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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이돈의 헤드스타트(저소득층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지원제도) 지역센터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 전 미소를 짓고 있다. 2011.11.8
 8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이돈의 헤드스타트(저소득층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지원제도) 지역센터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 전 미소를 짓고 있다. 2011.11.8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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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영유아를 기관 보육하는데 드는 비용은 실로 엄청나다. 우리 아파트 바로 근처에 있는 영유아 돌봄 시설만 해도 일주일에 300~400불. 미국 주별로 한달 보육비 평균치를 계산해 내놓은 지도를 찾아 보니 이곳의 평균은 월 1,649불이다. 남편의 한달 월급을 몽땅 털어넣어야 하는 수준. 그랬던 우리에게 숨통을 틔워 준 것은 미국의 유일한 공보육 시스템, 헤드스타트(Head Start) 프로그램이었다.

취약계층을 위한 육아공동체, 헤드스타트

헤드스타트는 1965년 린든 B. 존슨 행정부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시작된 저소득 가정 대상 돌봄/교육 공공 서비스다. 1960년대 당시에 미국이 어떤 생각으로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을 시작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영상 자료 속에서 린든 B. 존슨은 "이 프로젝트(헤드스타트)는 이웃공동체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게 하려면 정부의 노력 뿐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많은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에서는 교사와 부모 뿐 아니라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모두가 동참해 아이들을 보육.교육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과 기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다. 우선 해당 반의 정교사와 보조교사, 그리고 FEW(Family Engagement Worker)라고 불리는 가정 상담 인력이 수시로 개별 가정의 상황을 주시하고 상담한다. 그리고 1년에 최소 33시간, 부모가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것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등하원 때 10분, 15분이라도 부모가 교실에 들어와 아이와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는 활동을 하도록 권한다.

에이전시 차원에서는 가정 내 학대나 방임이 일어나지 않도록 부모 대상 교육을 실시하고, 발달 지연이나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다면 외부 기관에 연계해 언어치료, 감각치료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퇴직 교사 등 주로 노년 인구로 구성된 자원활동 조직에서 나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고, 각 반의 수업 내용에 따라 동네 경찰서, 소방서, 병원 등에서 사람들이 나와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는 날도 많다.

태어난 아이들을 함께 돌본다는 것

실제로 이곳의 저소득 가정 아이들은 물리적, 문화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어서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외에는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우리집은 소득만 보면 빈곤 가정에 속하고, 아이가 희소질환자라 건강상 취약계층에 속하지만, 부모인 우리는 교육열 남다른 한국 출신에 학력도 높아 헤드스타트 서비스 이용자로서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미국 빈곤 가정의 특수한 사정이나 정서를 이해하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어떻고 원인이 어떻든,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 자라는 이상, 태어난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품고 함께 길러야 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보육교사 직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격증 과정을 밟으며 이 어린이집에서 현장 실습을 했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재작년에 아이가 속해 있던 반에는 매주 화요일에 우리 교실에 들어와 두 시간씩 머물며 아이들의 놀이를 보아주고, 점심 배식을 해 주던 할머니가 한 분 있었다. 아이들은 매주 화요일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할머니를 기다렸다. 벌써 몇 년째 이런 활동을 하고 있던 할머니께 이 일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내 자식들은 다 멀리 살거든. 그래서 손주들 볼 날이 일년에 며칠 없어. 영감이랑 덩그러니 집에만 있으면 뭐해. 이렇게 남의 손주들이라도 내 손주처럼 보고 예뻐하고 그러면 좋지."

동네 사랑방 같은 보육기관, 어떨까

아이들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우울해지는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다행이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시시때때로 아이들을 위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동네 공공도서관 사서가 방문해 커다란 낙하산 놀이감을 가지고 우리 반 아이들 17명 모두를 한꺼번에 웃게 했던 날, 평소엔 좀처럼 모둠활동에 끼는 일이 없는 한 아이가 누구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걸 보고 함께 웃었다. 드디어 첫 발화를 하는 발달장애 아이를 보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도 1주일에 한번씩 아이를 방문하는 언어치료사 덕분이었다.

근처 대학 치위생학과 학생들이 방문해 아이들을 데리고 양치질 교육을 하던 날엔 커다란 치아 모형을 들고 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보며 큭큭 웃었다. 동네 소방서에서, 경찰서에서 사람들이 나와 아이들에게 911에 전화하는 법이며 불 났을 때의 행동요령을 몸소 보여주는 걸 보면서는 '이런 게 진짜 교육이지,' 하는 거창한 생각도 해봤다.

작년엔 학부모로 있던 내가 올해는 정식 채용이 되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잘 됐다! 네 아이는 유치원 잘 다니니?"하고 물어봐 준 할머니 자원활동가는 반가워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기도 했다. 교실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내 아이를 함께 돌보아 준 사람들인 셈이다.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부모들도 한 학기에 한 번쯤은 반차 내고 달려와 아이들과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공간,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의 기관 보육 환경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그래서다.  

좀 더 인간적인 보육 환경을 만들 순 없을까

그러나 이렇게 해피엔딩으로만 얘기할 수 없는게 보육현장의 안타까운 실상이다. 특별히 공동체성을 강조해 운영하고 있는 헤드스타트 기관에서도 실제로 그 공동체성을 제대로 살려 운영하자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아이들을 위해 시간과 자원을 기꺼이 나누어 줄 사람들을 찾고, 방문 일정을 조율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데다, 그 모든 일이 결국 현장 교사들의 몫일 때가 많아 교사들의 업무가 가중되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니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보조교사 인력으로서 바라본 현장은 나의 생각, 나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부모일 때는 그저 내게 하루 대여섯 시간 쉼을 주는 것에 고마웠고, 교실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게 좋아보이기만 했다. 그런데 교사로서는 매일 매일 그저 '미션 클리어' 심정으로 출퇴근을 하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어떻게 해도 교사의 관심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생기는 현실 탓에 자책하게 되는 날이 많았다.

동료 교사들 역시 정서적, 정신적으로 금방 소진되었다. 돌봄, 교육, 식사지도, 낮잠지도, 분기별 발달 평가, 교사 대상 월간 교육, 그리고 각종 서류작업에 치이는 교사들은 "시급 12불 주면서 이걸 우리더러 다 하라는게 말이 되냐"고 성토했고, 지친 교사들은 한 달에도 몇 명씩 떠나갔다.

그리고 교사들 역시 대부분 자녀를 둔 여성들이었기에, 다른 아이들 돌보느라 지쳐 집에 돌아가면 내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 사람도 많았다. 동네 사랑방도 좋지만, 교사들에게 좀 더 인간적인 보육환경 역시 필요한데, 그건 어떻게 해야 만들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선 그에 대한 고민을 풀어보려고 한다.

태그:#기관보육, #어린이집 , #육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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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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