 깨워 피시티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엄마, 아빠! 나 미국 좀 다녀올게! 걸으면서 하는 여행 같은 건데 6개월 정도만 시간을 줘! 돈도 얼마 안 들 거야!"

아빠는 말씀하셨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잠이나 자! 여행을 가고 싶은 거면 돈 보태줄 테니까, 짧게 갔다 와."

친구들에게 피시티에 가겠다고 말했다. 한결같이 부정적인 말만 골라 했다.

"4300km를 니가 어떻게 걸어?"
"잠은 어디서 자?"
"밥은?"
"곰 만나면 어쩌려고?"

    
사생결단의 각오가 없었던 시험은 낙방이 불보듯 뻔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미리 받아뒀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캐나다 토론토로 도피했다. 부모님께는 괜찮게 시험을 본 것 같다며 결과가 나오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캐나다 생활에 적응할 무렵, 어머니께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직접 군청에 전화해 나의 낙방 소식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토론토에서는 옷가게 유니클로에서 일했다. 오전 6시 30분 일을 시작해 창고로 옷 상자를 나르고 재고를 조사했다. 오후에는 새롭게 입고된 상품을 확인해 창고에 배치했다. 종일 박스를 나르느라 허리가 늘 찌릿했다. 박스에 팔이 긁혀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일과가 끝날 무렵이면 발이 띵띵 부어 신발에 꽉 끼었다. 
 
월급을 받는 족족 비싼 산악 브랜드의 장비를 하나씩 사 모았다. 첫 달에는 등산복 상의, 다음 달에는 배낭, 그 다음에는 바람막이를 샀다. 친구들에게 습관적으로 피시티에 갈 거라고 말했다. 나에 대한 약속이었다.
  
한 달 뒤처진 출발, 물집과의 전쟁
 
캘리포니아 주 최남단 멕시코 국경 마을 캄포(Campo)에서 워싱턴 주 최북단 캐나다 국경지대 매닝파크(Manning Park)까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루트를 하이커들은 '피시티 노보(PCT North Bound)'라고 부른다.

이곳으로 가려면 늦어도 4월 초에는 출발해야 눈이 오기 전 워싱턴 주를 통과해 10월까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5월이 돼서야 트레킹을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하다 일정이 늦어진 것이다. 도전을 다음해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2018년 5월 3일 캄포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시작점에서 32km 구간 동안 물이 없다는 하이커들의 말에 6리터 물을 배낭에 넣고 걸었다. 배낭 무게는 옷과 기타 장비를 포함해 20kg, 일주일 치 식량 4kg, 거기에 물 6kg까지, 도합 30kg 가까이 됐다. 세상 근심과 걱정을 짊어진 듯 무거웠다.

한발 한발 내딛기가 어려웠다. 매 순간 무릎이 아파왔다. 40도에 달하는 5월의 뜨거운 사막 열기가 나를 짓눌렀다. 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발볼이 넓어 평소 신발보다 15mm 더 큰 것을 신었다. 그래도 작았는지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가 접혀 물집이 잡혔다. 500원짜리 크기 물집이 양쪽 발바닥 중앙에 생겼다. 사흘째가 지나자 양쪽 새끼발가락, 양발 뒤꿈치에 100원짜리 물집이 생겼다. 
   
'아... 포기해야 하나'
 
물집 물집이 터지고 배긴 굳은 살 위에 또 물집이 생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 주민수
      
트레킹 일주일째 150km쯤 걷자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났다. 물집이 터진 상태에서 계속 걸어 고름도 생기고 악취도 났다. 결국 캘리포니아주 워너스 스프링스(Wanners Springs)에서 이틀을 쉰 뒤 다시 걸었다.

나무 그늘 밑에 모인 하이커들은 나의 발 상태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이커 라이언은 물집에 감염이 돼 살이 썩고 있다며 하이킹을 그만하라고 말렸다.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약국에서 1리터짜리 소독용 알코올을 사서 배낭에 넣고 계속 걸었다. 쉴 때마다 알코올을 상처에 콸콸 쏟아 부었다. 찌릿한 통증에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트레일 운행 15일째 캘리포니아주 빅베어 시티(Big Bear) 부근에서는 신발 깔창을 빼 신발 안 공간을 넓혔다. 쿠션이 없어지자 맨발로 자갈밭을 걷는 듯 했다. 양손으로 가방끈을 부여잡고 바닥만 보며 아장아장 걸었다. 발바닥이 아파 몸을 비비 꼬며 걷다보니 골반과 허리에도 통증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 달을 걸었다. 하루는 피고름에 쪄든 양말을 벗고는 더이상 못 걸을 것 같아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늘만 바라봤다. 귀국은 둘째 치고 사막에서나마 탈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차량 한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차가 다닐 만한 곳이 아니었다. 소리를 잘 지르지도 못하는 성격이지만 "CAR(차)!!!!!!"라며 목 놓아 소리쳤다. 차는 내 고함을 못 들은 척 지나가려 했다가 내가 필사적으로 부르자 브레이크를 밟았다.
  
Eagle Rock 워너스 스프링스(Wanners Spings) 직전에 독수리 형상으로 유명한 바위 ⓒ 주민수
  
워너스 스프링스(Wanners Springs) 워너스 스프링스(Wanners Springs) 커뮤니티 센터 큰 나무 그늘 아래 자리 잡은 하이커들. ⓒ 주민수
 
첫 히치하이킹이었다. 운전을 하던 백인 아저씨도 사막 한가운데서 사람이 튀어나와 엄청 놀랐다고 했다. 아저씨는 가는 길이 아닌데도 40km를 더 달려 캘리포니아주 레이크 이자벨라(Lake Isabella, 운행 40일째, 운행 거리 990km)까지 나를 데려다 줬다. 기름값을 드리려고 했지만 극구 사양했다. 치료에 힘쓰라고 나를 격려해 줬다.

고산병과 사투, 끝내, 산에서 구걸하다
 
사막 구간이 끝나자 몸 상태가 거짓말처럼 좋아졌다. 자신감도 생겼다. 매일 높은 산 1~2개를 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입맛도 없고 속도 안 좋았다. 머리도 아팠다. 고산병에 걸린 것이었다.

시에라 산맥 구간 나흘째 되던 날 미국에서 제일 높은 해발 4421m의 휘트니산에 오르면서 병은 더 심각해졌다. 오전 1시에 출발해 오전 5시 30분쯤 겨우 휘트니산 정상(운행 52일째, 운행거리 1232km)에 도착했다. 일출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바위에 몸을 일자로 뉘었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4시간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평소 30km를 걸었다면 고산에서는 10km도 못 걷고 뻗었다. 처음에는 조금만 쉬면 괜찮겠지 하고 나무에 기대어 숨을 골랐지만 이내 견디지 못하고 텐트를 치고 누워 버렸다.
 
다음날에는 피시티 일반 구간에서 가장 높은 포레스터 패스(Forester Pass, 4023m)를 넘었다. 아찔한 경사면이 이어졌다. 머리가 어지러워 한 발짝 걷고 쉬고를 반복했다. 나흘 동안 하루에 10km도 걷지 못했다. 그 다음 마더 패스(Mather Pass, 3696m)를 지나갈 때쯤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계속 아프다 보니 일정이 늦어졌고 식량을 계획보다 많이 소비한 것이다.

환경운동가 존 뮤어(John Muir)의 이름을 딴 뮤어 패스(Muir Pass, 운행 60일째, 운행거리 1400km)에 다다를 때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고산병 때문인지 배고픔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염치 불문하고 보이는 하이커들마다 붙잡고 스낵이 있냐, 빵이 있냐 음식을 구걸했다.

노란색 긴머리에 거친 영어 악센트를 가진 하이커는 자신이 채식주의자라 줄 게 이것밖에 없다며 생마늘 한 움큼을 줬다. 고마워 덜컥 받았지만 이걸 어떻게 먹나 싶었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마늘을 까서 한국에서 챙겨온 튜브 고추장을 짜서 발라 먹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알싸한 게 너무 맛있었다. 삼겹살마저 생각났다. 한 자리에서 마늘 7알을 먹어 치웠다. 이 정도 맛이라면 100일 동안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된 곰 이야기가 결코 신화만이 아니겠다는 생각도 났다.
  
정상 힘겹게 올라본 사람만이 돌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지난 과정. ⓒ 주민수
  
꾸르륵 꾸르륵, 설사병이 나다
 
피시티에서는 때로 인상이 구겨지는 더러운 물을 마셔야만 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하이커들은 휴대용 정수기를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중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지천에 눈이고 계곡이라 정수기가 크게 필요 없다. 눈 녹은 물이나 계곡물을 그대로 마신다.

그렇게 한 달째 마운틴 샤스타(Mt. Shasta, 운행 90일째, 운행 거리 2401km) 인근에서 탈이 나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종일 꾸르륵 거리더니 새벽부터 설사가 시작된 것이다. 잠은 고사하고 한 시간 간격으로 휴지를 챙겨 텐트 밖을 나와 큰 일을 해결했다.
 
하루는 같이 걷던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오후 3시까지 텐트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세상이 노랬다. 쉴 수만은 없어 뒤늦게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섰다. 하지만 다시 장에서 신호가 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바지를 내렸다. 평소 시간당 5km를 걸었지만 1km를 걷기가 힘들었다. 피시티 출발 이래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야생동물이나 걸린다는 병, 지아르디아

캘리포니아 북쪽 마지막 마을 에트나(Etna, 운행 95일째, 운행 거리 2575km)에 도착했다. 트레일을 시작한 지 약 10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설사로 너무 힘들어 피시티의 마지막 마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후 9시. 트레일 엔젤(Trail Angel) 케이트씨의 집 엔젤하우스에 문자를 했다. 피시티에서는 하이커를 돕는 자원봉사자를 트레일 엔젤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집에 수용 인원이 가득 찼다고 답했다.

무작정 엔젤하우스로 찾아가 나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아픈 줄 몰랐다고 했다. 다른 하이커들이 집 차고에서 텐트를 치고 자고 있는 사이 나는 특별한 환대를 받으며 집 안 게스트룸으로 들어갔다. 푹신하고 넓은 침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있어 다행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케이트와 함께 병원에 갔다. 검사 결과는 지아르디아(Giardia). 야외 오염된 물을 마시면 걸리는 병으로 세균이 창자 벽에 붙어 장내 통증과 구토, 체중 감소, 변에 심한 악취를 유발하는 병이었다. '설사에서의 지독한 냄새…' 의사의 진단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아르디아는 사람보다는 짐승이 걸리는 병이고, 사람의 경우 사냥꾼이나 낚시꾼들이 감염된다고 한다. 하지만 하이커들은 그들보다 더 더러운 존재니 이 병에 걸리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나는 케이트의 배려로 일주일 동안 그녀의 집에 머물렀다. 물 대신 스포츠 음료를 하루 5리터씩 마셨다.
   
Trail Family 동고동락하며 친구 이상의 존재로 큰 힘이 되었던 Trail Family. + PCT CAT(좌측 두번째 친구 손 위) ⓒ 주민수
 
"돈보다 사랑을 하라"는 백인 할아버지

하이킹 중 감명을 준 사람을 많이 만났다. 북부 캘리포니아 초입 시에라 시티(Sierra City, 운행 81일째, 운행 거리 1923km)를 지나던 날이었다. 캠핑장에 있던 70대 백인 할아버지들이 피시티 하이커냐고 먼저 물어왔다. 맥주를 가져다 마셔도 좋다고 했다.

친구들과 나는 "Sure! Why not!"을 외치며 맥주 한 캔씩을 받아서 돌아왔다.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캔이 비어버렸다. 맥주가 더 얻기 위해 염치 불문 낯짝 두껍게 할아버지 텐트로 갔다. 할아버지들은 얼마든지 마시라며 맥주를 주셨다. 바로 돌아오기 죄송한 마음에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두 분은 오랜 친구 사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보이스카우트로 만나 캠핑을 하며 친해졌다고 했다. 표정이 심각했던 브루스 할아버지는 2년 전 암으로 부인을 하늘로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부인을 좀처럼 잊지 못하자 친구가 브루스 할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캠핑장에 함께 온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친구 할아버지는 브루스 할아버지를 보며 "이 친구는 집이 두 채나 있어. 우리 정말 열심히 일했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일궜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브루스 할아버지는 고요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내를 잃으니 열심히 일한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사랑하는 사람이랑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사랑을 해."
   
미국에서 만난 '한국의 情'
 
언어 장벽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외국인 하이커들이 많이 도와줬다. 수염이 덥수룩 했던 하이커 스노우 화이트는 나의 등산화에 문제가 생기자 신발 업체 고객센터에 전화해 등산화를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줬다.

신용카드에 문제가 생겨 택배비를 계산하지 못하자 본인 카드로 돈을 내주기도 했다. 화이트는 집 잃은 새끼 고양이마저 안고 피시티를 걸었다. 고양이 별명은 '피시티 캣(PCT Cat)'이 됐다.
 
한인 이민자들도 만났다. 워싱턴 주 구간을 지날 때 산불 때문에 정상 루트가 막혀 길을 돌아가야 했다. 대체 루트에는 골드마인 핫스프링스(Goldmyer Hot Spring, 운행 139일째, 운행 거리 3856km)라는 자연 온천이 있었다.

온천에 다다를 때쯤 희미하게 한국말이 들렸다. 미국에 오래 전 이민을 한 한인 아주머니들이었다. 입 밖으로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아주머니들은 어떻게 그 긴 길을 걸을 수 있냐며 김밥과 겉절이 김치를 내주셨다. 마법과도 같은 맛이었다.
  
Snow White with PCT CAT 버려진 고양이와 함께 하이킹을 시작한 친구 스노우 화이트 ⓒ 인스타그램 @pctcat18
      
한국 트레일 엔젤 골드마이어 온천에서 만난 시애틀 교민분들 ⓒ 주민수
  
끝이 보이니, 멈추고 싶었다

캐나다 국경 매닝파크 도착 전까지 1.6km 전이었다. 비가 마구 쏟아졌다. 눈에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흘렀다. 비에 눈물을 감추며 걸었다. 일부로 천천히 걷기도 했다. 식수를 수급하는 마지막 워터포인트에 멈춰 서고는 있던 물을 버리고 새로운 물을 받았다. 피시티에서의 마지막 물이구나 생각하며 시원하게 들이켰다.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양치질도 했다. 힘들 때마다 듣는 노래, 가수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틀었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렀다.

2018년 10월 1일. 출발한 지 152일만에 피시티를 완주했다. 도착 지점에서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담담했다. 맥주 한 캔을 따서 하이커들과 자축했다.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일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게 짜증 나는 상황들이 허다했다. 하지만 결승점이 가까워져 올수록 힘들었던 기억이 사라졌다. 왜일까? 답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PCT 모뉴먼트 캐나다 국경의 PCT 모뉴먼트에 도착한 후 완주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 주민수
 
태그:#주민수, #피시티, #PCT, #트레킹, #43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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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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