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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란 경제제재로 지난 2일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이 금지된 데 이어, 7일부터는 유류세 인하 폭이 15%에서 7%로 축소된다. 이에 따라 휘발유는 리터당 65원, 경유는 46원, 액화석유가스(LPG) 부탄은 16원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휘발유의 경우에는 전국 주유소 평균가가 1500원대로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울 지역의 경우에는 1600원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휘발유 및 경유 가격을 표시하는 도로변의 주유소 안내판을 흘끔 쳐다보는 운전자들이 좀더 많아지게 생겼다.

한국인들이 국제 유가에 특히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한국 땅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수입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제제로 인해 이란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주요 산유국과 자유롭게 거래하기 힘든 것도 한국의 석유 수급을 곤란케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이란산이나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제재하는 진짜 이유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알렉산더 해밀턴, 앤드루 잭슨, 율리시스 그랜트, 벤저민 프랭클린의 '몸값'과 관련이 있다. 이들의 몸값을 지켜주기 위해 미국이 두 나라 석유의 거래를 금지하는 측면이 매우 농후하다.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7명의 공통점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거나 아니면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해밀턴과 프랭클린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고, 나머지는 대통령을 역임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그들 7명이 달러 지폐의 모델이라는 점이다.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은 1달러, 제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2달러, 제16대 대통령인 링컨은 5달러, 건국의 아버지이자 재무장관이었던 해밀턴은 10달러, 제7대 대통령인 잭슨은 20달러, 제18대 대통령인 그랜트는 50달러, 건국의 아버지이자 우정장관이었던 프랭클린은 100달러 지폐의 모델이다.

 
 1달러.
 1달러.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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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란·베네수엘라 석유를 제재하는 것은 달러 모델들의 몸값, 다른 말로 달러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두 나라의 원유 거래가 달러화 가치를 떨어트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는 측면이 매우 농후하다.

금이나 은 같은 금속화폐와 달리 달러 지폐는 사실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그런 종잇조각에 대해 세계적 가치가 부여된 것은 '달러는 금으로 교환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35달러를 가져가면 미국 중행이 금 1온스를 줄 것이라는 믿음을 기초로, 달러는 세계적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믿음을 만들어낸 것이, 미국 동북부와 캐나다가 만나는 곳인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서 1944년 44개국이 체결한 브레턴우즈협정이다. 달러를 기축통화(기본통화)로 인정하는 이 협정을 기초로 '35달러가 금 1온스와 태환(교환)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미국의 경제력이 막강하고 금 보유량도 세계 최고였던 시절이었기에 이런 믿음이 생겨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미국의 재정 지출이 늘어나고 금 보유량도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외국이 달러를 갖고 가도 미국이 금을 내줄 여력이 적어지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달러를 갖고 미국에 가서 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발생한 이런 사태에 대해 미국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미국이 보여준 것은 무책임의 극치였다.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나 "일시적으로,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발표했다(닉슨 쇼크). '일시적'이라는 말은 결국 거짓말이 됐다. 지금까지도 미국은 바꿔주지 않고 있다. 달러를 계속 발행하고 이를 기초로 세계를 지배하면서도, 달러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 메이지대학 교수가 집필하고 번역가 홍성민이 옮긴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같은 책에서도 강조된 것처럼, 닉슨 쇼크는 '금의 역할 퇴조'라는 관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 사건이다. 닉슨 쇼크는, 1800년대에 은(銀)을 대신해 세계 화폐가 된 금이 그 지위를 내려놓게 된 사건이었다. "이렇게 금은 화폐와 멀어지게" 됐다고 사이토 다카시는 말했다.

금이 멀어진 자리에, 금이 떠나간 자리에 미국은 무언가를 메꿔야 했다. 달러과 금의 태환 관계를 상실한 미국은 금의 대용물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달러 체제가 무너지고 미국의 세계패권이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미국이 포착한 게 바로 석유였다. '달러와 금'의 태환 관계에서 금이 차지했던 자리를 석유가 대신 차지하도록 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를 위해 만들어낸 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력 체제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문이얼의 논문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 고조- 국제통화 패권 다툼의 숨은 전장'에 이런 설명이 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왕과 합의하여 석유 거래대금으로 달러만 쓰기로 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과잉 자금을 미국정부 채권이나 기타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도록 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닉슨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지대를 소련이나 다른 주변 국가들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1975년에 이르면 OPEC(석유수출국기구)에 가입한 모든 국가들이 석유 거래를 달러화로 결제하기로 동의했다. 이후 뉴욕 상업거래소와 런던 국제석유거래소의 석유 거래는 오직 달러로만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연쇄 반응으로, 석유를 수입하려는 모든 국가들은 구입 대금으로 미국 달러화를 비축하기 시작하였다."
-진보평론이 2012년 발행한 <진보평론> 제51호.
 
 
 2010년에 열린 OPEC 회의.
 2010년에 열린 OPEC 회의.
ⓒ 위키백과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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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들과의 이 같은 협력 체제에 힘입어, 미국은 금을 준비해두지 않고도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중동과 세계 석유에 대한 영향력이 유지되는 한, 금 비축에 신경 쓰지 않고 달러화를 찍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 미국 경제가 한층 허약해진 2000년대 들어 두드러지기 시작햇다. 이 도전에 가세한 나라들이 바로 이란과 베네수엘라다. 이 나라들을 부추긴 쪽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이다. 닉슨 쇼크의 원인을 제공했던 프랑스가 이때도 앞장을 섰던 것이다. 위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때부터 프랑스와 몇몇 유럽연합 국가들은 당시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를 받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접근하여 이라크가 필요로 했던 식량의 결제대금을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할 것을 논의했다. 그로부터 지난 2003년 3월에 단행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와 이란·인도네시아·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들도 차례로 석유 거래를 비(非)달러화로 결제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중략)

이란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 계획이 노골화되던 2003년 초에도 다른 나라들에 대해 석유에 대한 거래대금을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할 것을 요청했었고, 2007년에는 일본에게 엔화를 석유대금으로 요청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 역시 외국환 보유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국가들이 달러화가 아닌 위안화·유로화·엔화 등으로 석유 대금을 결제하게 되면, 금 보유량이 뒷받침되지 않는 달러화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돈을 자유롭게 찍어 세계 정책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데는 이런 요인이 작용했다. 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자들을 용인하게 되면 미국의 세계패권이 얼마 안 있어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러 체제를 흠집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프랑스다. 프랑스는 EU국가들과 함께 이라크를 부추겨 달러 대신 유로화 사용을 유도했다. 닉슨 쇼코 전에도 금을 대량 인출해 미국을 당황케 했었다. 따라서 미국이 가장 강력하게 제재해야 하는 대상은 베네수엘라·이란·이라크가 아니라 사실은 프랑스다.

하지만, 프랑스는 부담스러운 존재이므로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수입하던 나라들이 덩달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석유 수입에 지장을 겪고 유가 등락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달러화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달러화를 지키고자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 미국의 정책 때문에 한국이 이 나라들로부터 원유를 구입하기가 힘든 것이다.

 
 서울 선릉 주변에서 찍은 테헤란로 표지.
 서울 선릉 주변에서 찍은 테헤란로 표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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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란 석유가 한국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미국이 한국과 이란을 연결해주었기 때문이다. 친미국가인 대한민국 서울의 강남 번화가에 반미국가인 이란의 수도 명칭을 딴 '테헤란로'가 있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테헤란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외대에 재직하는 유달승 교수의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70년대 전반기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 시기 미국은 이란을 '중동의 헌병'이라고 불렀고, 이란을 통해 중동정책을 추진하였다.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에 따라 한국과 이란의 관계도 가까워졌다. (중략) 1977년 6월 17일 이란의 테헤란 시장이 서울을 방문해 테헤란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그 상징으로 지명 교환에 합의했다. 현재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듯이, 테헤란에는 서울로와 서울공원이 있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생겨나게 할 정도로 한국과 이란을 이어주었던 미국이, 이제는 달러화를 지킬 목적으로 한국과 이란을 갈라놓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기름값을 더욱 더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국인들이 석유 문제로 고생하는 것은 달러화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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