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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라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에 들어섰다. 기차역의 팻말이 라틴 문자에서 키릴 문자로 바뀌었다. 라틴 문자판을 들고 가던 사람이 넘어져서 뒤집힌 모양의 키릴 문자가 되었다는 농담이 떠올랐다. 찾아보니 키릴 문자는 라틴이 아닌 그리스 문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러시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 전망대에도,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도 문자와 정교회 전파자인 키릴 형제의 동상이 서 있는 걸 보면 동유럽 지역에서는 한국의 세종대왕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인가 보다. 문자표를 찾아 더듬더듬 키릴 문자를 발음해 보았다.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 시절, 유고슬라비아 영화감독 에밀 쿠스투리차의 <집시의 시간>을 보고 그곳에 가고 싶었다. 마치 코카콜라나 스타벅스처럼 익숙한 파리와 런던, 베니스와는 전혀 다른 유럽이 거기에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와서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은 1992년에 해체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뚜렷한 경계는 없지만 흔히 이 지역을 '발칸반도'라고 부른다. 발칸은 터키어로 산맥을 뜻한다. 기원전 4세기,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페르시아를 정복한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의 고향이 이곳이다. 오랜 시간 로마, 비잔티움, 오스만 투르크, 오스트리아 등 주변 제국들의 지배를 받으며 동방 정교와 서방 가톨릭교, 이슬람교가 충돌하고 뒤섞이는 지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 주도로 불가리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졌다. 다민족국가 유고연방은 이후 분리, 독립, 전쟁 과정을 거쳐 현재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 코소보가 되었다. 나는 발칸과 터키를 거쳐 동아프리카로 건너갈 계획이어서, 세르비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그리스로 방향을 정했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중앙역.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중앙역.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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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평가하지 마세요 Don't judge!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주류였던 세르비아에서는 '새로운 정원'이라는 뜻의 노비사드와 '하얀 도시' 베오그라드를 여행했다. 폭격을 받은 다리와 관공서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탱크와 전투기들이 전시되어 있어, 오랜 전쟁의 상처를 짐작하게 했다.

1998년, 알바니아계 주민이 많은 코소보 자치주의 독립 요구를 세르비아군이 폭력 진압한 코소보 사태가 일어났다. 서구 중심의 국제사회는 이를 '인종청소작전'이라 부르며 세르비아를 비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했고, 2004년부터 유엔 임시행정부의 통치 기간을 거친 후 2008년 국제사회로부터 독립을 인정 받았다. 세르비아는 여전히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아, 코소보로 국경을 넘을 때 세르비아 출국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코소보를 통한 세르비아 입국도 불가능하다.

미국, 유럽연합과 관계가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세르비아 역시 이웃 나라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터키와 함께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하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자국 화폐 디나르를 쓰지만 도심 골목마다 사설 환전소가 있고 수수료 없이 거의 기본 환율로 유로를 환전할 수 있었다.

"세계 여행을 하면 돈이 얼마나 들어?"

노비사드 중앙 광장에서 만난 고등학생 렌카 마리나 씨, 엘레나 아노비치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0개월 동안 여행 중인데 가끔 장거리 이동하는 비행기값을 빼면 한 달에 400유로 정도를 쓴 것 같아."
"400유로?! 엄청 많이 든다. 내 엄마 한 달 월급이 190유로 정도야."
"이곳 노비사드에서 제일 저렴한 숙소가 하루 8유로야. 한 달이면 숙박비만 200유로 정도 들어. 레스토랑에 잘 안 가고 매일 밥을 해먹도 400유로는 들더라. 세르비아랑 서유럽이랑 임금 차이가 많이 나는 거지?"
"독일 월급은 엄마 월급의 열 배 쯤 되겠지. 세르비아는 경제가 너무 안 좋아."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에 전쟁을 오래 겪었다고 들었어. 세르비아 사람들은 내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Don't judge! 누구도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 안된다고 배웠어. 민족이나 종교가 다른,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존중이 필요하고 생각해."


학교에서 자주 이야기 나누는 주제인지, 신기하게도 두 사람이 똑같은 말을 했다.
 
노비사드에서 만난 렌카 세키치 씨와 엘레나 아노비치 씨(중앙 왼쪽부터)
 노비사드에서 만난 렌카 세키치 씨와 엘레나 아노비치 씨(중앙 왼쪽부터)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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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냉전

민족, 종교, 이념을 이유로 오랜 갈등을 겪고 현재에 이른 발칸 반도. 코소보 북부에는 알바니아인보다 세르비아인들이 많이 사는지, 집집마다 가게마다 세르비아 국기를 게양해 놓았다. 정작 세르비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세르비아의 애국심, 민족주의의 모습이 펼쳐졌다.

미국과 유엔에 의해 국경이 그어졌지만 이곳은 실질적으로 세르비아인들의 영토임을 강조하는 저항처럼 느껴졌다. 미국에 대한 반발인지 소비에트 시절에 대한 향수인지, 러시아 대통령 블라미디르 푸틴의 포스터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코소보 남쪽으로 갈수록 세르비아 국기는 줄어들었고 대신 모스크와 미국 국기가 많아졌다. 수도 프리슈티나에는 유난히 '아메리칸 스쿨'이 많았고 도심에는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동상과 아파트, 그리고 '힐러리' 옷가게가 있었다. 상점들은 'From USA to you 미국에서 당신에게' 같은 문장으로 광고를 하고 있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 사람들에게 미국은 고마운 해방군이자 우방인 것 같았다.
 
코소보의 클린턴 동상과 그 옆의 힐러리 옷가게.
 코소보의 클린턴 동상과 그 옆의 힐러리 옷가게.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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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동유럽에 세워진 친미 이슬람 국가 코소보. 그리고 그 속에서도 계속되는 차이와 분단. 소련과 미국의 권력에 의해 갈라진 한반도와 한국전쟁,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 냉전의 역사가 겹쳐졌다.

코소보에서도 한반도에서도, 냉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호스텔 공용 탁자에 앉아 종일 일하던 체코 여행자 블라디미르 발코브스키 씨에게도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와 변화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알루미늄 회사의 재정 관리자로 일하고 있어.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어디서나 일할 수 있지. 리비아에서도 몇 년을 일했고 중동 상황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야. 중동 국가들은 수십 년 동안 계속 전쟁을 겪고 있어. 대부분의 미디어는 이슬람교와 테러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에 핵심은 페트롤, 오일이야. 미국이 중동에서 더이상 이윤을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은 언제든 또 전쟁을 벌일 거야. 나는 그게 두려워."

어떤 나라에게는 우방이지만 또 다른 나라에게는 두려운 강대국인 미국. 너무나 복잡한 국제관계를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일이 주는 이윤이 그 관계 속에서 얼마나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위험한 국경을 넘어야 하는 수백만 중동 난민들의 고통과 슬픔도 이 이윤, 결국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 걸까.

렌카와 엘레나 씨의 말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의 이런 바람과는 반대로, 국제관계는 평화와 공존 보다는 권력과 이윤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것 같다.

사람의 역사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차별과 불평등, 다툼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나도 나의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평화를 만들고 싶다.

북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사람 중 알렉산더만큼 알려진, 하지만 칼을 든 정복이 아니라 사랑을 했던 사람이 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다. 거대한 알렉산더 동상 바로 옆 테레사 수녀의 생가터에는 작은 팻말이 있었다.
 
"If you judge people you have no time to love them. 당신이 사람들을 평가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사랑할 시간이 없습니다."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의 테레사 수녀 생가 터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의 테레사 수녀 생가 터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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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들의 집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까지는 버스로 세 시간 반이 걸렸다. 스코페 중심에는 말을 타고 동쪽을 바라보는 알렉산더 동상이 있었다. 지중해와 아라비아, 아프리카가 가까워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코페 최저가 숙소는 하루에 5유로였다. 방 세 개에 이층침대 아홉 개. 니콜레타와 발렌틴 씨 부부가 운영하는 호스텔 벽에는 여행자들이 남긴 쪽지와 그림들이 가득했다. 한글 쪽지 중에 '호스텔 자원활동 추천드려요'라는 글이 눈에 띄였다.

'안 되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발렌틴에게 물었더니니 무척 반가워했다. 그날부터 2주 동안 호스텔 스태프로 일했다. 나 말고도 두 명의 자원활동가들, 멕시코 여행자 리자 씨와 터키 여행자 할릿 씨가 있어서 오전이나 오후를 택해 자유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매번 화장실을 더럽게 쓰는 사람이 머물 때나 침대 벌레가 나왔을 때는 조금 힘들었지만, 들고 나는 여행자들의 숙박비와 침대 관리, 청소, 빨래 등 일의 양은 많지 않았다. 리자의 멕시코 타코 파티와 할릿의 터키식 맥주 칵테일을 잊을 수 없다. 불과 2주의 시간, 급여를 받은 건 아니지만 코스타리카 해변 농장 이후 오랜만에 외국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뿌듯했다.
 
지구별 여행자들의 집, 스코페 발렌틴 호스텔
 지구별 여행자들의 집, 스코페 발렌틴 호스텔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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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레타는 커피 만들어주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여행자들을 진심으로 좋아해요.'

쪽지에 적힌 숙소 주인 니콜레타의 마음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차나 집은 중요한 게 아니야. 세계를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게 얼마나 좋으니. 돈이 있으면 버스로 여행하고, 돈이 모자라면 히치하이킹을 하면 돼."

칠레 여행자 와따도, 나의 동료 터키 여행자 할릿도 히치하이킹을 자주 하는 여행자였다. 나도 북마케도니아 국경에서 그리스까지는 히치하이킹을 해보리라 마음먹고, 이른 아침 국경 마을 게브겔리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태그:#모이, #발칸반도, #코소보전쟁,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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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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