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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대학로 거리에서 시작된 퀴어문화축제가 어느새 스무번째를 맞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주제로 세대 간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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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마주보고 선 김인선(오른쪽)씨와 김보라씨. 레즈비언임을 밝히고 살아가는 김보라씨가 성소수자로 살아가며 앞 선 길을 걷고 있는 김인선씨와 마주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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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이 든 레즈비언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그들은 어디에서 뭘 하는 걸까? 그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서울에 거주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는 스물아홉 김보라씨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 한 오픈리 레즈비언이다. 그는 자신보다 마흔 살 많은 레즈비언 김인선씨(69)의 삶이 궁금했다. 나이 든 레즈비언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한국에서 김인선씨의 존재는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김인선씨는 마침 6월 1일 열리는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석차 서울에 와 있는 상태였다. 오마이뉴스는 사는 곳도, 나이도 다른 두 레즈비언의 만남을 주선했다. '선배 레즈비언' 인선씨와 '후배 레즈비언' 보라씨의 대담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색한 첫 만남.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건 인선씨였다. 보라씨는 수줍어하면서도 놓지 않으려는 듯 '선배'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공책 가득 정리해온 질문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1972년 독일로 건너간 인선씨는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아시아 이주민의 임종을 돕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다. 7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남자와 이혼하고 지금의 파트너를 만났다. 그는 이날 만남에서도 여러 차례 파트너인 '수현'씨의 이름을 언급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건 내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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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세 레즈비언 김인선씨는 1972년 독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를 하며 남편과 7년간의 결혼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이 후 남편과 이혼을 선언하고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찾아가게 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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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안녕하세요. 저는 시를 쓰는 김보라라고 해요. 제 (레즈비언) 정체성을 안 건 중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아요."

김인선 "본인이 레즈비언이라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셨어요?"

김보라 "사실 저는 제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이상하게 여겨지는지 몰랐어요. 하루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물었는데, 여자친구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동성애자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동성애자? 그게 뭔데?'라고 답했어요.(웃음) 친구들의 반응에서 이상하게 여겨지는 거구나 알게 됐어요."

김인선 "나는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이야기가 많아요. 1972년 처음 독일에 갔을 때만 해도 내가 여자를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남자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34살에 결혼도 했으니까. 결혼하고 거의 7년을 같이 살았지, 남편이랑.

신학을 공부할 때였는데 다니던 교회에서 여신도들끼리 수련회를 갔어요. 수련회에서 처음 그 친구(수현)를 만났어요. 참 남자처럼 생겼더라고요. 그런데 며칠 있다가 어딜 가더니 꽃을 꺾어서 나한테 가져다 줬어요. '아니 왜 여자가 나한테 꽃을 꺾어다주지? 무슨 의미일까?' 싶어서 집에 와서 남편한테 이야기를 하니까 당장 만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꽃을 꺾어준 광경이 잊히질 않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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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선씨가 김보라씨의 두 손을 잡아 주었다. 촬영을 위해 처음 잡은 손은 이내 보라씨를 위로하는 진심이 담긴 마음의 손이 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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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아..." (미소)

김인선 "그러고 있다가 또 여신도들끼리 모일 기회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나하고 같은 방을 쓰게 된 거예요.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싶었는데 내게 오더니 키스를 했어요. 아 황홀하더라고요. 남편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들었어요. '아 나한테 무슨 변화가 있구나.' 내가 탈이 났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더 이상은 남편하고 못 살겠더라고요. 남편한테 이혼하자고 했더니 굉장히 황당해 했어요. 황당하지. 저도 혼란스러웠어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가 이혼의 이유를 알아야겠다면서 날 찾아왔어요. 밤새도록 남편하고 이야기를 하더니 짝짜꿍이 돼서 날 완전히 환자 취급하더라고요. 내 딸이 병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나한테 인연 끊자고 했어요. 교회에도 소문이 다 났어요. 신학을 하는 여자가 여자에게 바람이 났다고. (신학) 그만둬야 한다고."

김보라 "그래서 그만 두셨어요?"

김인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주위에서 말리니까 더 오기가 생기는 거. 너희가 말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건 내 인생이야, 내 몫이야. 당신들이 나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어. 하루는 정말 하나님이 나를 거부하는지 알고 싶어서 신학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신학 그만둬야겠다고 말했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범이 되고 하자가 없는 사람이 목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이 모범이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네가 네 자신을 못 받아들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냐'고 하셨어요. 교수님이 보시기에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대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것이 어떤 사랑이든 진실한 사랑이면 된다면서요. 덕분에 무사히 신학을 마치고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인연을 끊자던 엄마가 한 번은 설교 방송에 나갔던 내 모습을 보고 베를린으로 찾아오셨어요. 일주일을 같이 있었는데 내 친구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집으로 돌아가실 땐 '나도 20년만 젊으면 여자하고 한 번 살아보겠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김보라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좋았겠어요. 저희 부모님이 제 정체성을 못 받아들이시는 것도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한국의 기독교는 퀴어 사회를 반기독교 집단으로 보고 있어요. 퀴어 집단 내에서도 기독교인 퀴어라고 하면 싫어해요. 퀴어들이 갈 수 있는 교회를 찾는 것도 어렵고요."

김인선 "독일은 그간 동성 연인을 파트너로서만 인정하다가 2017년부터는 법적으로 결혼도 할 수 있게 했어요. 남녀가 사는 것과 같은 권리가 주어졌어요. 여자 목사 둘이서 교회 안에서 결혼식을 할 때도 있어요. 교회가 사람을 정죄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옳고 그른 걸 판단하시는 거지, 우리가 하나님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안 돼요."

김보라 "제가 (기독교) 모태신앙인데 종교를 유지하면서도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살려고 해요. 그런데 힘들더라고요. 교회를 떠나야 할까? 내 정체성이 죄일까? 그런 생각 때문에 교회를 1~2년 정도 나가지 못했어요. 괴로워하다가 하나님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핵심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정리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께도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실 거니까 이렇게 살 거라고 말씀드렸고요."

김인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에요. 내가 파괴돼버리면 아무 것도 없어요. 일단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비난하는 사람들을 피하고 하나님과 우리끼리 예배를 드리면 돼요. 사실 첫 교회는 십자가 앞에 놓고 촛불 켜고 예배드리는 것이었잖아요?"

"독일로 돌아가면 결혼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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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이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핑크색 정장을 입은 김인선씨는 사진을 찍는 동안 즐거운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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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한국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을 잘 하는 법이나 아우팅에 대처하는 법에 대해서 말해주실 수 있으세요?"

김인선 "어려운 질문인데요. 전혀 받아들일 자세가 안 돼 있는 사람에게 내 정체성을 이야기하면 그 사람도 쇼크 받지 않을까요? 친절하고 평범한 이웃으로 지내다가 상대방 쪽에서 호기심이 나도록 유도하는 거예요. (웃음) '성소수자인데 사람은 괜찮구먼'이라고 생각하도록요. 맞부딪히기 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해요. 아니면 완전히 운동가가 돼 배짱 좋게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방법도 있고요."

김보라 "저는 후자를 택한 것 같아요. (웃음) 대학생 때 제 인생의 커리어와 꿈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아우팅을 당한 후에 차라리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김인선 "그런 거 있지 않나요? 저는 워낙 투쟁적인 기질이 있어서 나한테 누가 덤비면 오히려 더 들이받아요. 한 번 해보자고! 학교 다닐 때 그렇게 꼴통이었어요. 막내 이모 옷을 훔쳐서 입고 학생 관람불가인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어요. <춘희> 였나? 열심히 보고 있는데 뒤에서 '재밌냐?'해서 보니 훈육주임이더라고요. 딱 그랬어요. '선생님, 벌은 내일 받을 테니까 영화는 끝까지 봅시다'라고요. 그 다음날에 벌을 섰는데 선생님들이 '인선이 또 영화봤구나' 그러더라고요."

김보라 "(웃음) 그런 낙천성이 어디서부터 유래됐는지 궁금해요."

김인선 "우리 아버지한테 받은 것도 같고요. (웃음) 우리 아버지는 그 시대에 밴드마스터셨어요. 색소폰을 불던 희대의 바람둥이였거든요. 어머니는 내가 느글거리는 것까지 우리 아버지 닮았다고 그래요."

김보라 "파트너 분이랑은 어떻게 생활하고 계세요? 어떤 게 서로 잘 맞고 재미있던가요."

김인선 "처음 만났을 때 남자같이 생겼다고 그랬잖아요? 사실 굉장히 소심한 친구예요. 우리 외할머니가 저를 키워줬거든요. 외할머니가 없었으면 불행한 존재가 됐을 텐데 수현이가 꼭 내 외할머니 같아요. 내가 신학 공부하느라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밥을 해다 줘요. 예전에 외할머니가 내 연필을 밤새도록 깎아줬거든요. 당신이 주무시면 내가 졸려서 공부 못한다면서요. 외할머니가 다시 온 것 같아요. 나한테는 진짜 보물 같은 사람이에요. 나는 결혼을 한 번 해봤잖아요. 근데 수현이는 결혼을 안 해봐서 해보고 싶대요. 그래서 독일에 돌아가면 결혼하려고요."

김보라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한 사람만 사랑하면서 사시는지 궁금해요."

김인선 "나도 다른 레즈비언들을 만났는데 '저 여자랑 한 번 연애해보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진 못했어요. 유일하게 수현이만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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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포옹했다. 이내 김보라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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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성소수자가 나와 줬으면"

김보라 "한국의 퀴어 사회를 보니 어떠세요? 저는 10대랑 20대 때 주변에 있는 퀴어 친구들이 자살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또래들 중에서도 장례식장에 많이 가는 편이었고요. 10년 동안 그래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1년 전에 대전에서 여고생 한 명이 동성애자라는 게 알려져 자살을 했더라고요."

김인선 "청소년이면 그게 아니더라도 힘든 나이일 텐데... 한국에 연세가 있는 성소수자 분들도 있을 거 아닌가? 그 분들이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 나와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김보라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잘 나이들 수 있을까요?"

김인선 "나이 드는 해법 같은 건 사람들마다 다 다른 거니까요. 성인이 되는 것도 커밍아웃하는 것도 다 달라요. '이렇게 하면 잘 하는 거다'란 이야기는 못할 것 같아요. 다만 내 경험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요.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는 죽겠지? 하나님이 오라고 부르면 너무 매달리지 말고 살아남으려 하지도 말고 '내가 갈 때가 됐구나' 하면서 쌈박하게 갔으면 좋겠어요. 우리 인생 오늘 끝날 수 있잖아요. 다 내려놓고 미련 없이 가면 좋겠어요.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 오늘을 최선으로 살면 돼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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