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부들의 힘찬 멸치털이에 멸치가 하늘로 쏟구치고 있다
 어부들의 힘찬 멸치털이에 멸치가 하늘로 쏟구치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풍경이 있다. 멸치잡이 어선의 멸치털이 풍경이다. 그물코마다 빼곡하게 걸린 멸치가 가을첫 갯바위에 지천으로 널렸다. 나는 그런 풍경을 보며 자랐다.

어부들은 멸치배를 '멸배' 또는 '사시아미배'라고 부른다. '사시아미배'는 일본말을 가져와 사용한 것인데, 사전적 의미로 '자망'이 그 어원이다. 자망은 물고기가 그물코에 걸리도록 하여 잡는 걸그물이다. 그물코에 걸린 멸치를 제거하는 법이 바로 '멸치털이'였다.

잊혀가는 멸치어선의 멸치털이 풍경
 
멸치잡이 어부들의 힘찬 멸치털이 모습
 멸치잡이 어부들의 힘찬 멸치털이 모습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그물코마다 빼곡히 걸린 멸치털이 풍경
 그물코마다 빼곡히 걸린 멸치털이 풍경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으샤으샤 만선인 멸치그물을 터는 어부들
 으샤으샤 만선인 멸치그물을 터는 어부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봄멸치잡이 어장은 4월 중순부터 6월말까지, 약 2개월 반이 절정이다. 수온이 올라 멸치어장이 잘 형성되기 때문이다. 멸치는 젓갈과 정어리쌈, 회가 별미다. 요즘 잡히는 멸치는 알배기 젓갈로 최고다.

풍어의 상징인 '멸치'는 서민들 식탁에 늘 빠지지 않는 밑반찬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이렇게 친숙하고 사랑받고 있지만 사실 멸치는 이름부터 불우하다.

어원을 살펴보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벼슬아치들은 멸치(蔑治)를 업신여기고 멸시한 듯하다. 그래서 멸치의 '멸' 자도 업신여길 멸 자를 썼다. 한편 멸치는 본래 습성이 급하기 때문에 그물로 잡아 올리면 바로 죽어버린다고 해서 '멸할 멸'(滅) 자를 쓰기도 했다고도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전 이맘때면 멸치어장이 잘 형성됐다. 수십 척의 배들은 멸치로 만선이었다. 하지만 멸치어장은 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갔다. 

한 어민은 "올해 멸치가 안 나서 한상자에 12만 원을 호가한다"라면서 "멸치가 금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맘때면 늘 마을 앞바다에서 수 척씩 멸치잡이 작업을 하는데 올해는 초사리때 한두 척 와서 잠깐 작업하더니 그 뒤로는 멸치배가 잘 안 보인다"라고 부연했다.

멸치잡이 어부의 투박한 인심 "지금도 그립다"
 
멸치잡이 선단 윤경호 두척이 멸치를 털고 있는 모습
 멸치잡이 선단 윤경호 두척이 멸치를 털고 있는 모습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여수수협위판장에서 멸치의 위판 모습
 여수수협위판장에서 멸치의 위판 모습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멸치가 금치. 요금 위판된 멸치는 한상자에 12만원을 호가한다
 멸치가 금치. 요금 위판된 멸치는 한상자에 12만원을 호가한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멸치잡이 어부들의 멸치털이 풍경을 보면 저절로 삶의 활력이 느껴진다. 10여 명의 어부들이 한줄로 쭉 늘어선 채 멸치그물을 턴다. 이 모습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고참 선원의 선창에 따라 후렴구에 맞춰 손 쉴 틈 없이 위아래로 내리 터는 멸치털이 풍경은 그야말로 역동성이 느껴진다. 삶에 치쳤다면 한번쯤 어부들의 멸치털이 풍경을 찾아가 보길 권한다.

멸치어장이 풍성했던 필자의 고향 남면 안도와 소리도권 앞바다는 지금은 덜하지만 한때 멸치의 황금어장이었다. 그래서 어린시절 이맘쯤 갯바위에서 멸치배의 멸치털이 장면은 흔했다. 눈을 돌리면 지천으로 널린게 멸치털이 풍경이었다. 어린 소년은 반찬을 얻으려고 냄비를 들고 주위를 서성이면 냄비 가득 퍼주던 어부들의 투박한 인심이 지금도 그립다.

하지만 십수 년이 흐른 뒤 멸치잡이 어장은 서서히 소멸되고 있다. 자원의 고갈도 고갈이지만 멸치어선은 무엇보다 선원들이 많이 필요한 노동집약적인 어장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선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란다. 그래서 멸치어선의 멸치털이 모습은 보기 드문 귀한 풍경이 되고 있다. 요즘처럼 삶이 버거울 때 멸치잡이 선원들의 힘찬 멸치털이 풍경이 우리 맘에 작은 위로가 되려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봄멸치, #멸치털이 풍경, #헝가리 사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