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8년 12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었다. 이어 올해 4월 22일 하위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입법예고 되었다. 매년 1,000명이상의 노동자가 산재사망사고로 죽고, 그 절반 이상이 조선소와 건설업 하청노동자에게 발생하고 있는 엄혹한 노동 현실에서, 입법 예고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의 한계와 조선소를 비롯 하청 노동자가 처해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어떻게 개정되어야 하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5월 1일에 금속노조 경남지부 이김춘택 조선하청 조직사업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이김춘택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
 금속노조 경남지부 이김춘택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련사진보기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 원청에 어떤 책임을 부과했는가?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이후 노동부가 실시한 특별근로감독 결과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866건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개조한 크레인 4대는 안전인증 없이 운행되었으며, 비상정지 장치가 고장 난 채 운영한 크레인도 확인되었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의 간이 휴게소는 크레인 주행 반경에 있었으며, 당시 3만 명이 넘는 현장의 원청 안전관리자는 안전관리 전담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검찰에서 25명을 기소하려고 했는데 8명에게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구속영장마저도 기각되어 신호수 1명만 구속되었다가 2017년 12월 8일 보석으로 나왔다. 그리고 삼성중공업 박대영 사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전 조선소장(상무)이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 기소되어서 검찰에서 징역 2년에 벌금 500만원을 구형받았다. 결과적으로 경영진은 조선소장 한명인데 이 사람조차 구속되지는 않았고, 삼성중공업 법인에게는 벌금 3000만원만 구형되었다. 노동자 6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에서 원청인 삼성중공업이 책임이라고 진 것은 벌금 3000만원이 전부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최근 5월 7일 창원지방법원은 원청인 삼성중공업 관리자들과 하청기업 대표이사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크레인 조작에 관련된 현장 노동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당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전면 면제해 준 것이다.

삼성 크레인 사고로 인하여 제기된 요구들

하지만 삼성 크레인 사고는 중대재해 사망재해 발생 시 원청과 노동부가 책임져야할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작업중지 기간에 하청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하는 휴업수당을 원청이 책임지게 하는 법제화 요구와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관리 및 치료를 2년이 경과한 지금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했던 현장은 1,600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부의 뒤늦은 조사로 1,600명 중 900명을 대상으로만 조사를 했고 확인된 목격자만 450명이 넘는다고 한다. 조사과정에서 빠진 노동자에 대한 추가 조사와 함께 사고를 겪은 노동자의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와 함께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전에는 작업중지권을 시행할 경우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노동조합과 그 당시 구성된 거제시민대책위의 지속적인 요구로 삼성중공업에서 하청업체에게 65억 2000만원이라는 손실보상금을 지급하였다. 물론 원청의 일방적인 계산으로 지급된 휴업수당이기에 노동조합 추산 150억에는 훨씬 못 미치는 돈이라 미지급한 휴업수당도 함께 요구중이다."

'백약이 무효'인 다단계 하도급 금지를 위해선 '도급승인' 작업에 포함되어야

"조선소에서 위험사고를 당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다단계 하도급이다. 실제로 조선업 중대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에서도 다단계 하청을 중대재해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있고, 원칙적으로 금지해야한다고 제언하였다. 하지만 개정 산안법에서도 조선업은 도급금지조항에 적용받지 못하였고, 현재 입법예고된 하위법령에서 조차도 도급승인을 적용하는 작업에서도 배제되었다."

300인 이상의 건설업과 조선업에서 발생한 중대사망사고의 90%가 하청노동자에게 발생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이러한 사업장에 대한 도급금지가 가장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정된 산안법은 유해·위험물질 12개 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에 한해서만 도급 금지를 하였다. 그러면서 도급금지 조항에 적용받지 못하는 유해.위험작업에 대하여 '도급승인' 조항을 통해서 노동부장관의 안전보건평가와 함께 도급승인 작업에 대해선 재하도급을 못하게 하는 법조항을 만들었으나, 이번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에 중량비율 1%이상의 황산, 불산, 질산, 염산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 분해, 해체, 철거하는 작업에만 도급승인을 적용하도록 하였고, 조선업은 적용되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 입법예고된 하위법령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아래와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을 것이다.

"원청이 돈을 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보건비용으로 꽤 큰 규모의 돈을 들이고 나름대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아무리 시스템을 갖추어도 다단계 하청구조에서는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어떤 제도를 만들면 그 제도가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쳐야하는데 현재와같이 조선소의 겹겹이 되어있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1차 하청 정도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인다고 해도 다단계 하도급이 존재하는 한 효과가 없다."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확대를 통하여 원청 책임성 강화가 되어야 한다

현행 산안법에서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책임은 도급 및 수급노동자가 동일한 작업장소에서 작업을 해야하고, 동일한 작업장소 또한 대통령령으로 정한 22개 작업장소로 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5월 7일 창원지방법원은 수많은 산안법 위반에도 불구하고 원청인 삼성중공업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

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산안법은 그동안 노동계가 요구했던 '안전과 위험의 외주화'를 전면 금지하지 못하는 대신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를 확대하여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확대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시행령으로 입법예고된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장소는 도급금지 장소로 규정한 곳을 제외하고는 현행법의 적용장소와 동일하다. 하청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장소 확대가 필요하고, 특히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장소는 꼭 포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내용과 관련하여 몇 가지 한계점과 문제를 제기하였다.

"지금 조선소 생산현장의 80%이상을 하청노동자가 담당한다. 그렇기에 현장의 위험요소를 제대로 아는 주체는 하청노동자이지만 그러한 위험요인을 개선하는 권한과 힘은 원청에게 있다. 이번 개정안에서 원하청 협의체 구성 및 현장순회점검 등 안전보건조치를 하게끔 되었으나 협의체 구성과정에서 원청 노동조합의 참여나 수급인 노동자 대표의 참여는 배제하고 있다. 갑을관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원청과 하청 대표자만으로 구성된 협의체는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

개정된 산안법에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안전보건조치도 명시되고 있으나 오히려 하청노동자한테는 통제와 규율로 다가올 수 있음도 우려하였다. 이미 현실의 조선소는 하청노동자에게 구조적인 원인은 방치한 채, 노동자의 안전조치 준수라는 명목으로 조선소 내 교통위반 딱지를 끊는다거나, 일상적인 음주측정, 사고에 대한 개인노동자에게 책임전가하기 등 원청의 책임을 다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통제와 규율로 강요하고 있다.

"일례로 2018년 대우조선에서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하여 작업중지권이 발동되었고, 이후 회사가 작업중지 해제신청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현장의 하청업체 노동자 164명에게 해제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받았다. 내가 일하는 현장이 여전히 위험한 상태임을 알면서도, 개별 노동자 스스로가 작업중지해제를 동의하게 하는 비상식적인 현실을 경험하였다. 그렇기에 지금 하고 있는 하청노동자의 조직화가 중요하며, 조직된 노동자들의 동의와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다."

노동절을 보내고 이어진 연휴기간동안 또다시 삼성중공업에서는 두 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하였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 또한 하청 노동자들이다.

"이번 산안법 개정이 의미가 없진 않지만 조선소 등 사업장에서 사망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다단계 하도급 금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조선소 등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한 도급승인 적용 대상의 확대와 함께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장소의 확대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실질적으로 하청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개선요구를 제대로 수렴하고 참여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확대하는 조치도 보완되어야 한다. 그래야 원청의 책임을 강화시키고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아서 노동자를 사망케하거나 건강권을 훼손시킨 사업주에 대하여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숙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입니다.


태그:#산안법, #김용균법, #위험의외주화, #산업재해, #하청노동자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