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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함께 살자며 기자회견에 참가한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함께 살자며 기자회견에 참가한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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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단 자유가 생겨서 좋습니다."

수감 생활을 마치고 교도소를 출소한 이가 했을 법한 이 말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탈시설'(장애인거주시설에서 퇴소하여 지역사회에서 살아감)한 어느 장애인의 고백이다. 탈시설 당사자 이봄은 지난 5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주관으로 서울시청에서 열린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삶 증언대회 '여기 사람이 있다'에 올라 장애인거주시설 안에서 경험한 삶을 증언했다. 

이봄은 1994년 5살에 입소해 2018년까지 24년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았다. 장애인거주시설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중심엔 통제와 강제적 규율이 있었다. 탈시설 후 자신의 힘으로 자립 생활을 영위하는 일이 힘들지만, 자유를 얻어서 좋다고 이봄은 말했다. 

오후 10시가 넘어 들어가면 혼나고, 자신의 돈으로 물건 하나 사고 싶어도 거주시설 생활 재활교사의 결재 여부에 조마조마해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난 것은, 이봄에게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난 일이었다. 이봄은 탈시설한 그날, 집이 생긴 게 좋아서 밤을 꼴딱 새웠다고 한다.

이봄은 "거주시설을 벗어나기 위해 10여 년 동안 발버둥 쳤다"라고 말했다. '거주시설 밖으로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보호작업장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 10만 원을 꼬박꼬박 모았다고 했다. 그러나 탈시설은 개인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0년간 매달 10만 원씩 단리 2% 비과세로 적금을 모아도 1301만 원이 아니던가? 이 돈으론 주택을 얻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세간살이를 마련하는 건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이봄에게도 '운 좋게' 기회가 왔다. 인천의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동료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이봄은 민들레센터를 통해 탈시설 정책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전달받았고, 결국 자립생활주택으로 탈시설할 수 있었다. 인천시가 체험홈과 자립생활주택을 탈시설 주거 물량으로 확보한 데다 민간 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분적이지만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위한 정책을 만든 인천시 장애인 정책의 변화 속에서 이봄도 2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탈시설 선도하는 서울시? 누군가에겐...

이봄이 탈시설 할 수 있도록 지원한 지자체는 인천광역시이지만, 탈시설 정책을 시작하고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서울특별시다. 서울시는 관할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 약 3000명 중 20%인 600명을 5년 동안 탈시설한다는 목표로, 2013년 장애인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09년 석암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에 거주하던 8명 등 석암재단생활인인권쟁취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시에 탈시설 주택을 요구했고, 서울시는 당시 만든 탈시설 주거 모델을 확대해 탈시설 정책의 기본 꼴을 갖췄다.

그러나 야심 차게 탈시설 정책을 시작했던 서울시는 '욕구조사'란 명칭으로 탈시설하거나 혹은 하지 않을 사람을 선별했다. 서울시는 탈시설 신청을 받아 탈시설 대상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명목상으로 600명에겐 탈시설을 허락했지만, 누군가에겐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약 2400명의 시설 거주를 정당화한 것이다. 이러한 탈시설 정책의 한계는 심사 과정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서울시는 탈시설을 희망하는 거주인이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거주시설에서 더욱 훈련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심사하기도 했다. 또 탈시설 후 지역사회에서 기존의 인프라(활동 지원, 소득보장)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탈시설 대상자를 결정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탈시설 정책이란 이름으로 중증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모두 포함할 수 없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탈시설 정책의 한계로 인해 탈시설 심사에서 탈락한 시설 거주인들은 희망을 품었다가 오히려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서울시가 '권리의 관점'으로 탈시설 정책을 시행하지 않은 것이었다. 서울시는 비장애인에게 거주시설에 들어가서 생활하고 싶은지 묻고,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말하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반면 시설 거주인들을 능력에 따라 줄 세우고 탈시설할 사람을 결정했다. 서울시는 탈시설이 권리라고 인정하면서도 선택권이란 이름으로 탈시설을 보편의 권리가 아니라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가깝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기존의 서비스 체계에 맞는 사람만 지역사회에서 살도록 정책을 설계한 것이다. 결국, 돈의 부족과 거주시설 중심의 정책적 관성으로 인한 일이었다. 

2017년 제1차 탈시설 5개년 정책이 끝나고 2018년 서울시는 제2차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22년까지 5년간 장애인이 탈시설 하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이었지만, 대상자는 600명에서 300명으로 오히려 축소되었다. 

서울시 장애인 거주시설 45개소에 거주 중인 중증장애인은 2567명인데, 이 정책 속도에 따르면 시설 거주인 중 누군가는 45년 후에야 장애인거주시설을 벗어날 수 있다. 45년을 버티지 못한다면 거주시설에서 죽어야 한다. 물론 45년의 세월도 탈시설 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서울시의 상황에서야 가능한 일이다. 탈시설 정책이 없는 강원도나 대전시, 세종시 등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 탈시설은 언감생심인 게 2019년 한국 복지의 현실이다.

빈 수레 요란한 복지부의 탈시설 정책

중앙정부가 나서서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면 한계를 해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탈시설 정책은 전무하다. 

지자체별로 탈시설 정책의 편차를 줄이도록 법을 제정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일 등 산적한 과제가 많다. 장애인의 탈시설은 주거 모델만 확보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주거에 복지 서비스를 결합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자원과 모델이 필요하다. 국토교통부와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행정안전부의 협력 또한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탈시설지원센터 설치 등의 내용을 공약화했다. 정권 수립 후 2017년 7월 100대 국정운영 과제 42번에서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명시하고, 같은 해 8월엔 복지부와 장애인단체가 함께 탈시설 민관협의체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기로 약속하여 2018년까지 총 9번의 회의를 했다. 이뿐만 아니라 2018년 3월엔 커뮤니티케어를 통한 통합돌봄체계를 이루겠다고 야심 차게 발표했다. 그러나 임기 3년 차가 된 현재까지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바뀌진 않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내다볼 탈시설 정책의 초석을 만들었는지 현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복지부는 2019년 중에 대구 남구와 제주시에 장애인 커뮤니티케어 시범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주거모델의 형태는 물론, 구체적인 탈시설 목표 인원조차 정해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뿐 아니라 정부는 최소한의 예산도 마련하지 못했다. 2019년 장애인거주시설 운영비로 4809억 원을 정하면서도 탈시설 예산으론 14억 원을 책정, 결국 탈시설전환지원센터를 1개도 설립하지 못했다. 복지부가 2019년 탈 시설 예산으로 71억 원을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제출했으나, 기재부는 이 예산을 21억 원으로 삭감했고, 국회는 이 돈을 14억 원으로 삭감했다. 

한편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포용 국가를 만들겠다며 복지 청사진을 발표했다. "2022년이면 장애가 있어도 불편하지 않게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남녀노소 기본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는 이렇다 할 탈시설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수만 명의 장애인은 2022년 이후에도 거주시설에 살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하자

시설 거주인은 자그마치 3만 명이 넘는다. 2007년 314개에 불과하던 장애인거주시설은 2017년 1517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2만1709명이었던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은 3만693명으로 증가했다. 지난 9년간 보수 정권이 시설 소규모화란 이름으로 거주시설 숫자를 늘려 장애인을 시설에 분리시킨 정책의 결과다. 

지난 정권은 2008년 UN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해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참여를 국제사회를 비롯한 국민과 약속하고도 장애인을 시설로 분리했다. 장애가 있는 개인의 71%가 시설 거주인이란 이유로 휴대전화를 소유하지 못하고(2017, 국가인권위원회 중증·정신장애인 생활 시설인에 대한 실태조사), 다수 장애인이 프로그램화 된 일상을 살아도, 복지정책이란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했다.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원과 시설 수 현황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원과 시설 수 현황
ⓒ 최재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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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거주인의 숫자는 몇 년간 3만여 명에서 고착된 상태다. 이 고착화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선 시설 소규모화를 비롯해 탈시설을 특별한 일로 여기며 정책을 펼친 분리의 역사를 끝내고 중증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 그 시작으로 제안하고 싶은 일은 법 제정을 통한 10년 내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다.

도덕적으로 탈시설이란 가치에 동의하더라도 10년 내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한다는 계획에 쉽게 동조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구체적인 시설폐쇄법 제정을 통해 장애인 통합을 추진한 나라가 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와 스웨덴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바자리아법'을 통해 정신장애인시설까지 폐쇄하고 지역사회 탈시설을 법 제도로 지원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바자라아(Basaglia)는 '자유가 치료'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도록 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탈리아에선 1978년 세계 최초로 정신병원폐쇄법(바자리아법)이 공포되었다. 

스웨덴에서는 1994년에 LSS법을 제정하여 1999년 12월 31일 시설을 폐쇄해 시설에 수용된 모든 장애인을 사회로 복귀하도록 하였다. 10년 내 장애인거주시설 폐쇄와 자립 생활 정책 마련, 정부가 의지를 갖고 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면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은 화단에 심은 꽃이 아니다

이봄의 증언과 짝지어 말하고 싶은 삶이 있다. 오는 5월 6일 결혼하는 최영은과 이상우의 삶이다. 두 사람은 충북 음성 꽃동네 장애인거주시설 희망의 집에서 만났으나, 당시 연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 이유는 '원장실로 끌려가서 혼날까 봐'였다. 최씨와 이씨가 있던 장애인거주시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거주시설은 시설 내 연애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 방에 4~5명씩 함께 거주하며 항상 지켜보는 '생활 재활교사'가 있는 거주시설에서 구조적으로 사랑은 봉쇄되며, 사랑을 드러내는 자는 축복이 아닌 눈치와 어울림이 아닌 소외의 환경에 처해야 하는 것이 거주시설에서의 현실이다. 

하지만 장애가 있다고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두 사람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해 2015년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수급비를 알뜰살뜰 절약하여 결혼 전세자금 5천만 원을 모았다. 최씨와 이씨는 꽃동네 희망원에 적힌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을 받은 것'이라는 문구를 깨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인간임을 선언하며 당당히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을 주창하는 목소리를 들은 다수의 사람은 '그러면 장애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역사회는 아직 위험하지 않나? 거주시설 인프라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등의 기우를 앞세우기 십상이다. 어려운 일이고,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위험한 것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누구에게나 지켜져야 한다. 이봄과 최영은, 이상우를 비롯해 탈시설한 당사자들은 '장애인거주시설, 거기에 내가 있었고, 지금도 사람들이 있다고' 다급하게 목으로, 몸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은 화단에 심은 꽃이 아니라고.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최재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월간 복지동향 2019년 5월호의 '동향' 코너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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