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2 22:13최종 업데이트 19.04.22 22:13
몇 년 전부터 불린 미역, 두부, 국수 등을 아이에게 주고 먹고 만지게 하는 '오감발달' 놀이가 한국 문화센터에서 인기다. 어쩌다 SNS에서 이런 사진을 보게 되면 한식 재료가 귀한 외국에 사는 엄마로서는 도저히 해줄 수 없는 놀이여서 씁쓸하게 웃기도 했다. 

인성교육 및 습관 동화, 수학 동화, 언어자극 놀이... 한국에서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다. 영유아기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놀이도 교육이 된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저런 구체적 카테고리까지 부모에게 주입하고 통용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핀란드, 국가가 발달과정 기록·관리
 

어린이집 문 앞에 걸려있는 안전조끼 ⓒ 김아연

 
영유아기 시기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육'이 '교육'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요즘 핀란드에서는 보육(daycare)라는 단어 대신 미취학 아동 교육 및 보육(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Care: ECEC)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이 시기가 아이를 안전하게 맡기는 '돌봄'을 넘어 생애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 확장해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핀란드에서는 만 3세가 되는 시기부터 국가에서 아이의 발달을 기록한다. 취학 전 아동에 대한 자문 및 감독은 교육문화부(Ministry of Education and Culture)에서 맡는다. 그리고 각 지자체에서 그에 필요한 인원 고용 및 배정, 실무를 담당한다. 


아이가 3살이 되던 올해 초 총 일곱 페이지로 이뤄진 질문지가 아이 담임 교사로부터 건네졌다. 식사를 할 때 숟가락을 잘 쓰는지, 옷을 잘 입는지, 용변을 스스로 해결하는지, 밤에 재울 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놀이는 잘 하는지, 생각을 언어로 잘 표현하는지, 어떤 색깔을 알고 있는지, 뛰거나 점프를 할 수 있는지 등 전반적인 성장발달에 대한 문항이 포함된 종이었다. 아이를 평소 잘 관찰하지 않았다면 쉽게 답변할 수 없는 구체적인 질문도 많았다. 

개별 상담 때는 '영유아 전문가'가 동석
 

아이가 놀이를 할 때 교사는 그것을 지켜보고 매일 기록한다 ⓒ 김아연


종이를 제출한 뒤 올 2월 말에 개별 상담시간이 잡혔다. 자리에는 담임교사와 시에서 파견 나온 영유아 전문가가 동석했다. 상담시간은 약 1시간이었고, 질문지에 나온 문항을 함께 하나씩 읽으며 부모와 교사가 답변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상담이 이루어졌다. 아이에 대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을 서로 확인하며 감격하기도 하고, 모르는 내용을 공유하고 메모하기도 했다.

아이의 담임교사 크리스티나는 "아이가 책을 읽을 때 감정이입을 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최근 두 달간 언어가 많이 성장했다" 등 평소에 듣지 못했던 구체적인 발달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평소에 아이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나는 모든 아이들의 행동과 발달을 매일매일 기록한다"고 덧붙였다.

핀란드에서는 한 학급을 편성할 때, 교육학 학사 혹은 석사 학위를 가진 교사가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 아이는 외국인 가정으로서는 정말 운 좋게도 언어교육을 전공한 담임교사를 만났다. 0~3세 반에는 교사 1명 당 아동 4명이, 3~6세 반에는 교사 1명 당 아동 8명이 배정된다. 모두가 전일반은 아니기 때문에 교사와 아동 비율은 시간이나 요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상담 시간이 마칠 때쯤, 시에서 파견된 영유아 전문가 비르기따는 "이 아이는 모국어가 있는 상태에서 3살 때부터 핀란드어를 제 2언어로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기록해도 되는지 부모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는 "이 아이가 다른 지역에 가거나 어린이집을 옮기더라도 지속적인 언어 지원을 받겠다는 데 동의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사실 이곳에서 받는 언어 지원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모국어가 핀란드어인 아이들보다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해주어 단어와 표현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 정도의 서비스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현재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언어가 성장했다. 

직접 관찰하고, 아이가 원하는 걸 제공한다 
 

'부모'와 '교사'는 한 팀워크를 이루어 아이를 키워야 한다 ⓒ 김아연


최근 한국에서는 아이 성장을 관찰하는 예능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부모는 사설 아동발달센터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 이어폰을 끼고 모니터 앞에 둘러 앉아 아이 행동을 지켜본다.

한 부모가 전문가의 분석 앞에 대역 죄인이라도 된 양 눈물을 뚝뚝 흘린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서 언어 발달이 늦다고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주인공 아이에게는 특수한 배경이 있었다. 모국어가 다른 엄마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중언어를 가진 가정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가진 아이들과 단순 비교한 결과였다. 

아이의 성장발달에 대해서는 평소 아이를 오랫동안 지켜본 '부모'와 '교사'가 가장 잘 안다. 단 몇 시간 동안 관찰하여 얻어낸 상담기관의 분석결과가 아이 역량의 전부인 양,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모습은 자칫 위험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의료기관에서나 보육기관에서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느리고 빠른지 비교하며 부모들의 마음을 채근한다. 

실제 핀란드 영유아기 교육 과정(ECEC)의 일환으로 이뤄진 한 시간 가량의 상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주었다.

첫째로, 교사에 대한 신뢰를 쌓게 했다. 교사의 눈에서 바라본 아이의 성장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참 감격적인 일이었다. 두번째로, 아이를 가장 잘 아는 '부모'와 '교사'가 팀워크를 이루어 파트너십을 갖고 영유아기 플랜을 함께 짤 수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셋째로, 아이 스스로가 주도권을 가지고 아이가 관심있는 것을 중심으로 성장하도록 지지해주었다. 이 모든 것은 핀란드 영유아기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10편의 연재를 통해 핀란드에서 경험한 영유아 시기의 돌봄과 보건, 교육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취학 전 영유아 시기를 단순한 '돌봄'을 넘어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핀란드의 시각은 새롭다. 하지만 그 방향성이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거나 동화 전집을 읽게 하는 조기교육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잣대와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존중 받는 인격체로 자라나길 바란다. 또 영유아기 보육을 담당하는 교사의 전문성과 권위가 더욱 높아지고, 부모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기관이 더 많아지길 먼 땅에서 기도한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린시절은 어린시절다워야 한다. 

* '김아연의 핀란드 육아일기' 전체 기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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