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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북리경로당
  관북리경로당
ⓒ 김다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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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한적한 오후, 관북리 경로당을 찾았다. 경로당을 들어서자 시끌벅적한 TV소리와 어르신들의 수다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관북리는 백제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부소산 아랫동네다. 지금은 건물들이 들어서며 상가도 생기고 원룸촌으로 바뀌었지만, 본래는 장터와 유흥가로 유명했던 곳이다. 더불어 바로 앞 유적지 덕분에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거리던 동네가 바로 관북리다.

경로당에서 만난 4분의 할머니로부터 옛 관북리의 모습과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들은 모두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이었다. 이 동네는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부터 장터가 들어서 있던 곳으로, 장날이 되면 부여 인근 각지에서 모인 장꾼들과 손님들로 북적였다.

 
   김정수 할머니
  김정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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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한 40전까지 장터였지, 아마도 부여에선 제일 컷을겨. 여기 경로당 바로 앞에는 생선전이 있었고, 저쪽 길 건너편은 시전이었고 그 위쪽으로는 아이스께끼 파는 양반이 맨날 있었지." – 김정수 할머니

이곳에서 만난 김정수 할머니는 옛날 장터에 대해 짤막한 소개를 해 주신 후 오래 된 보물이 있다며 흑백으로 된 신문을 보여줬다. 올해 꼬박 20년이 된 제1호 '관북리 소식지'다.

 
  관북리소식지
  관북리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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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엔 관북리 마을 유래에 대해 짧은 이야기가 나오고 하단 부분에 그보다 더 오래돼 보이는 흑백사진이 실려있다. 사진 속 사람들이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아마 일제강점기 시대의 관북리 시장의 한 장면인 듯하다.

소식지 설명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시절, 부여엔 크게 저석리에 위치한 왕진시장과 관북리 시장이 있었고, 왕진시장은 1916년도에 폐쇄됐다. 관북리 시장은 생긴 지 100년 만인 1969년 구아리로 옮겨져 구시장으로 변하게 됐다. 이후 좌판이 가득했던 현 석탑로 일대는 도로가 재정비 되고 구아리시장은 점차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됐다.

"우리 가게가 텔레비전도 나오고 전국요리 잡지에도 나오고 유명혔어. 내가 손맛이 좀 좋았어. 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디…몸이 영 말을 안 듣네 "

김정수 할머니는 올해 87세로, 부여 읍내에서 '복집'운영만 40년을 했다. 할머니의 복집은 현재의 석탑로 인근에 위치했다. 낮이고 밤이고 문전성시를 이뤘던 유명한 곳이었다. 80년대 인기리에 방영됐던 TV 요리 프로그램인 '맛 자랑 멋 자랑'에도 출연했을 정도로 부여의 맛집으로 꼽혔던 곳이다.

아침엔 전날 음주로 인해 숙취를 해소하러 오는 손님들로 가득했고, 밤엔 쫄깃한 복찜에 술 한 잔 기울이러 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무농사의 규모가 컸던 부여산 무로 만든 생채는 복탕과 맛의 궁합이 일품이라 밑반찬 인기도 높았다. 그렇게 운영한 식당으로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러던 중 건강이 나빠져 큰 수술을 하면서 장사를 접은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김정수 할머니의 흑백사진
  김정수 할머니의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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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할머니는 아직도 10대 소녀시절을 떠올린다. 관북리에 장이 열리면 댕기머리를 따고 친구들과 옥고시를 사먹으러 다녔던 시절. 그 기억이 결혼을 하고 장사를 하며 가정을 일구면서 관북리를 떠나지 않고 지금도 경로당에서 여가를 보내는 이유다.

 
   임정순 할머니
  임정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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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場)판에서 장판(壯版)을 팔았지, 장판의 '장'자도 모르다가 장판장이 사내를 만나서 같이 장판을 팔았고 그걸로 먹고 살았지 뭐."

임정순 할머니는 올해 80세 경로당 고정멤버 중 막내다. 할머니의 본가는 규암면 금암리지만 읍내로 시집을 오며 쭉 이곳에 살았다.

처녀시절 장이 서면 달구지를 타고 읍내로 나와 생선을 팔던 친척의 일손을 거들었다. 당시에는 일을 하면 돈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물건으로 받았다. 할머니도 일을 해주고 생선 몇 마리를 받거나, 집에 필요한 식료품을 받았다.

그러다 규암과 읍내를 오가며 장판을 팔던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백년해로를 약속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10살의 연상으로, 무거운 장판을 지고 좌대를 깔아 팔았다. 훗날 돈을 모아 번듯한 가게를 냈지만 할머니가 갓 시집 올 당시에는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인지라 함께 좌판을 벌였다.

할머니는 옛날장판은 더 무겁고 냄새도 심해서 지금보다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래도 남편과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고 성실히 일한 보답으로 도배기술을 배워 팔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공까지 하는 업자가 됐다. 그 기술을 가르쳐 현재 자식에게 가업을 맡겼다.

가게를 물려준 뒤 할머니는 경로당의 식사준비를 책임지고 있다. 막내답게 거동이 불편한 형님들을 위해 밥을 먹을 때마다 갖가지 양념을 옆에 준비해두고 챙긴다.
 
  서열희 할머니
  서열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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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아저씨가 화가여. 페인트 가게를 했는디, 나는 애들 노는 것 마냥 그리는 줄 알았지. 알고 보니 나중에는 귀한 그림도 그리고 하더라고. 지금도 그 양반 그림이 삼충사랑 군청에 걸려있을겨."

서열희 할머니는 올해 86세로 경로당 고정멤버 서열 2위다. 관북리에서는 '미성사'라는 가게를 운영하며 자식을 키웠다. 원래는 페인트를 팔던 가게였지만 나중에는 화구도 함께 팔았다. 할머니가 화구를 팔게 된 이유에는 남편의 영향이 컸다.

할머니의 '우리집 아저씨'는 부소산 삼충사의 걸려있는 삼충신 영정을 그린 김종팔 화백이다. 그가 그린 영정은 76년도 백제문화제 때 처음 봉안됐다. 부여에서 꽤나 이름을 알린 화백을 남편으로 둔 할머니는 남편 자랑에 여념이 없다.

할머니는 경로당의 패셔니스타다. 옷을 입을 때 색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빨간바지를 입을 땐 줄무늬 셔츠를 입고, 노란바지를 입을 땐 자녀분이 선물한 소라색 가디건을 걸친다. 할머니는 얼굴에 분칠은 안해도 옷 색깔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중히 고르고 외출을 한다. 전부 할아버지의 영향이다.

불평을 하면서도 멋진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남편을 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할머니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정옥순 할머니의 흑백사진
  정옥순 할머니의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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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바로 위에서 쌀 팔며 살았지. 쌀을 팔아서 그런 건지 뭔지, 80살 평생 자식걱정이랑 늘어나는 뱃살 걱정만 하고 살어."

나이는 묻지 말라는 정옥순 할머니는 82세다. 관북리 경로당 바로 옆 '태양 세탁소' 위층에서 쌀장사를 했다. 쌀장사를 하는 덕에 굶는 걱정은 없어 걱정 하나를 덜고 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먹성이 좋았던 할머니는 늘어나는 살들이 여간 걱정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도 배를 든든히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턱에 요즘은 양을 반으로 줄여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할머니는 어버이날을 맞아 미리 고향을 방문한 아들내외가 맛있는 등심을 대접해줘서 배가 도로 나왔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할머니의 핸드폰 사진첩에는 자식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는 어디고, 뭐가 맛있었고, 뭐가 재밌더라 하는 설명을 신나게 덧붙이며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정옥순 할머니의 부모님 흑백사진
  정옥순 할머니의 부모님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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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흑백의 부모님 사진을 보던 정옥순 할머니는 옛 관북리에 함께 모시고 살던 때를 회상한다. 할머니에게 경로당은 특별하다. 경로당 동서남북 방향에 장사를 하던 가게와 신혼방, 부모님을 모시고 지은 집이 자리 했었기 때문이다.

가끔 경로당 앞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할머니의 부모, 시부모, 커가던 자식들이 눈앞에 생생하기만 하다. 힘들고 즐거웠던 인생이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게 이런 것이겠구나 싶은 마음이다.
 
  맨 왼쪽의 정옥순 할머니
  맨 왼쪽의 정옥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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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관북리 장터가 1969년 구아리로 옮겨져 구 장터가 될 때도 상가에 남아 장사를 계속 해왔지만, 90년도 초반 즈음 각각의 이유로 모두 그만뒀다. 함께 모여 밥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고스톱을 치는 일상을 누리는 할머니들은 가끔씩 각자가 기억하는 그 시절을 꺼내 추억한다.

지금은 조용하기만 한 관북리지만 생선냄새를 풍기고 뻥뻥 뻥튀기를 튀기던 소리가 울리던 할머니들의 장터는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사이트 부여'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태그:#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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