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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 있는 '에로스서각박물관'의 1전시관. 에로스박물관이라고 해서 '성적인 작품'만 전시됐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 있는 "에로스서각박물관"의 1전시관. 에로스박물관이라고 해서 "성적인 작품"만 전시됐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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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지난 1일 오전 10시가 갓 넘었을 뿐인데 정산 모니터엔 현금과 카드 결제를 합해 약 80만 원이 입장료 수익으로 찍혀있다. 임시로 만든 주차장엔 관광버스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매표소 직원은 "65세 이상 어르신은 무료 입장인데도 350만 원 입장 수익을 올린 날도 있다"라며 "3000원짜리 티켓으로, 하루에 350만 원 올리는 곳은 우리 박물관 밖에 없을 것"이란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박물관이 아니다. 전남 신안군 암태도, 섬마을에 있는 박물관이다. '에로스 서각 박물관', 이름만 들으면 선뜻 발걸음 들여놓기가 쑥스럽다, 실제로 다소 부끄러운 표정으로 박물관에 첫발을 들여놓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1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을 그렇고 그런 '성(性)박물관'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던 정배균 관장의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님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에로스 서각 박물관 1전시관은 서각 작가이자 공예가이며 화가인 정 관장의 서각 작품과 목공예 작품, 부조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른바 '야한 작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정 관장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역사상 유일하게 '전통 목공예 디자인 부분'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다. 31회 미술대전에서 그가 이 상을 수상하기 전엔 입선과 특선에 오른 이들만 있었다. 그가 이 상을 받고 2년 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이 시상 분야는 없어졌다. 그만큼 어려워 이를 전업으로 하는 작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하필이면 섬에, 다른 이름도 아닌 '에로스'를 간판으로 단 박물관을 열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서각 작품 앞에 선 정배균 관장. 3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전통 목공예 디자인 부분 우수상을 수상한 그는 이 분야 명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서각 작품 앞에 선 정배균 관장. 3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전통 목공예 디자인 부분 우수상을 수상한 그는 이 분야 명인이기도 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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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로스 박물관이라고 해서 성적인 작품만 있는 곳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에로스 박물관이라고 해서 성적인 작품만 있는 곳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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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박우량 신안군수가 저를 찾아와서 '몇 년 후면 천사(1004)대교가 개통하는데 관광객들이 우리 신안의 섬을 찾아와도 보여줄 게 없다'고 박물관 건립을 제안했습니다. 관광객을 최대한 빨리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에로스'를 주제로 잡았죠."

지지부진하던 암태도 에로스 서각박물관 건립 작업은 2018년 6월 박우량 신안군수가 다시 취임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2018년 11월, 고대하던 개관식을 한 것이다. 에로스 서각박물관은 온전히 정 관장의 작품으로만 채워졌다. 정 관장의 900여 작품가운데 200점이 매일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전시관에선 정 관장의 작업세계를 두루 살펴볼 수 있고, 에로스 서각 작품은 2전시관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

정 관장이 "많이 오면 70명이고, 관람객 한 명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고 할 만큼 섬마을 박물관의 첫걸음은 수월치 않았다. 하지만 4월 4일 신안군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1004)대교'가 개통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천사대교를 타고 하루 평균 약 8천여 명이 섬마을 박물관을 찾았다. 주말엔 날마다 약 1만7천 명이 다녀갔다. 천사대교가 개통한 지 아직 한 달이 안 되었는데 약 20만 명이 암태도에 있는 에로스 서각 박물관을 다녀갔다. 시쳇말로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정 관장이 "여기를 보고 가야 진짜 에로스 서각 박물관을 보고 가는 것"이라며 박물관 왼편에 있는 '용관'으로 이끌었다. 이곳은 정 관장의 작업공간이자 또 다른 전시관이다. 족히 20미터에 달하는 미국산 소나무가 정 관장의 손길을 따라 용트림을 하고 있다.
 
 정 관장이 "이 곳을 보고 가야 진짜 에로스서각박물관을 보는 것"이라며 이끈 곳은 용관. 정 관장의 작업실이자 전시공간이며 관람객들과의 격의없는 대화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정 관장이 "이 곳을 보고 가야 진짜 에로스서각박물관을 보는 것"이라며 이끈 곳은 용관. 정 관장의 작업실이자 전시공간이며 관람객들과의 격의없는 대화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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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저의 모습 자체가 퍼포먼스죠. 관람객들이 '이곳은 어떤 곳이지?'하고 들어섰다가 깜짝 놀랍니다. 작품 재료가 되는 나무 크기에 일단 놀라고, 완성된 작품을 보고 놀라고.... 그러고 보니 이곳은 오마이뉴스와 콘셉트가 맞는 곳이네요. 오마이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사람들이 깜짝 놀랐듯이 이곳을 보고도 '오 마이 갓(oh my god)'하며 놀라니까요, 하하."

정 관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내내 서너 명씩 어우러진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와아~"하고 탄성부터 질렀다. 정 관장의 설명을 듣고는 또 하나같이 "고맙다"며 건승을 기원했다.

목포에서 아들 정록(26)씨와 함께 온 김선명(59)씨는 "제주도에 있는 성 박물관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문화재 같다"며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예술세계인 만큼 잘 전시해서 많은 분들이 이 새로운 기분을 느끼시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부인과 딸의 손을 잡고 온 임효정(58)씨는 "경제적으로 얘기하면 작가님은, 기존에 있는 시장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신 것"이라며 "이 외딴 섬에 예술박물관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그만큼의 누적된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우리 사회가 소중하게 평가해 드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사대교 개통 이후 정 관장은 하루에 1만 명 가까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육체의 피로는 몇 배로 늘어 어제는 병원에 가 수액을 맞고 왔다고. 그럼에도 정 관장은 더 많은 분들이 에로스서각박물관을, 신안의 섬을 찾아주기를 호소했다.

"보여줄 게 에로스밖에 없어서 에로스서각박물관을 연 게 아닙니다. 더 많은 분들에게 섬마을을, 서각을 비롯한 예술세계를 보여드리기 위해 '에로스'라는 타이틀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무작정 에로스만 팔았다면 이렇게 많은 분들이 가족들과 함께 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은 가족들과 함께, 학생들과 함께 올 수 있는 곳입니다. 천사대교가 개통됐지만 섬에서 여러 가지가 불편할 것입니다. 앞으로 차차 개선될 것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오셔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가셨으면 합니다.
 
 정 관장의 작업실이자 전시공간인 '용관'에서 관람객들과 즉석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는 정배균 관장.
 정 관장의 작업실이자 전시공간인 "용관"에서 관람객들과 즉석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는 정배균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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