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김민식 PD가 26일 서울 상암동 CJ E&M 앞에서 진행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드라마 제작 현장 개선 요구 1인 시위에 참여했다.

MBC 김민식 PD가 26일 서울 상암동 CJ E&M 앞에서 진행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드라마 제작 현장 개선 요구 1인 시위에 참여했다. ⓒ 김윤정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오늘 1인 시위 참여가 제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나온 건, 제 스스로에게 '적어도 내가 책임지는 현장만큼은 바꾸겠다' 약속하고 다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지난 2016년, tvN <혼술남녀>에서 일하던 고 이한빛 PD는 열악한 방송제작환경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인 2017년 6월, CJ E&M은 유족에게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했고, 그 유지를 이어 받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아래 한빛센터)가 설립됐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는 당시 재발 방지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가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6일에는 현직 MBC 드라마 PD인 김민식 PD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김 PD는 MBC <이별이 떠났다>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했으며, 2017년 '김장겸은 물러나라' 퍼포먼스로 MBC 총파업의 불을 지핀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날 1인 시위는 김민식 PD가 언론노조의 섭외에 응하면서 진행됐다. 지난 10일부터 CJ E&M 앞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언론노조에 1인 시위 제안서를 보냈고, 언론노조가 김 PD를 참가자로 섭외한 것이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한 이야기이니 현역 드라마 PD가 참여하면 더 의미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현역 드라마 PD이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MBC PD인 그가 CJ E&M 앞에서의 1인 시위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진 1인 시위를 마친 김 PD를 만나 들어봤다. 

"처음 언론노조의 제안을 받았을 때, 힘들 것 같다고 했어요. 저 역시 드라마 PD인데, 혹여 언급되는 드라마에 참여하는 분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특정 드라마를 비난한다기보다, 드라마 제작 관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건 분명히 바뀌어야 하는 거잖아요. 요구 사항도 보면, 뭘 대단한 걸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법대로 하자'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조차 들어주지 않는 거죠. 분명히 바뀌어야 해요."
 
시청률에 압박... 스태프 처우는 생각 안 하는 드라마 제작 관행
 

김민식 PD는 2018년 방송된 MBC 토요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연출을 맡으며, 스태프들에게 '8시간 휴게시간 보장'을 약속했다. 드라마 연출자로서 스태프들에게 늘 미안함을 느꼈고, 노조 활동을 하면서 노동 환경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작 당시는 노동법 개정 전이었지만, <이별이 떠났다>는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현업에서 배제돼 있던 그의 복귀작이었다. '내가 책임지는 현장이라도 달라져야 한다', '기본 조건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8시간 휴식 보장' 발언 이후 제작사는 '우리는 죽으라는 거냐'고 항의했고, 담당 CP는 '제작사를 향한 방송사의 갑질일 수 있다'고 했다. 휴게시간을 준수하려면 촬영 회차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제작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PD가 할 수 있는 건, 휴식 시간이 보장돼도 방송에 차질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 정도였다. 고민은 깊었지만, 몇 사람의 자각과 노력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드라마 제작 여건 개선은 제작기간만 충분하게 보장해줘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제작 기간을 늘리면, 제작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상파는 몇 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고, 드라마 시장의 주도권은 케이블에 뺏겼다. 제작비를 더 투입해야 개선될 수 있는 현장. 제작비를 더 줄 수 없는 지상파. 스태프들은 방송사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걸까? 수백억이 투입된 사전 제작 드라마 현장에서도 반복되는 밤샘 촬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제작비가 늘어나면 그 드라마 막내 스태프의 임금이 늘어날까요? 전 지금 한국 시장에 드라마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드라마가 과도하게 많아지는 바람에 스타 배우, 스타 작가의 몸값만 높아졌어요. 깎으라곤 말 못하겠지만,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 처우 개선을 위해 배려는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 드라마 시장은 과도하게 포화된 상태라고 생각해요. 방송사나 제작사나 출혈 경쟁을 하고 있는데, 그 출혈의 피해는 그 현장에서 가장 돈을 많이 받거나,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가장 어리고 힘없는 스태프들이 감당하고 있는 거예요. 드라마 편수도 좀 줄이고, 일주일에 70분짜리 두 번 편성하는 관행도 변해야 해요."


김 PD는 한빛센터와 방송스태프노조의 활동으로, 스태프들의 고발과 제보가 늘어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연출자들이 몰랐던 스태프들의 고충이나 근로 환경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시청률 압박에만 시달리던 PD들이, 제작 여건 개선으로도 압박 받게 된 현실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변화"라고 했다. 
 
"<이별이 떠났다> 끝날 무렵에, 스태프들의 익명 대화창에 저희 촬영시간 표가 올라왔대요. 그걸 보고 우리 조연출이 굉장히 속상해했어요. 나름 신경 쓴다고 썼는데도 이렇게 올라온다고요. 저는 그걸 보고 든 생각이 '우리 팀 아닌 거 아니야?'였어요. 저도 나름대로 촬영 시간을 체크하는데, 제가 기록한 촬영시간이랑 대화창에 언급된 촬영시간이 달랐거든요. '아닌데?'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깨달았죠. 어떤 스태프들은 촬영 시간 이외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거요. 당장 촬영 시간만 기준에 맞춘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쉽지 않구나 싶었죠.  

사실 그동안 드라마 PD들이 받던 가장 큰 압박은 시청률이었어요. '재미있는 드라마, 시청률 잘 나오는 드라마 만들어야지' 고민은 해도, '빨리 찍어야지, 스태프들 잠 잘 시간 보장해줘야지' 이런 건 생각도 안 했죠. 하지만 이제는 '어떤 현장에서 주당 100시간 이상 찍는다더라', '그 PD는 스태프 혹사 시킨다더라' 이런 기사도 걱정하죠. 전에 없던 압박을 느끼니, 전에 하지 않던 고민도 하게 되는 거죠. 전 이런 변화가 현장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 환경 개선, 업계 1위인 CJ가 대표주자답게 책임감 가져야"
 
 MBC 김민식 PD가 26일 서울 상암동 CJ E&M 앞에서 진행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드라마 제작 현장 개선 요구 1인 시위에 참여했다.

MBC 김민식 PD가 26일 서울 상암동 CJ E&M 앞에서 진행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드라마 제작 현장 개선 요구 1인 시위에 참여했다. ⓒ 김윤정

 
이날 김민식 PD가 든 피켓에는 "CJ ENM도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에 지상파 3사 수준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한빛센터의 요구사항이 적혀 있었다. 지상파 3사는 언론노조와 함께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CJ E&M은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 PD는 "CJ E&M이 제작 환경 개선에 소극적이라는 이야기는 오늘 피켓을 보고 알았다"면서 "드라마 시장에서만큼은 지상파가 약자 아닌가. 지상파도 노력하고 있는데, 업계 1위인 CJ가 대표주자답게 책임감을 가지고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상파도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오늘 1인 시위를 "MBC 드라마 PD가 CJ 드라마를 비판하기 위해 온 것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1인 시위도 언론노조 조합원으로서 참여한 것이고, 드라마 현장은 바뀌어야 하고, 잘못된 일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선 것이라면서 말이다. 

한편 한빛센터의 방송제작환경의 개선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는 CJ ENM의 책임자가 한빛센터와 만나 진정성 있는 개선 의지를 보일 때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한빛센터는 시민들의 1인 시위를 독려하는 한편, 드라마 스태프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 고발 및 특별근로감독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 
 
김민식 1인 시위 한빛센터 아스달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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