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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부산에서 열리는 축제 한마당

 
조선통신사 평화의 행렬
 조선통신사 평화의 행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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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가 열렸다. 5월 3일(금)부터 6일(월)까지 부산항과 용두산 공원을 중심으로 관련기관과 거리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조선통신사 국제 학술심포지엄, 춤으로 표현된 조선통신사. 인형으로 표현된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 평화의 행렬, 조선통신사선 승선체험, 전별연 및 네트워크 파티, 거리공연, 필담창화(筆談唱和), 관광물산전 등이 있었다.

이들 프로그램 중 좀 더 중요한 행사가 5월 3일과 4일에 열렸다. 앞에 언급한 다섯 가지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5일과 6일에는 교류와 화합 그리고 체험과 관광에 중점을 둔 행사가 진행되었다. 조선통신사 축제는 부산광역시가 주최하고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부산항만공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국립부산국악원 등이 프로그램 장소를 제공하고 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국제적인 행사답게 일본의 공연팀도 상당수 참가했다.
 
부산 시티투어
 부산 시티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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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는 전체적으로 학술성, 예술성, 대중성이 어우러진 의미 있는 행사였다. 조선통신사 승선체험, 춤으로 표현된 조선통신사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의미를 더했다. 이번 축제는 대체공휴일까지 있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축제 때문인지 연휴 때문인지,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에도 인파가 몰렸다.

학술심포지엄의 주제들이 너무 전문적이다
 
조선통신사학회 2019 춘계 학술심포지엄
 조선통신사학회 2019 춘계 학술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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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조선통신사학회 국제 학술심포지엄이 5월 3일 오후 1시 30분부터 6시까지 아스티(Asti)호텔 22층 연회장에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는 "조선통신사와 한․일 문화교류"였다. 네 명이 주제발표를 하고, 발표 후 종합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두 사람이 한․일간 외교교섭에 대해 발표했고, 두 사람이 조선통신사선 재현에 대한 연구와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해진 도자기에 대한 연구 발표를 했다.

첫 번째 신문희박사가 "영빙교섭(迎聘交涉), 호행교섭(互行交涉)"으로 불리는 한․일간 외교교섭에 대해 발표를 했는데, 너무 전문적이고 어려웠다. 한․일간 외교교섭의 주역을 담당한 쓰시마의 <대마번 종가문고(對馬蕃宗家文庫>를 토대로 통신사를 초빙해 맞이하기 위한 교섭과정을 연구한 것이다. 이들 교섭은 대마번 관리와 동래부 조선관리가 맡아 했다. 그러나 이들 교섭과정의 문제점 때문에 1811년을 마지막으로 통신사 교류가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조선과 일본의 외교교섭 개념도
 조선과 일본의 외교교섭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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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제는 사카이 마사요(酒井雅代) 박사의 "역지빙례교섭(易地聘禮交涉)"이다. 역지는 '장소를 바꾸다'라는 뜻이다. 빙례교섭은 조선통신사 초빙장소를 에도(江戶)에서 대마(對馬)로 바꾸는 문제에 대해 교섭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1811년 조선통신사 방문과 관련된 외교교섭의 현장 이야기를 자세히 정리하고 있다. 1788년 일본측에서 통신사 방문 연기를 요청했고, 이어서 역지통신교섭이 추진된다. 그리고 조선측의 거부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811년 대마도에서 역지통신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다.

조선통신사선 재현 연구는 실증적이어서 흥미롭다 
 
조선통신사선 모형도
 조선통신사선 모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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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주제발표가 조선통신사선 재현에 관한 연구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홍순재 학예연구사가 발표를 했다. 연구의 핵심은 정사가 타고 간 기선(騎船)의 원형을 밝혀내고, 그에 근거해 정사선의 재현과정을 구조별로 정리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전통선박의 변천과정을 개괄했다. 두 번째로 문헌과 그림(繪畫) 속 정사기선을 살펴보았다. 세 번째로 정사기선의 추정설계 과정을 설명했다. 네 번째로 정사기선의 재현과정을 15개 단계로 나눠 자세히 설명했다.

통신사선의 대한 기록은 1763년 <계미수사록(癸未隨槎錄)>에 가장 잘 남아 있다. 통영의 수군통제영에서 제작된 4척의 배에 대한 제원과 제작과정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802년 사역원(司譯院) 당상역관(堂上譯官) 김건서(金健瑞) 등이 편찬한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에서도 통신사선 선체 구조에 대한 기초자료를 얻을 수 있다. 1822년 편찬된 <헌성유고(軒聖遺稿)>를 통해서는 동시대 대마도에 파견된 사견선(使遣船)의 실체를 알 수 있다.
 
화방누선으로 불린 통신사선
 화방누선으로 불린 통신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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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년 통신사 부사로 간 조경(趙絅)의 <동사록(東槎錄)>에 보면, 배의 내부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첫 부분 '화방누선설(畫舫樓船說)' 부분이다. 여기서 화방누선은 용으로 단청을 한 놀잇배라는 뜻이고 누선은 2층 형태로 누각이 있는 배를 말한다. 조경은 배의 길이, 폭, 구조, 승선인원. 노, 돛대, 닻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배의 길이는 40척 남짓하고 넓이가 15척 남짓한데, 밑판(底板)은 여섯을 이었고 삼판(杉板)은 열 쪽을 쌓았으며, 그 높이를 재어 보니 한 자(尺)되는 것이 12쪽이었다. 배 가운데 두 칸을 베풀어 한 칸 안에 좌우로 판옥(板屋)을 지었는데 좌편이 동방(洞房)이요, 방안은 두 자리를 깔 만한데 판자로 벽을 삼아 연꽃을 칠했으며 사면 벽에는 다 문이 있고 붉은 칠, 흰 칠을 하였으니 그 방이 나의 잘 곳이었다. 우편 방도 위와 같으나 조금 좁은데 편비(褊裨)가 처할 곳이요, 그 뒤에 두 방이 있으니 통역관(通官)과 여러 역원(役員)들이 처할 곳이었다. 판옥 위의 제도는 보통 다락과 같은데 둘레에 난간을 쳤으니 곧 사신이 시무(視務)할 대청이다. 동방 좌우엔 모두 판자를 놓아 길을 만들어 뱃사공이 왕래하며 일보기에 편토록 했고, 또 그 사이에 노(櫓)를 벌여 놓았으니 좌우를 합하여 노의 수(數)가 모두 16이었다. 뱃머리와 허리에 각기 높은 돛대를 세웠으며, 배꼬리 구멍에는 큰 키를 두었으니, 이상이 그 배 제도의 대강이었다."
 
조선통신사선도
 조선통신사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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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는 <조선통신사선도>, <근강명소도회 조선빙사(近江名所圖繪 朝鮮聘使)>, <조선선입진지도(朝鮮船入津之圖)>, <조선통신사견히젠주선행렬도(朝鮮通信使牽肥前舟船行列圖)> 등이 있다. 이들은 통신사선의 모습과 제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앞의 세 그림은 통신사선 한 척을 아주 크고 상세하게 표현했다. 이에 비해 <조선통신사견히젠주선행렬도>는 제목에 걸맞게 조선통신사선 뿐 아니라 이들을 이끄는 히젠번의 배들 모습까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조선통신사선 6척이 화면에 크게 그려져 있다. 이들을 이끄는 히젠번의 배는 299척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을 구경하는 배가 2척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무려 307척의 배가 그려진 셈이다. <조선선입진지도>에는 선박의 규모와 승선인원까지 기록해 놓고 있다. 곡식 천석(千石)을 적재할 수 있고, 사람 85명이 탈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럼 통신사선은 어떻게 복원되었을까?

 
통신사선 설계도
 통신사선 설계도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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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속의 기록을 토대로 통신사선의 기초설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길이 34m, 너비 9.5m, 높이 3m의 평저선에 판옥을 얹은 149t의 원양선을 재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벌목한 소나무를 건조, 훈증, 방부처리해 배의 저판을 만든다. 저판 위에 이를 고정하기 위해 종횡으로 보강재를 연결한다. 선수재와 선미재를 연결하고 격벽을 설치한다. 배의 전체 형태를 만들기 위해 외판을 붙인다. 그리고 3m 간격으로 멍에를 설치한다.

이러한 기본 구조 위에 갑판이 만들어졌다. 이 작업을 위해 갑판보와 멍에를 맞추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위에 갑판을 깔면 된다. 갑판 위에 판옥이 지어지고, 돛대가 올려진다. 판옥은 배의 중심공간으로, 기둥과 벽, 천정과 문이 설치되어 있다. 판옥 위에는 누각을 설치하여 사신이 정무를 수행하거나 입출항시 앞뒤를 관망할 수 있도록 했다. 누각 위에는 조립식으로 차일을 칠 수 있도록 했다.
 
선미 창고와 치
 선미 창고와 치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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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에는 창고를 지어 물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키(Key)로 불리는 치는 방향타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배의 뒤쪽에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통신사선에 특이한 것은 파도막이다. 배의 좌우 뱃전에 설치해, 파도로 인해 들어오는 해수 차단을 가능케 했다. 이것은 또한 선원들의 이동통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에는 장식과 목재 보호를 위해 단청을 했다. 선수(船首)에는 용을 그렸고, 판옥의 벽면에는 산수, 화초(花草), 새 등을 그려넣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통신사선 원형연구가 결실을 맺은 것은 2018년 10월이다. 10월 26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주최로 목포에서 진수식이 열렸다. 이 배는 외적으로는 통신사선이지만, 내적으로는 선상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에 통신사 관련 실물과 자료, 미니어처 등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배가 목포에서 부산까지 이동해 와 이번 조선통신사 축제에 참여한 것이다.

태그:#부산 조선통신사 축제, #학술심포지엄, #외교교섭, #조선통신사선, #통신사선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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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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