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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만 19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입니다. 태어날 때는 매우 가냘프더니, 엄마가 너무 많이 먹여서인지 우량아가 되어버린 아들입니다. 까칠하고 예민하면서도 소심한 신경질쟁이 엄마와 고집쟁이에 힘까지 센 아기는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다투고 사랑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의 반복 속에서 성장해 갑니다. 아이를 키우는, 혹은 앞으로 키울, 또 이미 키워본 숱한 엄마 아빠들과 함께 나누고자 육아일기를 연재합니다. -기자말

만 18개월이 갓 지났을 무렵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입학시켰습니다. 겨우내 집안에 틀어박혀 지낸 아이가 불쌍해 추위가 누그러들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자주 산책을 나갔지만, 미세먼지와 꽃샘추위에 공격 당해 금세 안으로 들어와야 했습니다.

아이와 집 안팎에서 벌이는 육아전쟁 덕분에 엄마의 체력은 바닥났습니다. 이대로 1년 더, 매일 24시간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기본적인 일은 힘들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점점 성장해가는 아이에게 맞춰 놀아줄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집에서 엄마와 있을 때는 여느 아이들처럼 엄마 껌딱지입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쫓아와 화장실 문을 닫지 못하게 합니다. 설거지를 할 때면 꼭 등 뒤에서 엄마를 끌어 당깁니다. 설거지에 참견하고 싶기도 하고, 엄마랑 놀고 싶기도 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밖에 나가면 또 엄마와 곧잘 떨어져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외할머니가 자주 돌봐주셨고, 교회에도 나가고, 친할아버지댁에도 자주 왕래한 덕분에 낯을 많이 가리지도 않습니다. 또래 아이들이나 누나, 형을 보면 몹시 반가워 합니다. 자신도 함께 놀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 외동이라서 가끔은 외톨이 같은 아이가 무척 안쓰럽습니다.

아이는 몹시 활동적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매우 정적인 사람입니다. 가끔씩 불 같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난 성격이지만, 엄마는 몸을 움직이는 놀이보다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조용히 산책하고, 글을 쓰고, 청소하고, 정리정돈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엄마에게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혼자 있음으로 해서 충전이 되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출산 전의 직업도 주로 책상머리에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대로 아이는 에너지가 넘칩니다. 함께 놀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늘 관심있게 말 걸어주는 수다쟁이 엄마가 필요합니다. 아이는 엄마에게서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배우니까요. 그래서 아직은 이르다 싶었지만, 아이와 선생님들을 믿고,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동네 산에 올라 뛰어다니는 아이.
 동네 산에 올라 뛰어다니는 아이.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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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아이를 세 돌까지는 최대한 엄마가 데리고 돌보며 놀아주고, 어린이집에는 늦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세 돌까지는 아직 어린 아기라서 면역력도 약하고, 또래집단보다는 엄마를 통해서 배우고 엄마와 놀고 이야기하고, 1:1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집이 아무리 좋다 해도 선생님이 아이를 1:1로 돌보아 줄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니까요.

또 아직 기저귀도 못 떼고 의사 표현도 못하는 아이를 주 보호자에게서 떼놓고 남에게 맡기는 일에 걱정과 미안함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갈등했습니다.

그러나 어디 현실과 이상이 늘 일치하나요. 3월은 아직 추워, 미루고 미루다 4월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지요. 내년 봄이 최적기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이랑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육아 스트레스와 집안일에 허우적대느라 아이에게 곧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야단치는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엄마가 바쁘다고 아이에게 TV를 틀어주고 혼자 놀게 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아이는 다행히 새로운 장난감에 흥미를 보였고, 엄마와도 곧잘 떨어졌습니다. 아직은 두 돌도 안 된 아이라 또래와 교감하며 어울려 노는 것은 잘 못하지만, 나름대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어린이집에서의 놀이와 낮잠시간, 식사와 간식시간에도 금방 적응해 가는 듯 했습니다. 엄마랑 떨어져서도 잘 놀고 잘 지내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있느라 하지 못했던 집안 구석구석의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장롱 안 정리, 온갖 짐이 쌓여 창고로 변한 작은 방 정리, 곰팡이 제거제 교체, 창문과 방충문 청소, 현관과 베란다, 신발장 청소, 묵은 옷과 신발, 물건 대처분 등등. 그리고 아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찬 바람을 걱정할 것 없이 집안의 온 문을 다 열어두고 환기해 집안의 열기와 나쁜 공기를 빼내고, 아이가 먹을 음식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가까이 사는 시부모님은 편찮으시고, 멀리 사는 친정어머님은 일을 하시기 때문에 평일에는 제가 아파도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병원에 다녀올 수도 쉴 수도 없었습니다. 이참에 병원에도 다니고, 그간 밀린 온갖 잡무를 몰아서 처리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8개월만에 이런 자유시간이 생기니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직은 영화를 보러 가거나, 놀러가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 시간은 보내지 못했지만, 집안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은행과 관공서, 마트, 병원 등을 혼자서 다녀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한 지 4주밖에 안 됐지만, 그 사이에 아이는 며칠을 제외하고는 항상 어딘가 아프거나 불편했습니다. 등원 이틀만에 감기에 걸려 왔고, 몹시 괴로웠는지 놀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잠도 잘 못 잤습니다. 그저 엄마의 등에 업혀 있거나, 누워 있으려고만 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자다 깨면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토닥토닥 해주어도 소용 없었습니다. 엄마가 업어 주고 10분 이상 지나야만 진정됐습니다. 30분 이상은 업고 있어야 가까스로 다시 잠이 들었고, 그러기를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해야 했습니다.
 
평소에 먹성이 좋아서 뭐든 잘 먹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구토와 설사도 했습니다. 감기와 겹쳐서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고, 감기가 떨어진 후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구토와 설사가 있는 날은 증세가 완전히 진정될 때까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기운 없이 축 쳐져서 누워있기만 할 때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아기가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서 일단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잘 노는지 살펴보기로 했더니, 아이가 누워만 있는다고 걱정하는 선생님의 연락에 저는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를 다시 데려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는 오히려 잘 노는 겁니다. 아마 피곤해서 누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할머니는 "너무 자주 빠져도 안 돼. 웬만하면 꾸준히 보내야지"라고 말씀했지만, 아이의 나이도 많이 어리고,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이가 적응을 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기분과 몸 상태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어떤 날은 집에서 제가 데리고 있고, 또 어떤 날은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놀다 오게 했습니다. 때로는 오전에 등원시켰다가, 도중에 일찍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놀이인지, 휴식인지, 음식인지 잠인지, 친구인지, 엄마인지, 엄마는 매순간 아이를 위해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일주일 쯤 어린이집에서 잘 놀고 잘 자고 잘 먹고 오던 아이는 며칠 전부터 또 누런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감기가 시작됐습니다. 첫 번째 감기가 떨어진지 약 6일밖에 안 지나고, 그 사이에 2~3일은 소화불량으로 고생했는데요.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함께 생활해 감기를 달고 산다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봅니다. 나으면 또 옮아오고, 나으면 또 새롭게 옮아온다고 합니다. 

아이는 코가 막히고 기침이 심했습니다. 코가 막히니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는 괴로움을 짜증과 울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다가 기침을 하느라 잠을 못 자 울기도 합니다. 엄마는 밤낮으로 아이 우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엄마에게 빨리 낫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엄마를 원망하는 듯이 바라보며 울어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의 고통을 바로 해소해주지 못해, 괴롭고 슬픕니다. 아이가 아픈 것이 전부 제가 잘 못 돌본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가 다쳐도, 아이가 아파도 그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다는 생각, 아이의 괴로움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과 무기력함에 대한 자책감이 들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합니다. 엄마들은 아이 키우다 보면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지요.  
 
햇살 따사로운 봄날 오후, 동네 멍멍이와 노는 아이. 이맘때의 아이들은 야외활동을 좋아한다. 날씨 좋은 날에는 야외활동을 많이 해주는 것이 아이의 체력과 건강을 위해서도 더 좋다고 한다.
 햇살 따사로운 봄날 오후, 동네 멍멍이와 노는 아이. 이맘때의 아이들은 야외활동을 좋아한다. 날씨 좋은 날에는 야외활동을 많이 해주는 것이 아이의 체력과 건강을 위해서도 더 좋다고 한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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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이는 주말과 휴일에 외할머니 찬스를 얻었습니다.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어리광 부리고 보채다가도 곧 잠이 듭니다. 그러다 깨면 또 울고, 다시 재우면 또 깨서 울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깊이 잠이 들면 푹 자고 일어나서 웃으며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울어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몇 시간을 신나게 놀다가, 뭔가 화가 나면 심술을 부리고 화풀이를 하기도 합니다. 떼 쓰고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러 종일 외할머니와 엄마가 출동합니다. 주 보호자 중 누군가 한 사람은 종일 쉴 새가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수고하고, 또 그 엄마의 엄마가 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합니다. 저는 오늘도, 아이에게도 미안하고, 제 엄마에게도 미안합니다. 그래도 아이가 잘 이겨내기를, 계절의 여왕인 5월에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웃고 신나게 놀 수 있는 날이 더 많으리라 믿어 봅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조금 빨리 보내기는 했지만, 아이도 엄마도 곧 적응하고, 함께 행복할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태그:#육아, #어린이집 언제 보낼까, #아이가 아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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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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