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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도중 사망한 19살 김모씨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2일 오후 사고현장인 구의역 9-4승강장에 모여 추모행사를 연 뒤 고인의 분향소가 차려진 인근 건국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촛불행진을 벌였다.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도중 사망한 19살 김모씨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2일 오후 사고현장인 구의역 9-4승강장에 모여 추모행사를 연 뒤 고인의 분향소가 차려진 인근 건국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촛불행진을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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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사고를 당한 청년들의 공통점이 있다."

김종민 '청년전태일' 대표는 깊은 한숨을 쉬며 두 가지를 언급했다.

"다들 집안이 가난했다. 그리고 바보같이 착했다."

그는 현장에서 산재사망사고를 당한 청년들은 대부분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특성화고를 선택했고, 바로 취업해 일했다"면서 "다들 성격이 착하고 모질지 못해서 잘못된 상황에서도 묵묵히 참고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3년 전인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사고로 숨진 김군은 1997년 생으로 열아홉 살 사회초년생이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후 2인 1조 근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당시 김군의 월급은 144만원이었다.

김군 사망사건 3주기(28일)를 앞두고 <오마이뉴스>는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인근에서 김종민 '청년전태일' 대표를 만났다.

청년단체 '청년전태일'은 2016년 2월, 김 대표를 비롯한 청년노동자들이 '사각에 있는 청년문제를 좀 더 직접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현재는 후원회원을 포함해 200명의 시민이 활동 중이다.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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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전태일에 큰절 한 김군 어머니

3년 전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강변역 방면 구의역 내선순환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용역업체 은성PSD 직원 김OO군이 사망했을 때, 김 대표는 '뭐라도 해야 겠다'라는 생각에 빈소를 찾아갔다.

"김군 사고 이틀 뒤에 빈소에 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울고만 계시더라. 김군 이모가 조심스럽게 '이미 회사 사람들이 와서 합의하자'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주셨다. 그 순간 정말로 '뭐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는 '청년전태일' 회원들과 함께 김군이 사고를 당한 구의역 9-4 승강장을 찾았다. 그날부터 사고현장에 포스트잇을 달고 현장을 지켰다. 청년들의 행동에 시민들이 응답했다. 시민들은 포스트잇에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행복해야 해' '아들 같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 김군을 위로하는 글과 국화꽃을 남겼다.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안전'을 이유로 제거되는 촌극이 벌어지자 청년전태일은 더 많은 청년들과 함께 구의역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뒤 5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김군이 잠든 빈소를 향해 행진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김군의 어머니가 나와 계시더라. 그 순간 어머니께서 저희에게 큰절을 하셨다. '너무 고맙다, 여러분 덕분에 위로 받았다'라는 말과 함께. 저희도 놀라서 어머니께 바로 큰절을 올렸다. 뭉클하고 뿌듯했다. 청년전태일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명확히 보였고."

이후 권영국 변호사를 단장으로 하는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재해 해결과 안전사회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 꾸려졌다. 조사단 결과가 발표된 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정비사 인원을 늘리고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2016년 19세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현장
 2016년 19세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현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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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도중 사망한 19살 김모씨를 추모하는 추모 메모지가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빼곡하게 붙어있다.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도중 사망한 19살 김모씨를 추모하는 추모 메모지가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빼곡하게 붙어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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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어지는 청년들의 죽음

그러나 구의역 김군의 죽음 이후에도 청년들의 사망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민호군은 2017년 11월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기계 정비 중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했다. 서귀포산업과학고 소속으로 19살이었다.

1년 뒤인 지난해 12월,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인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씨가 태안발전소 석탄 운반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현장에서 즉사했다. 야간 2인 1조로 근무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인력수급 문제로 김씨는 홀로 근무했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수원 공사현장에서 근무하던 스물다섯 청년 김태규씨가 추락해 사망했다. 사망한 김씨는 안전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안전장비조차 지급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청년들의 연이은 죽음을 목도한 김 대표는 "김군을 비롯해 이민호, 김용균, 김태규씨까지 말 그대로 부품처럼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면서 "이들 중 현장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안전이 보장되는지 정보를 받은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산재사망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다. 10가지 사고 위험이 쌓이고 쌓인 상황에서 청년들이 일을 하다 사망한 것이다."

"왜 이렇게 현장이 변하지 않는 것 같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사람 목숨이 기계 값보다 싸서 그렇다"라는 답을 내놨다.

"사업주 처벌규정이 없다. 한마디로 '기업살인처벌법'이 없다. 잘못된 환경에서 일하다 죽어도 사장은 책임이 없다. 벌금 몇 천만 원 내면 끝이다. 제주 실습생 이민호가 사망한 사건으로 제주라바를 생산하는 '제이크레이션' 사장이 3년 구형을 받았는데, 선고는 집행유예였다."

김 대표는 "현장실습을 나간 이민호군을 죽인 프레스는 종종 고장을 일으키는 기계였다"면서 "이 프레스를 운영하던 민호의 사수는 프레스의 위험성을 알고 먼저 퇴사했다. 기계가 자주 이상신호를 보낼 때 기계를 교체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우리는 민호를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민호군 사망사건 때도 제주도에 내려갔다. 그는 "처음에는 빈소만 다녀오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2주 동안 제주도에 머물렀다"면서 "당시 민호가 다니던 특성화고의 107명 학생들이 친구 이민호의 죽음에 대해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재학생 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청년전태일'의 활동은 태안화력 김용균씨가 사망했을 때도 이어졌다.

"청년들을 위한 청년 단체, 청년전태일"
 
 청년전태일 후원약정서
 청년전태일 후원약정서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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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대표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시민단체 상근자들의 생활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 대표는 청년전태일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야간 대리운전을 병행하고 있다.

"대리운전을 하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적도 있다. 서로 알아보긴 했는데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약간 민망하기도 하고 애매하더라."

청년전태일 상근자는 지금까지 70여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회원들의 숙고 끝에 지금은 최저임금인 175만 원을 맞춰주고 있다"며 "앞으로 누가 상근이 돼 청년전태일을 이끌어 나갈지 모르지만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사업에 전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86년생인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고등학생 때 안국역에서 효순-미선 촛불집회를 처음 봤다"며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사건"이라는 김 대표. "효순-미선 사건이 내 '양심'에 '이건 뭔가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2011년 서울시립대 학생회장 시절엔 박원순 시장과 협상을 통해 대학가 최초로 반값등록금을 이끌어냈다. 김 대표는 "당시 우리 학교 황승원씨가 아르바이트를 하다 이마트 냉동창고에서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등록금 대출금 빚 1000만 원을 갚기 위해 그 멀리까지 알바를 갔던 거다.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70년 스물둘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요구한 것이 '근로기준법 준수하라'였다. 김 대표는 "당시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면서도 "청년들에겐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청년문제는 노동의 영역이다. 노동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청년문제도 해결 안 된다. 아침에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청년들이 어떻게 정치와 지역에 관심을 갖나?"

김 대표는 "청년들은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것"이라면서 "실질 임금이 올라야 청년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임금 올리려면 노조를 통해 단체 교섭을 해야 하지만 청년들 대부분은 이에 적용되지 않는다. 노조 조직률 확대만큼 최저임금도 계속 올라야 청년들이 생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한편, 구의역 김군의 3주기인 28일은 김태규씨의 49재이기도 하다. 청년전태일은 이날 저녁 6시 30분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김태규 49재 추모문화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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