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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이더유니온 출범 선언문 중

 
그들은 경계인이다. 말 못하기보다는 투덜이가 되는 걸 택했다.

5월 1일 노동절 배달원 조합이 출범했다. '라이더유니온'이다. 조합원 70% 이상이 '플랫폼 노동자'다. 이들은 '근로자'가 아니다. 그럴듯한 말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한다. 말이 어렵다면, 그냥 '사장님'이라 봐도 좋다. 그런데 이상하다. 명색이 사장님인데, 일은 하청업체 직원처럼 한다.

구조를 뜯어보자. 소비자가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 업체를 통해 음식을 주문한다. 음식점은 대신 배달해줄 곳을 물색한다. '부릉' '생각대로' '바로고' 같은 배달 중개 업체다. 중개 업체는 다시 '배달원'에게 콜을 넣는다. 콜에 응한 배달원이 음식을 최종적으로 배달한다. 사중 구조다. 복잡다단하다.

배달업은 더 이상 전통적인 고용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 배달업이 가게와 배달원 간 갑을 관계였다면, 지금은 병정이 추가된 셈이다. 이때 배달원은 음식점을 넘어, 배달 대행업체에도 업무 지시를 받는다. 지침은 별거 없다. 그냥 빨리 좀 하라는 거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배달 대행업체는 배달원의 근무 시간에 대한 규율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괴이한 하청 구조
 
최근 한 순댓국집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배달원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최근 한 순댓국집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배달원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 인터넷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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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배달원은 근로자가 아니다. 사장님 신분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라이더유니온은 디지털 시대의 괴이한 하청 구조를 고발하려 탄생했다. 출범식에서 '배달 플랫폼 업체의 산재·고용보험 부담' '배달 수수료 4000원 보장' '오토바이 보험료 인하' '정부·기업·라이더유니온의 3자 교섭'을 요구했다.

요구사항은 모두 그들의 신분과 직결돼 있다. 근로자가 아니라서 4대 보험을 보장받지 못한다. 월급이 없다. 배달 수수료로 돈을 번다. 사고가 나면 온전히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없다.

이 모든 건 안전과 결부돼 있다. 목숨값보다 음식값이 귀하다. 꺼져가는 생명보다 식어가는 음식이 중한 세상이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 배달원들은 가장 먼저 음식의 안위를 확인한다.
 
빗길에 배달 중이던 오토바이가 미끄러진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빗길에 배달 중이던 오토바이가 미끄러진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 인터넷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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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발표한 2015~2017년 교통사고 현황 조사를 보면 최근 3년간 교통사고는 감소세다. 2015년 23만 2035건에서 내리막을 걷고 있다. 그러나 오토바이 사고는 같은 기간 1만 2654건에서 1만 4084건으로 오르막을 걷고 있다. 20% 증가했다. 희생은 때론 우리에게도 닥쳐온다. 오토바이 칼치기(차선 급변경)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을 친다. 그들의 안전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네이버 뉴스 캡쳐.
 네이버 뉴스 캡쳐.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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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사고가 날까?  2016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배달앱 아르바이트 고용구조와 노동실태>에 따르면 사고 원인 중 32.4%가 제한 시간 내에 배달하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재촉'이다. 속도는 희생을 낳는다.

2년 전 기억이 선명하다. 누군가 족발을 시켰다. 1시간 만에 온 족발은 지나치게 식은 상태였다. 그는 가게에 전화해 따졌다. 사장님은 사과했다. 곧이어 삼성전자를 정년퇴직한 후 배달원으로 일하는 50대 아저씨가 20대 청년에게 허리를 굽혔다. 손해에 대한 지불도 그분이 했다. 음식의 온도는 인간 생명을 담보로 한다. 더 정확히는 존엄성이다. 그 20대 청년은 라이더유니온 출범에 빚을 진 셈이다.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배달원이 '사장님'이다. 위험 수당 따윈 없다. 더군다나 예정 시간보다 배달이 20분 늦어 손님이 주문을 취소하면 음식값은 고스란히 그들이 감당해야 한다. 1초가 금이다. 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와중에도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않는 이유다.

배달 한 건당 수수료는 2500~3500원이다. 산술적으로 한 달 1000곳을 돌아야 300만 원을 번다. 하루 10~12시간 일해야 한다. 2017 한국노동연구원 <배달대행 배달원의 종사실태 및 산재보험 적용강화 방안 연구>에 의하면 배달원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0.6시간이다. 대략 평일엔 30건, 주말엔 60건 정도의 배달을 해내야 한다. 기름값, 수리비 등 오토바이 유지비는 덤이다. 속도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배달원 10명 중 3명이 교통사고 경험이 있다. 높은 확률로 사고가 나니 보험료도 무지막지하다. 적게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700만 원까지다. 일 년 단위다. 누구도 감당해주지 않는다. 비용과 수습은 온전히 배달원의 책임이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인다"
 
1일 오후 여의도에서 열린 '라이더유니온 출범 총회'에 참석한 배달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배달보험료 현실화' '산재 유급휴일 실업급여 보장' 등이 적힌 조끼를 입고 광화문네거리에서 고용노동청을 향해 오토바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배달노동자들 라이더유니온 출범 1일 오후 여의도에서 열린 "라이더유니온 출범 총회"에 참석한 배달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배달보험료 현실화" "산재 유급휴일 실업급여 보장" 등이 적힌 조끼를 입고 광화문네거리에서 고용노동청을 향해 오토바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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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플랫폼, 배달 중개업체가 배달원들을 통해 돈을 버는 만큼, 안전과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이윤을 얻는 자가 위험 또한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인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이제 플랫폼 노동은 더 이상 배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남의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한국고용정보원이 꼽은 2020년 미래 이슈 1위가 '플랫폼 노동 확산'이다. 대리운전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가 그 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기술은 언제 우리를 비슷한 처지로 만들지 모른다. 승진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모든 건 외주화되고 있다.

2016년,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15개국(프랑스, 미국, 독일, 스웨덴, 스페인 등) 전체 노동자의 30%가량이 플랫폼 영역에서 일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은 플랫폼 노동 규모에 대한 정확한 수치가 없다.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단편적인 정보만 있을 뿐이다. 이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논의가 미흡하단 걸 보여준다. 영국, 독일, 프랑스에선 이미 플랫폼 노동자를 법적 임금 노동자로 대우한다.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도 플랫폼 노동자를 제도권에 편입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내놓았다. 다만, 기약 없이 계류 중이다. 여야가 싸우느라 그렇다. 국회 전체 차원의 논의는 먼 듯하다. 라이더유니온 측은, 아직 정치권에서 접촉해오진 않았다고 전했다.

이 땅의 미덕은 '빨리빨리'다. 국회 차원의 조속한 논의가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자가 몇 명인지, 그중 배달원은 얼마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실태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알바생'인지 '사장님'인지 규정할 수 있다. 답이 미뤄지는 한 그들은 위험천만한 곡예를 계속할 것이다.

현재는 배달원들의 요구가 어디에 정착할지 알 수 없다. 보낸 사람은 있지만 받는 사람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로 도착할지 모른다. 주소지가 없다. 아직은 길 위에서 헤매고 있을 따름이다.

태그:#라이더유니온, #배달원, #배달, #플랫폼 노동,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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