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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기업은 가능한가?

홀푸드(Whole Foods)는 아마존 인수로 유명해진 식료품점 체인이다. 일반 식료품점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친환경 제품이라는 프리미엄, 그리고 고급진 매장 레이아웃 등으로 인해 팬층이 두텁다. 과연 홀푸드는 친환경 식료품점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면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니콜 애쇼프의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을 통해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홀푸드 CEO 존 매키는 간단하게 말해 윤리 경영을 통해 '더 나은' 자본주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는 현재 자본주의가 처한 문제가 정부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핵심이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다고 믿는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그는 국가의 개입으로 인해 진정한 자본주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진정한 자본주의는 지구를 해치지 않으면서 혁신과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런가?

누가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가
 
홀푸드 마켓
 홀푸드 마켓
ⓒ Whole Foods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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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푸드의 성공에 가장 기여한 것은 소비자다. 존 매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1981년 텍사스 오스틴에 있던 홀푸드 제1호점이 홍수로 물에 잠기자, 수십 명의 고객들이 양동이와 대걸레를 들고 도와주러 왔다고 한다. 그들은 홀푸드가 제공하는 선택을 사랑했던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대두 역시 홀푸드를 돕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소수 정예를 지향한다. 친환경 고급 식재료를 판매하는 홀푸드에게는 순풍이 부는 격이다.
사회학자 호세 존스턴은 소비의 정치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대단히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로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은 성공 가능하면서도 동시에 편리한 전략으로 비친다. 특히 사회운동을 조직하는 일이나 노동조합주의의 부담스러운 요구에 비하면 그렇다." (86쪽)

그러나 존 매키가 주장하는 '깨어 있는 자본주의'의 핵심은 소비자가 아니라 자본가다. 현재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여러 가지 문제는, 말하자면 성장통이다. 홀푸드와 같이 혁신적인 기업에 의해 자본주의는 다음 단계인 '깨어 있는' 자본주의로 이행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환경파괴적이고 인권탄압적인 기업은 도태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그저 내 이기심만 충족하면 된다. 모두가 그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 질서는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에 의해 저절로 창조된다. 존 매키의 이야기는 21세기에 와서 다시금 '보이지 않는 손'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봐도 시장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시장실패라는 말이 왜 등장했을까? 자연 상태가 옳은 것이라면, 지구 역사상 몇 차례나 나타났던 생물 절멸 사태는 어떻게 봐야할까? 생태계 전체의 보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 해도, 절멸당한 당사자 역시 그런 설명에 납득할까?

올 여름 기상이변 수준의 폭염은 인간을 몰아내려는 지구의 안간힘일 수도 있어 보인다. 인류를 멸종시키고 지구가 살아남는다면, 그 균형력을 인간이 찬양할 수 있을까? 존 매키의 오만함은 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에서 자기 자신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그런데 과연 홀푸드는 자유롭게 해방된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할 수 있을까? 인권과 환경을 생각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로 환호성을 불러 모았던 많은 기업이 무한 경쟁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홀푸드가 이윤에 앞서 다른 요소들, 예컨대 환경과 건강을 우선시하면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 한가지 지적할 점은, 홀푸드의 반인권적 행태다. 홀푸드는 환경이라는 약자를 배려하는 기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조와 관련해서는 분명히 그렇지 않다. 홀푸드의 2013년 6대 전략목표 중 하나는 100% 무노조 경영을 지키는 것이었다. 존 매키는 노조를 포진에 비유했다.
"노조는 포진에 걸리는 것과 같다. 당신을 죽이지는 않지만 불쾌하고 불편하다." (108쪽)

이제 니콜 애쇼프의 결론을 들어보자.
깨어 있는 자본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매력적이지만, 이윤을 위한 생산이라는 시스템과 함께 대두된 환경 파괴와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이 되지는 못한다. 자본주의에서 '강제적인 경쟁의 법칙'은 피할 수 없으며, 이는 깨어 있는 경영 철학은 단명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윤을 위한 시스템에서는 지속 가능한 생산이라 하더라도 지구의 자원을 소비하고 파괴한다는 점이다. (110쪽)

저자의 결론은 존 매키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선택을 제공하였기에 홀푸드는 성공했다. 하지만 무개입의 시장 경제에서 이윤이 아닌 다른 가치를 우선하는 기업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윤리적 소비가 지속적으로 가능하려면, 그것은 기업이 아닌 사회가 제공해야 한다.
어떤 종류의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는 그 사회가 결정해야 하며, 이 결정은 민주적인 구조와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111쪽)

윤리적 소비는 마케팅에 불과한가

이제 내가 느낀 점을 이야기하겠다.

윤리적 소비가 시장에서 성공하는 현상은, 사람들의 선호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환경을 보호하고 다른 이들을 윤리적으로 대하고 싶어한다. 단지, 그렇게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우리가 참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 살 때 홀푸드 매장을 참 좋아하고 애용했다. 하지만 우리집 먹거리를 모두 홀푸드에서 해결하기에는 홀푸드는 너무 비쌌다. 일반 슈퍼에 비해 20~30% 비싼 케이크나 잼은 홀푸드에서 사기에 부담되지 않았지만, 동네 과일가게에 비해 2~3배나 비싼 홀푸드 사과는 부담스러웠다.

정기적으로 부담되지 않는 금액을 기부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피터 싱어가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마시지 않아도 생명에 지장 없는 커피를 소비하는 대신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에게 기부해야 한다는 말은 부담스럽다.

요점은 이렇다. 윤리적 소비는 선택이다. 조금 비싸더라도, 기분이 더 좋기 때문에 몇 푼을 더 낼 용의가 있기에 윤리적 소비가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용으로 설명 가능하다. 유기농 채소의 가격이 일반 채소보다 높은 것은 환경, 건강, 또는 지역경제에 대한 고려라는 가치에 내가 추가적인 금전을 소비할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 소비에 동반되는 가격 프리미엄이 추가적 효용보다 커지는 순간, 윤리적 소비의 가능성은 급전직하한다.

홀푸드는 그저 그런 소비자들의 선호를 시의적절하게 이용하는 기업일 뿐이다. CEO 존 매키가 신자유주의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완전 무개입 시장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홀푸드에 대해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양자오의 <자본론을 읽다>를 읽었다.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에 오히려 예속되는 상황을 마르크스는 소외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인간은 돈이라는 전지전능해 보이는 존재의 노예가 된다. 자본가는 자신의 뜻에 따라 자본을 불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본가는 자본이 자기자신을 증식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 자본가가, 자본주의를 더 윤리적으로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것도 자사 사이트에 들어가 소비자인 척 댓글을 조작하던 홀푸드 CEO 존 맥키가? 재미있는 세상이다.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 - 21세기 슈퍼엘리트 스토리텔러 신화 비판

니콜 애쇼프 지음, 황성원 옮김, 펜타그램(2017)


태그:#착한 기업, #기업, #자본주의, #윤리적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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