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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암이었다. 열한 살에 남편은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해야만 했다. 남편이 중학생 때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다.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빛고을 기독학생 연합'이라는 모임에서였다. 미션스쿨에 다닌 터라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남편은 그 어디엔가 있었다. 그 많은 친구들과 섞여 있는 듯 없는 듯 찬양 축제를 하고 성경공부를 했다.

남편은 원하던 대학 대신 2년제 전문대학교에 보내졌다. 용돈을 쪼개고 쪼갰다. 어디든 걸어서 가고 맨밥에 단무지로 끼니를 때웠다. 주유소에서 세차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있었다. 손은 항상 까칠하게 부르터 있었고 허리는 28인치로 줄었다. 그래도 이따금씩 성경공부 모임에서 만난 그는 언제나 미소가 밝은 청년이었다.

남편은 군대 제대 후 4년제 대학으로 편입을 하고 공대 건물에서 살았다. 집에서 얻어준 고시원은 학교 근처에서 가장 싼 곳, 싼 곳에서도 가장 작은 방이었다. 거기서는 겨우 발 뻗고 눈만 붙였다.

대학교 3학년 겨울, 남편은 빙판에 미끄러지는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나는 가정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 부모님이 의사라서 병원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남편의 퇴원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던 우리는 그의 졸업식에서 처음 뵙는 부모님과 식사까지 했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벌써 14년 전 일이다.

구구절절 결혼 전 남편 이야기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남자가 어떻게 성장했는가는, 내가 이제부터 쓰려는 글 '한 남자를 이해하기 위한 글쓰기'에 꼭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격비교의 달인, 남편

신혼 초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남편이 내가 고른 우유를 다시 제자리에 넣으면서 말한다.

"이거로 바꾸자. 100ml 당 가격 비교해 봐. 이게 더 싸."
"언제 그걸 계산해? 얼마나 차이 난다고."


남편이 알려준 곳엔 100ml 단위로 환산한 금액이 깨알 같이 적혀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가격표 아래 작고 연한 글씨를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그 얼마 안 되는 가격을 비교하다니.

그동안 나는 김연아가 매일 마시는 우유와 컬투의 맛있는 우유만 번갈아 구입해 왔는데. 범접할 수 없는 알뜰함에 놀라,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그날 이후로 가정의 경제권을 이 남자에게 맡겨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작별할 시간. 그동안 고마웠어.
 이제는 작별할 시간. 그동안 고마웠어.
ⓒ 박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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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우내 검정 양말을 신는 동안은 몰랐다. 매쉬 소재의 검정 운동화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 부분이 1센티미터 가량 찢어져 있다는 것을. 회색 양말을 신으니 운동화 바깥으로 회색이 드러났다.

'신발을 하나 사야겠다. 운동화가 하나 더 있었지만 뒤꿈치가 망가져 최근에 버렸다'고 하자 신랑이 말했다. 자기 신발은 더 오래 되었다고. 그러다 막상 구멍으로 삐져 나온 내 양말색을 보더니 하나 사긴 해야겠다고 말한다. 

지난 어린이날을 앞둔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에 나온 2만8000원 짜리 키높이 단화에서 멈췄다. '슬립온'이라 한단다. 사진을 찍어 신랑에게 보내며 지금 방송하고 있는데 괜찮지 않냐고 물었다.

'이거 하나 사주라고?
컬러 사이즈'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홈쇼핑에 채널은 고정하고 카톡만 기다렸다. 이십여 분 후 남편이 11번가 화면을 캡쳐해 보내온다. 남편이 인터넷을 뒤져 최저가를 찾아낸 것이다. 내가 직접 구입하지 않은 이유다.

'이거 맞죠?
그럼 11번가에서 주문해요.
24,950원에 주문했어요.'


카톡에서 가끔 '-요'를 붙이는 신랑은 기가 막히는 타이밍에 빼먹지 않고 '-요'를 붙였다. 황송할 지경이지만 나는 꿋꿋하게 내색하지 않고 단답으로 보냈다. '네.' 

운동화를 새로 구입할 즈음 모임에 구두를 신고 간다는 것이 습관적으로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스타일 좋다는 얘기에 이건 십년도 더 된 원피스고, 신발은 구멍까지 났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친절한 언니가 밤에 잠깐 접선하자고 했다.

나를 가까운 벤치로 끌고 간 언니는 본인이 신지 않는 세 켤레의 신발을 차례대로 신어 보라 했다. 모두 내 발에 꼭 맞았다. 언니는 '신발에 담긴 의미들은 마음으로만 간직하겠다'며 신발을 모두 주고 갔다. 온 우주의 도움으로 갑자기 신발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신발을 주문해준 남편은 연휴가 야속하기만 하다. 배송이 늦어져서다. 그동안 전주도 다녀오고, 광주도 다녀오면서 오지 않은 신발이 얼마나 신경 쓰였을까? 남편이 배송조회를 하고 상황을 알려온다.

'자기 신발은 낼 도착할 듯
조금만 참아요...'

 
각종신발이 입주한 신발장의 모습. 입양 온 신발들도 환영하고 새 신발도 격하게 환영. '꽃길만은 아닐텐데, 앞으로 잘 부탁해'
 각종신발이 입주한 신발장의 모습. 입양 온 신발들도 환영하고 새 신발도 격하게 환영. "꽃길만은 아닐텐데, 앞으로 잘 부탁해"
ⓒ 박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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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발수명, ##자족하는삶, ##권태기청산인가, ##어쩌다환경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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