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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국 공보육 기관에서 정식 보육교사로 전일 근무를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이 사람들의 칼같은 퇴근 시간이었다. 8시부터 4시, 일일 8시간의 근무를 마치면 모든 교사들은 하던 일을 그대로 내려놓고 문을 나선다. 남아서 일을 하거나 집에 일거리를 싸들고 가는 일은 없다. 8시간 근무 중 휴식시간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후 4시가 되면 다른 일거리는 쳐다보기도 싫어한다.  

만 4, 5세 반 아이 17명이 있는 교실에 교사는 나와 내가 보조하는 정교사 한 사람, 그렇게 단 두 명. 이곳 보육 규정에 따르면 성인 한 사람이 돌볼 수 있는 만 4세 아이 수는 최대 12명이다. 그래서 17명이 있는 우리 반에는 하루 종일 반드시 이 두 명이 교실 안에 상주해야 한다. 둘 중 한 사람이 중간에 교실 밖에 나가 휴식을 취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실은 화장실 갈 틈조차 만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단 1초라도 이 12대 1이라는 비율을 벗어나면 안되기 때문에 한 반에 두 사람이 있어도 한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이 화장실엘 다녀올 수가 없다.   

화장실, 그놈의 화장실

사실 이 화장실 문제는 우리 원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원래는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에이드(aid)' 혹은 '플로터(floater)'라고 불리는 보조인력이 더 들어오게 되어 있다. 에이드/플로터는 '보조의 보조' 인력으로, 어느 반에 출석 인원이 늘거나 특수한 상황(사건사고 등)이 생겨 보조해 줄 사람이 필요할 때 어느 반에든 유동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상시대기 인력이다. 인력이 충분할 때는 아예 이 에이드가 각 반에 상시 투입되어 한 반에 세 명의 교사가 상주하도록 하는데, 그렇게 하면 셋이 돌아가면서 화장실을 다녀오기 편해진다.

그런데 여기도 워낙 보육교사 인력난이 심해서 한 반에 세 명의 교사가 동시 상주할 수 있을 만큼의 인력이  맞춰지질 않는다. 그래서 결국 한 반에 팀으로 들어가 있는 교사 둘이 눈치껏 요령껏, 혹은 주방에 있는 조리사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아직 낮잠 시간이 아니거나, 낮잠 시간이지만 아이들 다수가 깨어 있는 경우 주방에 전화를 넣어 조리사 선생님을 호출한다. 그럼 조리사 선생님이 와서 잠깐 머물러 주는 사이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형식이다.

조리사 선생님이 바빠 호출에 응답하지 못하면 잠시 '불법'을 감행해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10초만에 가 닿는 화장실. 얼른 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빠른 걸음으로 교실에 돌아오면 1, 2분 안에 돌아올 수 있지만, 그러다 하필 그 시간대에 방문한 매니저급 인사에 걸리면 바로 빽, 한 소리 듣는다. 그런 일이 여러차례 반복되면 벌점이 쌓여 해고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억지로 재울 수도, 그냥 둘 수도 없어

그 다음으로 고질적인 문제는 낮잠 시간. 여기도 교사들이 해야 하는 서류작업이 엄청나게 많다. 분기별 발달평가를 위해 시스템에 아이들 각각의 상황을 입력해 넣고, 매일 관찰일지를 쓰고, 학부모 자원활동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하고, 아이들 건강검진 기록을 요청, 수집, 전달하고, 외부 기관과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이메일로, 전화로 연락하는 등의 일을 모두 교사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정상 열 일곱명의 아이 모두가 잠든 뒤가 아니면 교사는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문제는 만 4세, 5세 아이 대부분이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

자는 아이가 1/3, 안 자는 아이가 2/3, 교사는 단 둘. 규정상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을 억지로 재워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안 자는 아이들을 다시 책상에 앉히는 것도 규정 위반이다. 처음 30분간은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간이 침대에 조용히,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한다. 그 30분이 지나면 아이들 각자에게 조용히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감을 나눠주고, 다음 30분동안 그 놀이감을 친구들과 서로 바꿔가며 놀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 요맘때 아이들이 조용히, 가만히 누워 있거나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놀 수 있단 말인가. 조용히 하라고, 누워 있으라고 어르고 달래는 일을 반복하는 것도 아이들에게나 교사들에게나 고역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은 본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만사 귀찮고 힘들어서 억지로 아이들을 재우려고 소리를 치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든 말든 밀린 업무를 하느라 노트북을 열어놓고 일하기도 한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들에게 손을 대는 모든 행위를 학대로 간주하는 이곳에선 낮잠을 억지로 재우기 위해 아이를 눌러 내리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손은 모자라고 일은 많은 상황에서 정서적 학대 혐의에서마저도 자유로울 수 있는 교사는 없다. 내 아이가 그맘때 바로 그 유명한 '낮잠 잘 안 자는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로서는 하지 않던 '낮잠 억지로 재우기'를 교사라는 이름으로 몇 번씩 다그쳐가며 행하는 날엔 자괴감이 들어 힘들었다.  

교사 대 아동 비율부터 줄이고 휴식 지원해야 

좀 큰 아이들 열 일곱에 교사가 둘이어도 손이 모자라 허덕이는 일들이 이처럼 많은데, 한국의 교사대 아동 비율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현재 한국에선 만 4세~5세 아이 20명을 교사 한 사람이 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당장 이 교사대 아동 비율부터 손보지 않으면, 식사 시간, 낮잠 시간은 물론이고 놀이 시간, 바깥 활동 시간에 아이들이 다치는 일은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작년에 실습하느라 잠깐 다녔던 이곳 데이케어(종일 돌봄시설)에서는 교사들이 돌아가며 한 시간씩 중간 휴식 시간을 갖게 되어 있었다. 주로 아이들 점심 먹고 치우고 낮잠 자는 그 두어시간 사이에 중간 휴식을 갖는데, 그 시간이 되면 원에 상주하고 있는 '플로터'들이 들어와 교대를 해 줬다. 그러면 담임 교사/보조교사들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나가서 점심을 먹거나 별도로 마련된 교사 휴게실에서 쉬다 들어올 수 있었다.

낮잠시간에도 별도의 방에 별도의 인력이 들어갔다. 그 데이케어는 이곳 데이케어 중에서도 드물게 바깥 놀이터와 별도로 실내 체육실을 갖추고 있었는데, 낮잠 시간에 안 자는 아이들을 따로 떼서 플로터가 실내 체육실에 데려가 놀곤 했다.

한국에선 작년에 8시간 근무에 1시간 휴식을 보장하는 법안이 생겨 보육기관에도 이 법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현재와 같은 보육기관 근무 환경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얘기다. 보육교사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교사들에게 '(알아서 요령껏, 반을 합치든 어쩌든) 한 시간 쉬라'고 강제할 게 아니라 '플로터 지원' 시스템 같은 것을 도입해줘야 한다.

실제로 쉬는 시간 규정을 지키기 위해 반을 합쳐버려서 교사 한 사람이 쉬는 동안 다른 교사 한 사람이 아이 40여명을 돌봐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들었다. 인력부족으로 만 3세반인 옆반과 합쳐 교사 둘이 아이 24명을 돌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아이들 40명이 있는 현장에 혼자 들어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돌봄도 노동, 돌볼 사람부터 늘려야

돌볼 사람을 대대적으로 늘리지 않으면, 지금까지와 같은 어린이집 아동학대와 안전사고는 결코 줄어들 수 없다. 사람을 돌보는 일엔 그만큼 사람을 늘려야 한다. CCTV를 아무리 들인대도 소용없는 일이다. 앞선 글(글 바로가기)에서 교사와 부모, 이웃, 외부 전문가와 전문기관이 수시로 들어와 돌봄 공동체로서 기능할 수 있었으면 했던 것도, 아이들을 함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우선 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 '돌봄'에 대한 인식, '보육/유아교육'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할 필요도 있다. 지금처럼 마치 보육은 '아무나 해도 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어렵지도 공 들일 필요도 없는' 일, '보육과 유아교육은 별개의 일'인걸로 여겨지면 보육계는 고질적인 인력난과 학대/방임의 악순환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유아보육/교육계 종사자와 관련자, 양육자 모두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돌봄에 대한,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태그:#기관보육, #교사 대 아동 비율, #보육교사 휴식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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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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