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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쌈지공원에서 펼쳐지는 열정의 로큰롤 공연. 재야 고수 정유천 밴드가 신나게 CCR을 연주하고 있다. 그들(산곡2동 주민자치위원회)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쌈지공원에서 펼쳐지는 열정의 로큰롤 공연. 재야 고수 정유천 밴드가 신나게 CCR을 연주하고 있다. 그들(산곡2동 주민자치위원회)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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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금요일. 어스름 해질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꽤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메탈음악 같았다. 아파트 주민 누군가가 음악을 좀 크게 틀어 놨나 했다. 음악 중간중간에 함성이 섞여 들리는 것으로 봐서 콘서트 실황 앨범 같았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그건 녹음된 소리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누군가 직접 연주하는 라이브 음악이 분명했다. 와, 하는 함성도 육성이 분명했다. 주방 쪽 베란다 창문을 열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음악 소리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안 나가 볼 수 없었다.

공원 한 귀퉁이의 작은 무대였다. 얼핏 봐도 말도 안 되게 소박한 무대였다. 그냥 한단짜리 마루만 깔았고, 이렇다 할 조명도 없었다. 그래도 무대 위의 밴드는 사뭇 진지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레퍼토리는 미국밴드 'CCR'이었다. 아마추어인 듯했지만 연주는 수준급이었다. 이른바 재야의 고수들이 분명했다.

한창 넋놓고 공연을 구경하다 문득 이 조합이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쌈지 공원,  빵빵 울려 퍼지는 70년대 미국의 로큰롤 음악, 아무렇지도 않게 무대 앞을 쌩쌩 질주하며 즐거이 뛰노는 아이들, 흥에 겨운 듯 어깨며 엉덩이를 살짝살짝 들썩거리며 공연에 푹 빠진 아줌마와 아저씨, 돗자리를 깔고 한가로이 김밥과 음료수를 나누어 먹는 가족의 모습.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각들이 참으로 묘하면서도 예쁜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흔한 듯 흔하지 않은 마을 축제
 
 뻥튀기 하나도 나눠 먹으며 어르신도 아이들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모두 신나는 주민축제로 자리매김한 산곡2동 소소한 음악축제. 녹색야광 조끼 차림의 주민자치위원이 객석을 돌며 뻥튀기를 나눠주고 있다.
 뻥튀기 하나도 나눠 먹으며 어르신도 아이들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모두 신나는 주민축제로 자리매김한 산곡2동 소소한 음악축제. 녹색야광 조끼 차림의 주민자치위원이 객석을 돌며 뻥튀기를 나눠주고 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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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배경막에는 '산곡2동 소소한 음악회'라고 씌어 있었다. 얼핏 보면 그저 흔한 동네 축제다. 근데 축제의 콘텐츠는 결코 흔한 게 아니었다. 내가 갔던 그날은 밴드 데이였다. 밸리 댄스 공연으로 포문을 열고 두 팀의 밴드가 나와 헤비메탈과 로큰롤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었다. 

그런 식으로 축제는 모두 3일 동안 진행되는데, 이번 축제는 요들(알핀로제 어린이 요들단), 헤비메탈(미드래그), 로큰롤(정유천 밴드), 포크(경인고속도로), 전통풍물놀이(잔치마당 연희단), 클래식(제니 유) 등이 출연한다고 했다. 거의 모든 음악장르가 망라된 셈이다.

제목은 그냥 제목일 뿐 결코 소소하지 않았다. 문득 오랜 옛날 기획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아무리 무명일지라도 저 정도 내공의 연주자들 불러오려면 적지 않은 출연료를 지급해야 했으리라. 눈대중으로 대충 행사 전체의 '와꾸'를 뽑아 보았다. 예산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았다. 누가 판을 벌인 건지, 돈은 누가 대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연장 주변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뛰어다니는 스태프 한 분을 붙잡았다. 모두 초록색 야광조끼를 입고 있어 찾기도 쉬웠다. 자신을 그냥 평범한 자원봉사자라 밝힌 그 분은 이 행사가 산곡2동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유준)에서 1부터 10까지 다 하는 행사라고 알려줬다. 

주민자치위원회? 주민들의 소통에 기여하고 동네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그 주민자치위원회? 그야말로 자치적으로 자원봉사 나선 분들이 주민들을 상대로 기본질서를 계도하고 청소년을 선도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는 그 주민자치위원회? 전국 어느 동네에나 다 있는 주민자치위원회? 그런 단체가 음악 축제를? 그것도 헤비메탈까지?

"처음에 우리가 주민과 지역을 위해 뭔가 해보자 했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 중 제일 많은 의견이 음악 축제였죠."

유준 위원장은 처음 기획 당시를 회고했다. 그럼 어떤 음악을 할까를 의제로 걸었을 때도 백가쟁명 난상토론이 뒤따랐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모든 게 '돈'이었다. 수준 높은 음악에 지명도 있는 아티스트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 놈의' 예산이 문제였다. 그래서 기획을 먼저 하지 않고 일단 섭외가능한 분들부터 먼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주변 인맥 모두 동원해 '재능기부' 형태로도 출연할 수 있는 분들부터 모셨다. '선 섭외, 후 기획'이라는 다소 변칙적 추진방식은 그렇게 도입되고 정착됐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기꺼이 나서주겠다는 분들이 넘쳐났다. 좋은 취지에 공감하며 함께 하겠다는 아티스트들이 줄을 이었다. 흔쾌히 승낙하신 분들은 불문가지 일단 다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요들에서 헤비메탈에 이르는 버라이어티 한 출연진은 그렇게 만들어진 거였다. 

유준 위원장은 변변한 출연료도 없는데 해마다 기꺼이 무대에 서는 고마운 분들이라며 칭송해 마지않았다. 아티스트 입장에선 명백한 착취였다. 그렇지만 하는 쪽은 정말 미안하고 황송해하고 당하는 쪽은 오히려 기분 좋게 당해 주는 유쾌한 착취였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행사는 3일 동안 이어진다. 그런데 연달아 3일을 계속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1회, 금요일 이른 저녁에 딱 2시간 정도만 한다. 민원 때문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라 특히 공원주변 주민들에게는 3일 내내 공연하면 당연히 민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주1회, 연3주 방식이었다.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데, 민원은 걱정되는 양가적 상황을 절묘하게 버무린 것이다. 그래도 민원은 난다.

"단지 한 가운데라 소리가 빠져 나가지 못하니 특히 공원 주변에 사시는 주민 분들 중에는 구청에 민원을 넣거나 항의하는 분들이 물론 있죠. 그래도 그런 분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주민들은 이해하고 좋아해 주세요."

이 동네 김종술 동장의 말이다. 그에게 이 공연을 위해 관에서는 뭘 도와주느냐 물었다.

"우리야 여기 공원 사용이나 공연허가 내주고, 현수막 검정 해 드리고, 많은 분들 올 수 있게 홍보도 하고 직원들이 나와 돕기도 하고 그 정도죠 뭐."

관의 예산지원은 한 푼도 안 받는다는 자치위원들의 증언은 과연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모든 걸 그들 스스로 '자치적'으로 해 내고 있었다. 참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소소한 음악축제에는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다. 부대행사도 있다. 공연 전에 관내 소방서에서 나와 심폐소생술을 가르쳐 준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여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는 터라, 꼭 알고 있어야 할 매우 유익한 정보다.

무료 짜장면 시식회도 열린다. 과거 유명한 중국음식점을 하셨던 사장님께서 현장에서 직접 면을 삶고 짜장을 볶아 낸다. 그 맛이 또한 기막히다. 재료비는 관내 마을금고나 신협, 라이온스 클럽같이 재력 빵빵한 기관이나 단체가 후원해 준다. 하루 평균 700그릇이 나간단다. 이 또한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동네 주민들은 좋은 것 배워 머리 채우고, 맛난 짜장면으로 배 채우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마음을 채우는 셈이다. 참 복받은 분들이구나 싶었다.

자발성, 다양성, 평등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산곡2동 소소한 음악회
 
 산곡2동 소소한 음악축제의 관객들은 자유롭다. 객석 맨 뒤편엔 돗자리를 깔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간식도 먹고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보면서 이 음악회가 훗날 할리우드 보울 콘서트처럼 되기를 꿈꾼다면 그건 그저 망상에 불과할 뿐일까.
 산곡2동 소소한 음악축제의 관객들은 자유롭다. 객석 맨 뒤편엔 돗자리를 깔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간식도 먹고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보면서 이 음악회가 훗날 할리우드 보울 콘서트처럼 되기를 꿈꾼다면 그건 그저 망상에 불과할 뿐일까.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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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이후 전국에선 해마다 1천여 개 이상의 지역축제가 열린다. 개중에는 꽤 성공해 지명도를 얻는 축제도 있지만 많은 축제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시행정이나 낭비행정의 전형이라거나 정치인 홍보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은 고전이다. 혈세낭비, 환경파괴 따위로 무용론까지 제기되는가 하면 최근에는 생물을 테마로 한 축제들이 생명경시, 생태계 파괴 등을 조장한다는 비난마저 듣는 실정이다.

하지만 인천 부평구 산곡2동의 '소소한 음악축제'는 지역 축제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전형으로 삼아도 괜찮을 성 싶었다. 지역축제가 갖춰야 하는 자발성, 다양성, 평등성 등의 제 요소를 충분히 충족한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축제의 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추진 주체부터 돋보였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소소한 음악축제는 그 동네 주민자치위원회라는 주민자생 단체가 주관한다. 그들 표현대로 회원들이 북치고 장구까지 친다. 돈도 거두고, MC도 보고 청소까지 다 한다. 그들은 모두 그 마을에 산다. 누구보다 그 마을을 잘 알고 주민들을 잘 안다. 주민을 위한, 주민들의 축제는 그렇게 그 곳 주민들이기에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양성이다. 일단 축제의 주 테마인 음악부터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았다. 학예회 수준이라는 비판적인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공연은 전반적으로 다채로운 장르로 다양한 관객들을 만족시켜 주고 있다. 부대행사를 통해 유익한 정보와 즐길거리를 동시에 제공해 주었다. 아이들부터 공짜 노인들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했다.

특히 무료 짜장면 시식회는 평소 적적하게 지내시는 동네 어르신들과 한 동네 저소득 층 이웃들이 모두 함께 나누는 보람과 즐거움까지 선사했다. 그런 다양성을 통해 축제가 지향해야 하는 평등과 해방의 정신을 제대로 되살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독자 혹은 독립성이다. 주민자치위원회는 관변단체이긴 하지만 '소소한 음악축제'는 관에서 재정적 지원을 일절 받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회비와 주변의 후원으로 행사를 꾸려 간다. 그러니 어렵긴 하지만 관의 간섭에서 훨씬 자유롭다. 관이 주도하는 행사는 의전에 매몰되기 일쑤다. 선출직 정치인들의 공치사, 인사치레만 듣다 끝나는 수도 있다. 소소한 음악회는 그런 게 전혀 없다. 그러니 관객들은 속으로 욕할 일도 없다. 그냥 재미있게 즐기면 그뿐이다. 저절로 신이 나는 축제다.

행사는 올해로 6년째다. 지속가능성에서도 일단 합격점이다. 여러모로 칭찬받아 마땅한 행사다. 물론 아쉬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드는 생각은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공연이 프로그램에 끼어 있으면 참여도도 높이고 내용도 더 아기자기해지지 않겠나 싶다. 아파트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초대해 함께 즐기면  버라이어티를 넘어 글로벌한 이벤트로 발돋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욕심은 금물이다. 산곡2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 해 왔다.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행사를 여는 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가상한 노력과 공을 누군가 알아준다면 소소한 음악회가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는 그들의 바람이 꼭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러기를 기원한다. 아주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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