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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 버스를 세운 운전기사가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전동 휠체어를 탄 승객이 버스에서 내려온 경사로를 이용해 버스에 오르고, 운전기사는 앞쪽에 길게 놓인 의자 한 세트를 들어 올려 휠체어가 들어설 공간을 만든다. 승객이 휠체어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 그 공간에 맞추어 들어오면, 기사는 그 공간에 설치된 안전벨트를 이용해 휠체어를 고정한다.

운전기사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 경사로를 접어 올리고 문을 닫은 뒤 출발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2~3분. 번거로울 법도 한데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기사도, 승객도 이런 일로 짜증을 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공공도서관에선 발달장애가 있는 10대 청소년 여럿이 어린이 전용 서가에 들어와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책을 읽다 가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몸을 흔들며 노래하듯 책을 더듬더듬 읽어내려가는 형아, 누나들 옆에 이제 막 책 읽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내 아이가 섞여들었다.

얼마 전엔 덩치 큰 청년이 난데없이 발밑에 엎드려 내 운동화를 손으로 꾹꾹 눌러댄 적도 있었다. 청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 청년이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리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발을 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놀라서 물끄러미 나와 그 청년을 번갈아 바라보는 내 아이에겐 "엄마 신발이 폭신폭신해 보여서 눌러보고 싶었나 보다"하고 말하고는 청년에게도 가벼운 인사말을 건넸다. 곧 인솔 교사가 다가와 건네는 "미안하다"는 말에 "괜찮아요" 하고 답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산다는 것

미국에서 꽤나 보수적이고 변화가 느린 지역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쉽게 만난다. 지난 이삼십년간, 장애가 있어도 가급적 동네 안에서 함께 살면서 필요한 지원을 받게 하는 쪽으로 제도와 문화가 다듬어져 왔기 때문이다.

다운증후군·자폐 등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 아무에게나 말 걸고 버스나 길가에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 휠체어를 타고 말이 어눌하지만 가게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 한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하고 다니는 사람.

이 사람들 모두 그동안 아이와 함께 길을 걸으며, 놀이터에서 놀며, 또 장을 보며 만난 사람들이다. 아이가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세상에 대해 조금씩 더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마다 생긴 모습도, 의사소통 방식도, 살아가는 모습도 모두 다르다"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이런 일상적인 만남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만남의 순간마다 그동안 비장애인으로서 별 의식 없이 넘겨왔던 것들이 하나하나 '문제'로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 뚜렷이 그어진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대해 생각했고,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보다 두 배 넘게 큰 채로 태어난 내 아이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솔직히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갈 생각을 하면 무섭다. 적어도 이곳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마주하며 사는 환경이 마련돼 있으니 내 아이의 남다른 신체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한국에선 어려울 것 같아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곳도 이만큼 오기까지 숱한 싸움과 좌절이 있었고 지금도 그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시작되는 일들
 
 도서관에서 받아온 전시회 설명 책자
 도서관에서 받아온 전시회 설명 책자
ⓒ 서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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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마침 동네 도서관에 갔더니 커다란 패널을 여러 개 세워 놓고 장애인권운동에 관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1977년 4월에 있었던 '섹션 504 쟁취를 위한 점거운동'에 관한 기록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는 전시였다.
  
장애차별금지조항인 '섹션 504'를 정식 법 조항으로 통과시키라는 장애계의 요구를 4년 가까이 묵살하고 있던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1977년 4월, 미국에선 장애당사자들이 점거운동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모인 장애당사자와 장애인권활동가 150여 명이 샌프란시스코의 정부기관 건물을 점거하고 '한 달 살기'를 한 끝에 '섹션 504 법'이 통과됐다.

그날의 승리를 기억하고자 기획된 이 전시의 제목은 "더 이상 참지 마라"(Patient No More). 사람답게 살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기 위해 4년이나 기다렸던, 그러나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뤄낸 성취였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일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곳에도 여전히 있다. 아직도 치료라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장애당사자를 학대하는 교육기관과 시설이 이곳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장애로 인해 교육의 기회와 취업의 기회,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전역 곳곳에서는 장애당사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고, 그 투쟁 하나 하나는 모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시작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당사자들의 싸움은 매일같이 이어져오고 있다. 해마다 4월 이맘때면 '장애인의 날'이라며 이런저런 행사를 연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년에 하루, 장애인의 날을 지정해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옳지도 않다.

같이 부수고, 같이 깨기

며칠전, 서울시의 소극적인 탈시설계획에 장애당사자들이 서울시청을 항의방문하고 도로를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는 모습에 어떤 사람들은 '과격하다'고, '일반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고 지적했다(관련기사: 서울시 '장애인 감옥' 수감 계획? 내용을 들여다 보니).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거리로, 청사로 나와 점거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참아왔는지, 그 기다림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그들은 모른다. 철저한 비장애인 중심 세계에서 장애를 이유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마저 침해당하는 이들의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1984년 9월 내가 태어나던 그때, 남대문 시장에 액세서리를 납품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한 사람이 아내와 아이를 두고 "서울 거리의 턱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며 목숨을 끊었다. 휠체어 이용자였던 그는 곳곳에 놓인 '턱' 때문에 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렸다.

물건 납품을 위해 출입해야 하는 가게는 물론이고 식당이며 횡단보도며 모두 턱에 가로막혀 휠체어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그는 물건을 제때 팔 수도, 밥을 제때 먹을 수도,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도 없는 현실에 좌절했다.

그때로부터 35년, 서울 거리에 실제로 턱이 얼마나 없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애당사자들의 현실은 여전하다. 저상버스가 있어도, 장애인콜택시가 있어도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고, 맞춤 교육이 가능한 시설과 제도와 인력이 부족해서, 활동지원이 부족해서 결국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시설에 수십 년씩 갇혀 지내는 사람들에겐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턱이고 벽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 턱을 깨고 벽을 부수며 나오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참으라고,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참지 말라고, 잘 나왔다고, 함께 싸우겠다고 말해야 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법. 뒷짐지고 혹은 손가락질하며 서 있다가 달라진 세상에 얌체처럼 무임승차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벽을 뚫고 나오는 사람들 편에 서서 함께 벽을 부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모든 차별받고 배제된 존재들이 더 '설치고, 떠들고, 말할' 때, 더는 참지 못하고 '과격하게' 뛰쳐나올때, 그때에야 비로소 턱 없고 경계 없는 세상,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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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엄마, 정치하는 엄마.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고, <정치하는엄마들>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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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