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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 2019)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 2019)
ⓒ 인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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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다. 원고를 넘긴 게 지난해 11월 중순이니 432쪽짜리 단행본 1권이 나오는 데 꼬박 다섯 달이 걸렸다. 물론 난생처음 펴낸 책이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를 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끼적인 지 10년이 넘어서다. 책이 나왔다는 걸 실감한 건,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이 가능해지면서다. 

젊은 시절 한때, 문학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교직에 들어 서른을 넘기면서 '문학'에 관심을 끊은 이후 나는 한번도 글쓰기를 고민하거나 쓰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살았다. 스무 해쯤 지나, 오래 몸담은 교원단체 활동에서 놓여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꾸리게 되면서 나는 한두 편씩 끄적인 글로 '블로그'에 입문했다.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글쓰기 시작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모두 1700편이 넘는 글을 쓰면서 나는 초로의 시기를 보냈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의 시간을 만끽했지만, 그 시기가 온전히 행복했다고만 할 수는 없다. 때로 마음 밑바닥을 할퀴는 자의식과 설명할 수 없는 회의로 남몰래 앓기도 했으니 말이다. 

완결된 글이 목록이 쌓여가면서 이웃도 늘고, 조회 수도 수천, 수만으로 늘었다. 가끔 주변으로부터 책은 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지만, 나는 단칼에 그 제안을 잘라버리곤 했다. 별 영양가 없는 글로 공연히 이웃을 성가시게 할 일이 어디 있겠냐는 게 내 쾌도난마의 논리였다. 

퇴직을 전후하여 한두 권씩 저서를 준비하는 이들이 교직에도 적지 않았지만, 존재해야 할 이유를 갖춘 책은 드물었다. 자기 이력에 한 줄을 더하는 이른바 '스펙'으로 내는 책은 일종의 '공해'로 생각할 만큼 나는 아마추어 문인의 출판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책을 내라는 친구의 권유에 "자네라면 내 글을 돈 주고 살 것 같은가?"하고 물어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정 내 글이 읽고 싶으면 내 블로그에 와서 읽으면 되잖는가"하고 눙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단호한 부정은 책을 내면 어떨까 하고 고개를 드는 자신의 유혹과 욕망을 숨기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개인이 책을 내는 게 어렵잖은 시대다. 그 구체적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이런저런 방식으로 출판하는 이들이 주변에도 적지 않다. 의뢰할 출판사나 비용이 문제가 되면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 개인 출판을 지원하는 곳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자기 글이 인쇄되어 나오는 것을 '활자화'라 하여 특별한 일로 보기도 했으나, 컴퓨터와 문서편집기의 보급으로 탁상출판이 가능해진 지금, 그런 촌스러운 표현을 더는 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저마다 책 펴내기에 나서게 된 것은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힘입은 셈이다. 

내가 구독하는 월간 <공무원연금>에 두 쪽에 걸쳐 "독자님의 출간 소식을 전합니다"라는 꼭지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수십 년간 일하다 은퇴하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가, 시집과 소설집이 더러 있긴 해도 출간되는 책은 수필집이 압도적이다. 더러는 서점에서 판매하는 상품도 있다. 

그냥 한번 훑어보고 지나가고 말지만, 어느 날부턴가 나는 잠깐 그들이 책을 내기까지의 주저와 고민을 헤아리게 되었다. 기특하게도, 나는 어느덧 평생 일하다 퇴직하여 보내는 만년에, 자기 이름이 박힌 책 한 권을 내는 게 그리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내가 책을 내는 일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은 시집 몇 권을 낸 선배 교사가 퇴직 후 그림 공부를 시작하더니 스케치에 글을 더한 책을 냈을 때다. 남보다 더 오래 교육운동에 헌신해 온 선배는 이력 한 줄을 더하려고 책을 낸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한 시기를 아퀴짓고자 함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으면서였다. 

주변에 부지런히 판 발품을 밑천으로 꾸준히 책을 펴내는 후배들을 바라보면서 책 한 권쯤 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이태 전인 2017년 가을이다. 글쎄, 출판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이웃들에게 자문했더니 "좋다, 이제 당신도 책 한 권쯤은 낼 때도 되었다"고 호응해 주었다. 

얼마간 고무된 나는 그간 쓴 글을 훑어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부지런한 친구들이 발품을 팔아 쓴 글과 달리 나는 골방에서 재미없고 진부한 삶의 편린이나 붙잡고 중언부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맞아, 책은 발품 팔아서 제대로 쓰는 거야. 나는 내 안에 자라고 있던 욕망을 주저앉히면서 책을 내려는 생각을 깨끗이 접었다.

블로그 연재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한 출판사 편집장으로부터 출판 제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 며칠 후였다. 이제 겨우 마음을 달래는 참인데, 하고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그의 제의는 '문학과 역사'를 잇는 기획이었고, 나는 그간 쓴 관련 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둘을 잇는 게 자칫하면 억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당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로 방향은 튼 것은 이듬해(2018) 6월이었다. 나는 11월이 되어서야 기왕에 써놓은 글에다 같은 분량만큼을 더해서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지만, 넘기기 전에 얼마간 고민을 했다.

 
 <친일문학론>과 <친일인명사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썼지만 나도 적잖은 품을 들였다. <친일문학론>이 형태가 허물어질 만큼, <친일인명사전>의 책등이 떨어져 나갈 만큼 몸에 붙이고 산 1년여였다.
 <친일문학론>과 <친일인명사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썼지만 나도 적잖은 품을 들였다. <친일문학론>이 형태가 허물어질 만큼, <친일인명사전>의 책등이 떨어져 나갈 만큼 몸에 붙이고 산 1년여였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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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연구자도 아니어서 나는 친일문인들의 부역 행위를 전적으로 고 임종국(1929~1989) 선생의 역작 <친일문학론>(이건제 교주, 민족문제연구소, 2013)과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의 성과를 바탕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일종의 노략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민족문제연구소에 자문했는데, 방학진 기획실장은 이미 축적된 연구성과를 '대중화'하는 과정이니 문제가 없다고 답해 주었다. 나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쓰인 도판을 그대로 쓰는 등 실제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선생께 추천사를 청해 받았다. 임헌영 선생은 1970년대부터 진보의 길을 걸어오신 문인이지만 나는 그분과 일면식도 없었다. 그러나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짧고 간명한 말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제압하는 선생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 선생으로부터 추천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 이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친일문학론>이나 <친일인명사전>의 지향하는 바는 같다. 해방되어서도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은 오욕의 역사를 우리는 청산하지 못했다. 친일부역의 길을 갔던 문인들 또한 단죄하지 못했다. <친일문학론>이나 <친일인명사전>은 속절없이 흘려보낸 세월 탓에 '단죄' 대신 선택된 역사적 성찰이다. 

내가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을 통해 이르고자 하는 바도 다르지 않다. 30년 넘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느낀 갈증으로 시작한 작업은 문학 교사로서 친일문인과 친일문학을 바라보고 그 행간의 의미를 푼 것이었다. 

그러나 해방 뒤에도 우리 사회의 주류 기득권의 자리를 보전한 이들의 삶은 우리가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우쳐 준다. 그들이 선동으로 동포 젊은이를 사지로 떠밀고, '천황폐하의 적자'로서 '황은(皇恩)'에 감읍하는 동안 육사와 동주는 각각 일제의 감옥에서 숨졌다. 

이처럼 민족 시인과 친일문인의 삶은 마치 별개의 경로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시대에 양 극단에서 엇갈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욕의 역사는 잘 기억되지 않는다. 해방 70년을 넘기면서 친일의 역사는 잊혔든, 망각을 강요받았든 암묵적 금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억 투쟁, 혹은 역사적 성찰을 위하여

그 완강한 기득권의 성채에 맞서는 역사적 성찰은 오직 '기억 투쟁'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작가 밀란 쿤데라가 갈파한 대로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지배 권력은 자신이 원치 않는 역사를 대중이 망각하기를 원한다. 그에 맞선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 필요한 이유다. 
 
 책 뒤표지. 책은 친일문학사에 대한 기억 투쟁을 환기하면서 마무리된다.
 책 뒤표지. 책은 친일문학사에 대한 기억 투쟁을 환기하면서 마무리된다.
ⓒ 인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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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한 권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룰 수는 물론 없다. 첫 저서에 너무 원대한 포부가 아니냐고 비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책이 소환하는 잊힌 기억을 통하여 묻힌 역사적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다.

친일문인의 문학과 생애 전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 그들이 민족을 등지고 식민지 지배에 협력한 아픈 기억을 왜곡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원할 뿐이다.

책이 나온 지 나흘째, 이제 조금씩 내가 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웃들은 기분이 정말 좋지 않으냐고 묻지만, 나는 좀 얼떨떨할 뿐이다. 교정이 끝날 때까지 하도 여러 번 들여다봐 질렸는지 새삼 책을 들추어 내용을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20년 경력의 편집자는 정말 집요하게 읽고 또 읽어 가뜩이나 허술한 글의 허접한 부분을 핀셋으로 뽑듯 골라서 들이밀었다.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이 편집자의 존재였다. 나는 편집자란 고작 저자가 쓴 글의 오탈자나 챙기고 문맥이나 바로잡는 일만 하는 줄 알았다. 초교(初校)한 원고 뭉치를 택배로 받아 펼치자 그이가 쓴 빨간 글씨가 쪽마다 가득했다. 이건 또 뭐야? 처음에 나는 어디에 냅다 받힌 기분이었다.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내 글이 편집자가 환칠을 해 놓을 만큼 허접했단 말인가 싶었던 거다. 그러나 그의 교정을 따라가면서 나는 천천히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대체로 옳았다. 그는 친절하게 모자란 데와 넘치는 부분을 지적했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조언을 따랐다.

애당초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기대어 쓰인 이 책이 최소한의 격조를 갖추고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편집자의 제의에 내가 충실하게 따른 결과일 따름이다. 교료(校了) 이후 내가 그의 고교생 아들과 함께 드시라고 카카오톡 선물로 피자 한 판을 쏜 이유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이 책이 독자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누구는 '대박'을 말하지만, 책의 판매란 단순히 책의 완성도보다는 시운에 달린 문제다. 몇 사람이라도 더 읽어서 내 바람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과욕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꽤 힘들게 여기까지 온 자신을 대견하다고 여기는 '시건방'을 굳이 거두지는 않으려 한다. 누구에겐 괜찮은 정보일 수 있고, 또 누구에게는 그렇고 그런 읽을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 책에 담긴 것은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온 내 삶의 소박한 자취이기 때문이다.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장호철 지음, 인문서원(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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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