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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내음 거득한 쑥향이 노랑색 현수막을 물들인다.  5월 1일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5월 22일 경남 봉하마을까지, 22일간 22구간 490킬로미터의 '노무현 순례길' 대장정이 순항 중이다.
▲ 봄내음 거득한 쑥향이 노랑색 현수막을 물들인다.  5월 1일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5월 22일 경남 봉하마을까지, 22일간 22구간 490킬로미터의 "노무현 순례길" 대장정이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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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상종이지만 동상이몽 하는 이율배반적 삶의 끈적임. 끼리끼리 모인다지만 죄다 바라는 욕구는 다르기에 곧바로 사분오열하곤 하는 현실. 같은 듯 다른 모두가 잇속 채우기에 바쁜 나날들은 삶을 지치게 하고 그러한 쳇바퀴는 극단의 이기주의로 치닫게 한다. 

"함께, 봉하 가는 길" 
"사랑한다면, 노무현처럼" 


워낙 단순한 구호여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순간 파이팅을 외칠 때면 중얼거리기만 한다. 한참을 지나고 여러 번 반복을 한 후에서야 누군가 "함께"라고 선창을 하면 "봉하 가는 길"이라고, "사랑한다면"이라고 하면 "노무현처럼"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순례자들은 5월 1일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5월 22일 경남 봉하마을까지, 22일간 22구간 490㎞의 '노무현 순례길'에 올랐다. "함께"라는 선창에 "봉하 가는 길" 대신 "노무현처럼"을 외치며 좌충우돌하던 모습은 어느 순간 일사불란한 구호로 통일돼 한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안전하게 함께 가는 길을 논하다 5월 4일, 4구간 병점역에서 지제역으로 가는 길
▲ 안전하게 함께 가는 길을 논하다 5월 4일, 4구간 병점역에서 지제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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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별 평균 25㎞의 대장정에는 어린아이부터 장년까지, 심지어 갓난아이부터 60대 중반의 동행이 이뤄진다. '갑자생 띠동갑'이라며 웃음꽃도 피어난다. 

길을 가다 "봉하까지 가는 거예요?"라는 응원 질문에 "예, 갑니다, 다음 주자에 이어 또 다음 주자로, 그렇게 22구간이 계주하듯 봉하까지 가지요"라고 손을 흔들며 응대한다. "왜 가는 거지요?"라는 의문에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요"라며 응수한다. "도대체 얼마 받고 하는 겁니까?"라는 불쾌한 질문에는 "얼마면 하실래요?"라는 반어법으로 맞대응하기도 한다.
 
병점역에서 순례길에 오르다 5월 4일 오전 9시, 제4구간 병점에서 지제역까지 25킬로미터의 순례길에 올랐다.
▲ 병점역에서 순례길에 오르다 5월 4일 오전 9시, 제4구간 병점에서 지제역까지 25킬로미터의 순례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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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이른 아침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병점역에 도착하니 노란색 옷을 입은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삼삼오오 모여들더니 어느덧 40여 명으로 늘어났다. 난생처음 만나는 이들과의 첫 만남이 그리 쑥스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듯 보였다. 이는 그냥 걷기 위함이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을 염원하는 이들이 의기투합해서일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릴레이 국토대장정' 일명 '깨시국'의 노무현 순례길 4일 차 4구간은 그렇게 시작됐다. 올해로 세 번째 깨시국이란다. 첫해엔 한두 명이 걸었고, 지난해에는 예닐곱이 걸었다. 38명이 모이자 구간대장이 놀랐는지 "와! 많이 왔다"라며 흥이 난 모습을 보였다. 

5월 1일 광화문 광장에서 출범하고 시작된 3기 깨시국은 서울 광화문역에서 경남 진영역까지 전철역과 국철역을 낀 천이백 리의 도보 행진 길이다. 이어 고 노무현이 잠든 봉하까지 정확히 490.4km 거리다. 

세마역에서 잠시 휴식. 벤치 옆 봄쑥의 짙은 향이 깨시국 현수막을 더욱더 노랗게 한다. 채 한 살도 안 된 갓난아기와 64세의 최고령 순례자와의 기념 촬영. 뱀쑥의 노랑꽃도,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도 '사람 사는 세상'을 응원하는 듯 웃음이 만개한다. 

오산대역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주한 순례자와 첫 대화를 나눴다. 안 선생님은 "수년 전 정년퇴임을 해 시간과 여건이 돼 전 구간 완주에 도전한다"고 했다. 최고령 순례길에 오른 안 선생님에게 나는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했다. 

걸으며 나누는 초면의 순례자들과의 대화들. 평범한 이들의 우러나는 가치들이 '사람 사는 세상'에 빛을 더한다. 

회색 아스팔트가 발바닥을 저리게 하고 울퉁불퉁한 공사 길과 흙길이 속도를 지연시킬 때마다 "함께~ 봉하가는 길, 사랑한다면~ 노무현처럼"을 외치며 갈 길을 서두른다. 

송탄역, 서정리역을 지나 지제역으로 향하는 고가도로에 걸린 황금빛 석양이 꽤 장엄하다. 4구간 끝 지제역에 도착하니 오후 7시. 모두가 내일의 일상을 위해 뿔뿔이 흩어진다.
 
안 선생님과 찜질방에서의 1박을 마치고 이른 아침 지제역에 도착했다. 두정역까지 5구간, 25.8km의 순례길이 시작됐다. 

삼척동자도 안다는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에서 출발해 예수의 제자 야곱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총 32구간 800km 정도라고 한다. 기원 상으로는 종교적 순례길로서의 색채가 짙지만, 이미 대중적 도보여행 길이 됐다. '순례길'이란 여러 곳을 차례로 방문하거나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길을 의미한다. 

깨시국 이강옥 대표는 "유럽에 산티아고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노무현 순례길이 있다"며 "노무현의 정신을 기리며 그의 행적을 따라 걷는 길"이라고 말한다. 3기 순례길에 참여했던 한 집행부원은 보름간 연차를 내고 가려 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포기하고 노무현 순례길을 택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앞으로 이 길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순례길이 됐으면 한다"며 "그렇게 되도록 한층 더 노력할 각오"라고 다짐했다. "깨시국은 정치성을 지양한다"고 덧붙였다. 

'사람 사는 세상'은 결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시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결단코 이룰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을 품지 못하고 민주주의는 퇴행하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함께 봉하가는 길' 
'사람 사는 세상, 5월은 노무현입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릴레이 국토대장정' 


마치 10년 전 갑작스러운 비보에 노란색 만장이 한반도에 펄럭였듯, 노무현 순례길은 당신이 이루지 못한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려는 작은 시민들의 안간힘을 품고 있다. 

평택역과 성환역을 지나니 제법 다리가 무거워진다. 전날의 무게감이 더한 듯하다. 현수막에 매달린 노란 풍선도 스스로가 버거운지 그 공허함을 빼낸다. 

대구에서 올라온 3인방, 어린이날 어린 자녀와 동행한 젊은 부부, 며칠간 가출했다며 농담을 던지는 60대 중반의 여성, 다정한 40대 부부와 흥이 난 50대 부부, 발랄한 20대 대학생과 30대의 팔팔한 직장인 등 제각기 삶을 잠시 내려놓고 더불어 살고자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그렇게 5구간 60리를 함께 했다. 

차량, 사진, 글 등 다채로운 재능기부에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 뚜벅뚜벅 길을 걷는 직접적인 참여까지. 그렇게 봉하 가는 노무현 순례길은 거대한 바퀴가 되어 굴러간다.
  
50여 km의 4~5구간 종점 두정역에서 5월 1일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오는 5월 22일 경남 봉하마을까지, 22일간 22구간 490㎞의 '노무현 순례길' 깨어있는 시민들의 릴레이 국토대장정은 계속된다.
▲ 50여 km의 4~5구간 종점 두정역에서 5월 1일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오는 5월 22일 경남 봉하마을까지, 22일간 22구간 490㎞의 "노무현 순례길" 깨어있는 시민들의 릴레이 국토대장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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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역, 직산역을 거쳐 석양의 응원을 받으며 5구간 끝 두정역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움 반, 설렘 반이었다.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되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이번 순례길에 대한 숨은 얘기들을 나눴다. 

다시 걷고 깊은 노무현 순례길. "왜?"라고 물으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라고 말하련다. 내가 아는 노무현은 "시민주권"을 외친,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약한 바보 같은 사람이다. 그를 생각하며 바람이 된 전설의 길을 계속 걷고 싶다. 

2017년 첫 길을 연 노무현 순례길은 올해가 세 번째다. 순례길은 오는 5월 21일 진영역까지, 22일 진영역에서 봉하마을까지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이성진은 법률저널 기자로 기사의 수익금은 전액 '깨어있는 시민들의 릴레이 국토대장정'의 노무현 순례길 후원금으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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