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9.4.2
 4월 2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법대에서 내려와 사법농단 실행자로 증인석에 앉은 판사는 공범보다 '무개념'을 택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지난 16~17일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 문건을 작성한 현직 판사들을 증인으로 불렀다. 특히 17일에는 2014~2016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직속 상관이던 임종헌 기획조정실장 밑에서 '너무 충실히 일한' 시진국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부장판사가 출석했다.

시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행정처 분위기가 경직되고 관료적이라 거부가 쉽지 않았다"며 "한번 거부하면 생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사법농단에) 참여했다"고 진술했다. 이 일로 감봉 3개월 징계까지 받았지만, 법정에서도 그는 여전히 '나는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오전 10시경 시작해 오후 7시 무렵 끝난 증인 신문 내내 시 부장판사는 "피고인(임종헌)의 지시에 따랐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설득방안'에 상고법원에 부정적이던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을 피해갈 전략을 담은 것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이정현 국회의원을 면담한 것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고 했다.

보고서에서 청와대 관심 사안이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이나 한명숙 전 총리 뇌물사건을 언급한 것 역시 "기조실에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피고인 지시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015년 11월과 12월

그런데 시 부장판사가 쓴 보고서는 '박근혜 정부의 심기'를 적극 살피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15년 11월 20일, 그는 '가토 다쓰야 관련 설명자료'를 완성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두고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1심 판결에 대해 '보도가 허위이지만 법리상 무죄선고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재판부가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한 것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2015년 12월 17일 오후 4시 58분경이었다.

시 부장판사는 보고서 작성 경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검사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듯 "선고 전에 무죄이나 보도내용이 허위라는 걸 명백히 판시하겠다는 것을 외부에 발설할 수 있냐"고 물었다.

시 부장판사는 "일반적으로 흔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경우 필요하다면 중간판결이라는 게 있어 그런 판단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작 형사재판을 하는 자신도 '중간판결'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가토 전 지국장 말고 다른 '중간판결' 사례도 있긴 하다면서도 명확히 들지 못했다.

'엄중한 질책 있을 것'... 한 달 뒤 일어난 일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타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2015년 12월 17일 무죄 판결을 받은 가토 타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선고 당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 보고서에는 '유무죄 판단과 별개로 재판부의 엄중한 질책이 있을 것'이란 내용도 있었다. 실제로 재판부는 3시간 가까이 판결을 선고하는 동안 가토 전 지국장을 세워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언론의 자유가 무제한적이지 않음을 분명히 인식하길 바란다"며 꾸짖었다(관련 기사 :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씨'는 달랐다).

검사는 "이 부분은 재판부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행정처에서 조율하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정보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 부장판사는 이번에도 "당시 그런 걸 인식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긴 한데 피고인 스타일이 지레짐작하거나 선제적 검토를 워낙 좋아해서 그렇게 이해했다"며 또 불분명하게 답변했다.

검찰은 다시 한번 "재판 개입을 상당히 의심할 수 있는 내용이라 이렇게 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부당하고 위법한 지시가 아니냐는 질문이었으나 시 부장판사의 답변은 여전히 같았다.

"법리 검토 정도로 인식했다, (재판 개입이라며 이의 제기한) 기억은 없다."

지난 2일 증인으로 나온 또 다른 '실행자' 정다주 부장판사와 마찬가지로 그 또한 '열심히 받아쓰기'만 한 판사였다.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가 적절했느냐와 별개로 자신들은 권한도, 의무도 없이 일만 했다는 얘기다. 재판부가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임 전 차장이 자신의 직무권한을 남용해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마지막 질문에서야 나온 단어

그러나 재판부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윤종섭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근무하기 전후, 지금까지 판결 선고 전에 외부에 공개한 적이 있냐"고 직접 물었다. 시 부장판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은 것인가.
"예. 물론 공개해선 안 된다고..."

- 공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 혹시라도 소송관계인 등이 알게 됐을 때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할 것이기 때문에 공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일 증인 신문이 이뤄졌지만, 그의 입에서 '재판의 공정성'이란 단어는 재판장의 마지막 질문을 받은 뒤에야 나왔다.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