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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호가 최고다. 봐라이. 성호, 성냥개비가 합포, 합바지에 불을 붙이모 금방 타뿐다. 어, 무학? 무학은 무시 꼬랑대이니까 꼴등이지... 성호가 최고, 맞제?"

1970년 여름, 마산 추산동 어느 골목. 초등학교 코흘리개 아이들이 둘러앉아 심각하게 설전 중이다.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전학간 '꼬치' 친구들이 오랜만에 왔는데, 아직도 성호 다니는 아이가 자기네 구역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자기 학교가 최고라는 이유들이 정겹다. 합포아이와 무학아이가 쓰린 표정으로 머리를 숙인다. 하지만 이내 똘망한 무학아이가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

"야, 다마(구슬)치기는 무학이 최고다. 봐라. 내 왕다마하고 쇠다마 갖고 있다 아이가."

손톱 끝 새까만 아이 손바닥에 얹힌 왕구슬과 쇠구슬이 빛난다. 어제 놀러간 신포동 철고물상 친구집에서 구했단다. 부러움 가득한 두 아이 표정도 잠시, 합포아이가 다시 반전 카드를 내민다.

"야, 고마 아이스케키나 묵자. 내가 사께."
"진짜가, 맞나? 힝...니가 최고다. 합포!"
"아이스 하 드어~~~ 아이스 케끼 있으어요~~~!"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성호 6학년 형아 아이스케키통이 열린다. 아이들은 통단팥 가득든 식감 최고의 아이스하드를 깨문다. 그 무렵 추산동에 몽고하드 공장이 있었다.

"야~, 맛있다. 쥑인다."

앞니 빠진 개우지들이 차가운 단팥 아이스 하드를 혀로 녹여 먹으며 헤헤거린다. 골목은 개구쟁이들 웃음소리, 욕이 감탄사처럼 들어간 찬사로 가득찬다.

"오빠야, 나는 나느은 엉? 나도 하드 묵고 싶다아아아... 이히잉 아앙앙..."

늦게 등장한 여자아이는 자신을 제외하고 벌어진 잔치에 울음으로 분노를 표한다. 그 맛있는 몽고하드를 동네오빠들만 먹다니! 말도 안된다. 울음소리에 주변 가게 어른들이 달려 나오신다.

"이노무 자슥덜, 동생은 안챙기고..."

그때 그 시절, '학교'를 기억하십니까

무려 50년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치 조금 전 일처럼 또렷하게 들린다. 그 시절, 학교와 주변 동네골목은 아이들의 놀이동산, 놀이터였다.

요즘 초등학교를 자주 갈일이 생겼다. 콩닥이는 가슴으로 몇십 년만에 간 학교는 마치 모형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등굣길 멀기만 하던 교문까지의 오르막길은 1분여로 닿아 버린다. 함성으로 가득 찼던 넓은 운동장은 아담한 마당같아 보인다. 망연자실 잠시 서 있던 운동장을 벗어나 강당 주변과 교실 뒤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스멀스멀 갖가지 추억이 밀려온다.

학년이 바뀌는 3월이면 방과후 늘 교실 뒤편이 소란스러웠다. 남자아이들 사이에 반에서 위계질서를 재편하는 싸움이 곧잘 벌어졌기 때문이다. 큰 싸움은 아니어도 항상 다툼이 있었고, 대부분 최종 2명은 절차상 아이들 보는 데서 싸움을 했는데, 상대방의 주먹질로 코피가 나거나 표나게 확실히 지면, 이긴 아이에게 1년 내내 복종하며 지내는 분위기였다.

여자아이들은 싸우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패로 몰려 다니는 아이들은 늘 대장이랄지, 대표되는 아이들이 있었고, 복종받는 대신 리더 역할을 나름대로 해내야 했다. 다른 반 아이에게 두들겨 맞거나 하면 싸움대장으로 사과받아줘야 했고, 여학생 대장은 간식이나 놀 공간을 해결했다. 반장이나 회장은 그런 아이들과 관계가 좋아야 반 분위기가 잘 돌아갔다.

위계질서도 변한다.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 위계질서를 다시 잡아야 할 필요가 있을 무렵, 학교는 자연스럽게 겨룰 수 있는 마당을 깔았다. 바로 가을 운동회다. 올림픽이 인류의 원초적인 전투력을 소진시키는 자리라고 했던가. 학교 전체, 학년별, 반별, 개인별로 놀이와 운동으로 한바탕 겨룬다.

운동회 두어달 전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아이들은 매스게임 연습부터 시작해서 응원연습, 운동종목 연습등으로 수업시간외에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심지어 참가할 종목이 있는 학부모들은 따로 달리기 연습을 하거나 미용실에서 마사지를 받는 엄마도 있었다. 학교 운동회가 마을축제였다.

해 떨어져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은 진작에 허기가 발동한다. 간식으로 학부모 대표들이 가져다 주는 제과점 빵들은 어쩌다 먹는 것이고 양에도 차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 곳곳에 있는 먹을거리를 찾아 코묻은 돈으로 입을 달래고 배를 두드렸다.

술빵에 핫도그, 어묵과 붕어빵, 떡볶이. 튀김과 달고나, 쫀득이 등등... 주머니 사정에 따라 친구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입 얻어 먹으려고 침 흘리다가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나면 공짜로도 먹을 수 있었다. 장사하는 사장님들은 학부모도 많았고, 본교 출신 선배들도 있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동네 전체가 학교가 돼 아이들을 돌봤던 것 같다. '공동체'란 용어도 낯설던 시절이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린 날 초등학교는 그랬다.

운동회날이 되면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와 동네 어르신들도 함께했다. 생업으로 학교에 오지 못하는 어른들도 마음은 하루종일 학교 운동장에 가 있었다. 온 동네가 학교 운동회로 술렁였다. 확성기와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오는 행진곡, 선생님의 호령, 출발 총소리, 아이들의 함성을 귀로 들으며 일했다.

운동장에는 아예 동네 어르신들과 학부모를 위해 마련해 놓은 자리외에도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은 이것저것 먹거리부터 풀었다. 김밥과 통닭, 콜라에 막걸리까지 있었다. 그 주변으로 동네마다 한명이상은 있었던 머리에 꽃 꽂은 옆집 언니나 사시사철 코 흘리며 때려도 웃기만 하는 골목 끝집 오빠도 잔칫날처럼 뛰어 다녔다.

사라진 '초등학교'

그런 기억 속 초등학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학교와 지역사회는 작아지고, 원도심에 있는 학교들이 이미 폐교됐거나 폐교위기에 몰렸다. 학교와 지역 경제의 기반은 약화되고 다시 도심공동화의 원인으로 작용해서 마을공동체마저 대부분 사라졌다.

2019 창원시 문화가 있는 날 지자체 자유기획프로그램 '학교사용설명서'는 작은 소망으로 기획됐다. 수많은 초등학교들 중 개교 100년을 훌쩍 넘긴 구 창원, 마산, 진해의 학교가 자신들의 추억과 마을공동체를 챙기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이야기다.

지난 시절, 지역사회와 마을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왔던 동네 초등학교는 학부모와 교사들, 동네주민들이 연대하고 소통하는 공간이었고 마을의 삶과 문화, 역사가 담긴 곳이었다. '학교사용설명서'는 그런 학교를 거점으로 마을에 대한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 눈시울 붉히는 이야기, 모두가 기억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모아 '문화가 있는 날'을 통해 다시 나누고 마을문화공동체의 이야기를 새롭게 펼쳐 볼 기회를 마련한다.

개교 100년 이상된 성호초, 창원초, 경화초 등을 중심으로 학생과 학부모, 동네주민, 친구등 세대를 뛰어넘는 선후배가 함께 만나서 학교를 새로운 문화공동체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문화운동회'를 연다. 낙후된 원도심과 인구감소 지역을 생활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해석하고 지역안팎의 사람과 각종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만든다.

성호초, 창원초, 경화초, 세 학교 이야기, '학교사용설명서'는 다섯 마당으로 꾸며진다. 이바구로 추억을 불러내는 '톡톡 공감 콘서트'와 지난 시절 골목을 누비며 놀던 놀이들의 교감, '다시 노는 고(古)고(go)한 미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 이야기, '추억을 팝니다', 자랑스러운 선후배를 제대로 확인하고 배우는 '우리 학교 사람책 라이브러리', 그리고 기억 속 추억을 잊지 않게 기록하는 'OO마을 메모리즈'로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참여와 추억을 담는 판타지가 펼쳐진다. 캠핑요리축제와 6.25 떡복이 콘테스트도 열린다.

2019 창원시 문화가 있는 날 지자체 자유기획 프로그램 '학교사용설명서'는 마을과 학교, 동창들이 나누는 '문화운동회'로 학교 쓰임새를 다시 알게 할 것이다.

"너거도 온나, 다 온나"

세상이 견딜 수 없게 삭막해서 갈 곳 몰라 할 때가 있다. 체면 차리지 않아도 된다면 소리 내서 펑펑 울고 싶은 심정일 때도 많다. 이제 엄마의 치맛자락으로 뛰어 들 수는 없지만, 이미 존재하는 공간, 학교로, 친구와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등 두드리고 웃고 울 수 있다.

함께 가진 추억을 말하고 새로운 해석으로 삶을 재설계할 수 있다. 삭막한 세상을 그나마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깨닫는다면 황량한 마을을 다시 윤기가 돌고 살기 괜찮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

도시재생 뉴딜을 꼭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해야 하나. 추억은 끌어안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추억은 현재의 삶을 행복한 시절로 만드는 에너지이고 당연히 미래를 향한다. 그래서 추억의 시제는 현재다.

"야아아, 다 모이라. 너거 오데 있노? 성호 성냥개비덜아. 무학 무시 꼬랑대이, 합포 합바지덜, 너거도 온나. 다 온나."

2019 창원시 문화가 있는 날 지자체 자유기획 프로그램, '숨쉬는 공간의 감각들, 추억을 기록하다:마을,공동체,사람들 - 학교사용설명서'는 4월 28일 오후 성호초등학교 주변 임항선 그린웨이에서 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진행된다. 5월 31일에는 창원초등학교·의창동 일원에서, 6월 30일엔 성호초등학교·성호동 일원에서, 9월 29일에는 경화초등학교·경화동 일원에서, 11월 3일에는 성호초등학교·성호동 일원에서 진행된다. 
 
(사) 지역문화공동체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진행하는 '숨쉬는 공간의 감각들, 추억을 기록하다:마을,공동체,사람들 - 학교사용설명서' 홍보물.
 (사) 지역문화공동체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진행하는 "숨쉬는 공간의 감각들, 추억을 기록하다:마을,공동체,사람들 - 학교사용설명서" 홍보물.
ⓒ (사) 지역문화공동체 경남정보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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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개교 100년 , #학교사용설명서, #문화운동회 , # 문화가 있는 날, #도시재생 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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