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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을 따라 달리다가 이팝나무가 보이는 곁길로 들어섰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보니 한쪽에 아카시아나무가 활짝 핀 꽃을 조롱조롱 달고 서 있다. '정녕 오월이구나' 나는 아카시아꽃 아래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봐 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오월의 향기를 지닌 아카시아꽃이 오히려 귀하게 느껴진다. 
 
활짝 핀 이팝꽃.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교목으로 5월에 하얀 꽃이 온 나무를 소복하게 덮을 정도로 핀다. ⓒ 김숙귀

진부한 표현이지만 오월이 계절의 여왕이란 말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요즘이다. 멀리 보이는 산과 집 뒤 야트막한 언덕, 그리고 넓은 들판과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거리 가로수, 천진한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공처럼 튀어오르는 유치원 마당에도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지금 한창 피어나고 있을 이팝꽃을 보기 위해 밀양 위양지로 향했다.
 
위양못에 있는 다섯 개의 섬 한 곳에 안동권씨가 세운 완재정이 있다. 활짝 핀 이팝꽃과 함께 저수지에 비친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 김숙귀

밀양시 부북면 화악산 자락에 있는 위양지는 신라와 고려시대 이래 농사를 위해
만들어졌던 둑과 저수지이다. 위양(位良)이란 양민(良民)을 위한다는 뜻으로, 현재의 못은 임진왜란 이후 밀양 부사 이유달이 다시 쌓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못에 있는 다섯 개의 섬 한 곳에 안동 권씨가 세운 완재정이 있고, 둑에는 아름다운 꽃과 왕버들, 팽나무들이 있다. 특히 봄이면 못가에 하얗게 피는 이팝나무로 풍광이 뛰어나다. 2016년 제 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저수지에 담긴 오월 ⓒ 김숙귀

  
해마다 오월이면 저수지에 투영된 완재정과 이팝꽃을 보기 위해 사진작가와 관광객들이 몰려 든다. ⓒ 김숙귀

이팝이란 이름은 꽃이 활짝 피면 흰쌀밥(이밥)을 담아 놓은 것같이 보여 이밥나무라고 하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말도 있고, 입하절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이라고 하다가 입하나무, 그리고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들고 드문드문 필 때는 가뭄의 피해가 있으며 꽃이 잘 피지 않으면 흉년이 온다고들 했다. 가난했던 시절, 이팝꽃이 피는 시기는 보릿고개라해서일 년 중 허리가 꺾일 정도로 가장 배고플 때였다.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지는 꽃잎 하나하나가 마치 뜸이 잘 든 밥알 같이 생겼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 하얀 꽃이 나무를 덮고 있는 모습이 흰 쌀밥을 수북히 담아놓은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팝나무 꽃에는 애잔한 전설도 서려 있다. 며느리가 제사상에 올릴 쌀밥을 짓다가 뜸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밥알 몇 개를 입 안에 넣었다. 이를 본 시어머니는 제삿밥을 퍼먹었다며 며느리를 쫓아냈다.

며느리는 뒷산에서 목을 매 죽었고, 이듬해 며느리의 무덤가에 이팝나무 꽃이 피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팝꽃에 슬픔이 보인다. 하지만 이 봄, 소담스레 피어 있는 하얀 이팝꽃을 보며 옛날과는 또다른 일상의 고단함과 팍팍함을 위로 받는다.

위양지 구경을 마쳤다면 밀양 삼문동 강변 둔치공원에 핀 양귀비도 보러가자. 아리랑축제에 맞춰 밀양시에서 5500여 본을 식재했는데 지금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명한 수산국수도 한 그릇 맛 볼 만하다. 시내에는 오직 바람과 햇볕에 의존해 면을 말리는 전통국수를 제조하고 말아내는 집들이 있다.
태그:#오월,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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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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