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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이 해당 직군이 모인 익명 단톡방 안에서 여성의 불법 성관계 영상을 공유하고 성매매 후기를 돌려본다면, 독자들은 이들 언론을 믿을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이 <기자 단체 카톡방에 "성관계 영상 좀">(4/19)를 통해 언론인들이 익명 단톡방을 만들어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성매매 업소를 추천하는 등의 행태를 1년 넘게 반복해왔다고 폭로한 지 보름 만에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와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9일, 서울 시청역 인근 환경재단에서 '강간문화의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최이숙 동아대학교 교수는 기자 단톡방 사건을 처음 접한 심정을 밝히며 "언론은 옛날부터 강간 문화의 방조자이자 동조자였기에 새로울 것은 없지만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 있다"며 서두를 열었다.
 
9일, 서울 시청역 인근 환경재단에서 강간문화의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9일, 서울 시청역 인근 환경재단에서 강간문화의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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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숙 교수는 "기존의 강간문화가 모바일·디지털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술자리의 음담패설과는 다르게 기록이 남고 발언들이 빠르게 공유된다는 게 특징"이라며 이전과 달라진 시대 상황을 설명했다. 

또 최 교수는 "기자들에게 높은 윤리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들이 가진 사회적 중요성 때문"이라며 "기자가 부도덕하다는 건 언론 전체 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역사적인 맥락 아래) 외부적인 압력으로부터 언론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 기자들의 취재 행위에 대해서는 별달리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며 "기자를 양산하는 과정에서부터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 주가 되는 등 성찰하기 힘든 환경이 지속돼오면서 인권 감수성이나 윤리적인 고려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언론사 내부의 문화를 짚었다.

"기자들, 개인정보 보호 교육 이수해야"

기자 단톡방 공론화에 앞장선 여성단체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의 고이경 활동가는 "사실 처음 사건을 접했을 때 전혀 놀랍지 않았다"며 "'OO녀'라는 제목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기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언론의 젠더감수성에 우려를 드러냈다. 

고 활동가는 "2017년에 남성 기자들이 다른 단톡방에서 한 차례 여성들을 상대로 성희롱한 게 밝혀졌지만 그 기자들의 경우 감봉 2~3개월 정도의 징계를 받았고 어떤 언론사의 경우 프라이버시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며 "내부적 성찰과 자정 노력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본다"고 비판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언론사 내부 조직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소 활동가는 "처벌이나 징계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 앞으로 이와 연결된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바꿔나가야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것은 곧 언론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이제 누가 언론을 믿고 제보를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9일, 서울 시청역 인근 환경재단에서 강간문화의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9일, 서울 시청역 인근 환경재단에서 강간문화의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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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효실 한겨레 기자는 토론에 앞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김 기자는 이윤소 활동가의 의견에 동의하며 "교육 역시 마찬가지로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방법이 우리 회사 조직에 맞는 방법일지를 찾아가고 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현재 언론사에 종사하고 있는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미디어오늘에서 보도했을 때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도 기사를 클릭하지 못했다"며 "직접 내 눈으로 기사를 봤을 때의 괴로움 때문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기자는 "동종 업계에서 일하면서 이런 일을 하도록 방치하고 하루빨리 이들이 언론계에서 퇴출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지 못했다는 죄송함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언론노조 "강한 징계 필요해"
 
9일, 서울 시청역 인근 환경재단에서 강간문화의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9일, 서울 시청역 인근 환경재단에서 강간문화의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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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한림대학교 교수는 언론사 내부에 여성 기자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여성 기자가 쓴 기사는 확실히 (젠더감수성 등이) 다르다"며 "여성 기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다음에 여성 학자와 여성 활동가 등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기자 단톡방 보도 이후 4월 24일 논평을 내고 기자 단톡방의 행태를 규탄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기자 단톡방에 속한 이들이 기자 윤리를 위반했고 그렇기 때문에 강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장은 "취재에서 획득한 정보는 보도 목적으로만 쓰는 게 기본인데 이를 위반했기에 회사의 엄정한 징계가 필요하나 유사한 사건들의 경우 대부분 감봉에 그쳤다"며 "더 강한 징계가 필요하고 불법 촬영물 유포만이 아니라 공유 요청 역시 성폭력특별법에 따라 사법처리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안형준 방송기자연합회 회장도 이날 "연합회 차원의 문제가 있으면 운영위원회를 열어 제명 등의 조처를 하겠다"고 말하며 "언론인을 대상으로 인권 및 젠더감수성 교육과 개인정보 보호 교육을 열 것을 제안해보겠다"고 언급했다.

태그:#강간문화의 카르텔, #기자 단톡방, #성희롱, #언론인 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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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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