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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전'이 필요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꼭 도박이나 사치 향락에 빠져서가 아니다. 갑작스레 당한 사고나 실직 때문일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하게 덩어리가 커져버린 카드값 때문일 수도 있고 느닷없이 보증금을 올려줄 것을 요구하는 집주인 때문일 수도 있다. 평온하던 일상이 돈의 압박에 뿌리째 흔들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돈이란 내 손에 있을 때는 그지없이 하찮다가도 남의 손에 있는 것을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 되면 세상 어려운 물건이다. 남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단돈 백만 원도 어렵다.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고 그래도 친하다고 생각했던 지인이나 가족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가도 나도 형편이 어려워서 안 되겠다는 거절에 몇 번 부딪히고 나면 더 이상의 바닥으로 내려갈 용기조차 생기지 않는다.

은행도, 저축은행도, 캐피탈도, 아무나 다 받는다는 피투피(P2P) 대출마저 거절되고 나면 나는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산 것인가 하는 회의마저 밀려온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 인터넷에서는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우리에게 오라'는 숱한 대출광고들이 번뜩이기 시작한다. 신용도 소득도 보지 않고, 24시간 언제라도 무조건 오케이.

"첫 거래는 무조건 30이에요"
     
깐깐해진 대출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은행권이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을 비롯한 새 대출규제를 시행한 26일 오전 서울의 한 은행 창구 모습. DSR는 대출심사과정에서 기존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등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합산, 연 소득과 비교해 대출한도를 정하는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만을 고려하던 기존 방식보다 대출한도가 줄어 대출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2018.3.26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빌려주는 돈 같은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없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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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급전의 함정에 빠진 A씨. 발등에 불은 떨어지고 도저히 빌릴 재간은 없어 '당일급전'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깔끔한 홈페이지에, '불법업체가 아님'을 주장하는 한 '당일대출' 업체로 전화를 했다. 대부라는 말에 일단 긴장했으나 전화를 받는 것은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A씨의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담당자'가 전화를 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잠시 후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준비해야 할 서류는 등본, 초본, 인감증명서, 신분증 사본, 가족관계증명서 등이다. 서류를 준비해 담당자를 만나러 나갔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나타난 담당자는 예상보다 젊고, '힙'한 차림이었다.

A씨가 가져온 서류를 훑어보던 담당자의 첫마디는 그거였다. "근데 첫 거래는 무조건 30이에요. 그 이상은 안돼요. 그거 두세 번 잘 쓰고 갚으면 그 다음부터는 뭐 백만 원도 가능하고 이백만 원도 가능하고." 30만원을 빌린 후 일주일 후에 50만원을 갚는,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30/50' 급전이었다. 필요한 금액에 턱없이 모자라는 '대출한도'를 안내받은 A씨는 황망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알아본 것은 '일수'였다. 급전 중에서도 막장이라던 그 일수 말이다. 준비해 달라는 서류는 첫 업체와 대동소이했다.

서류를 살펴본 출장 직원은 통장 내역을 확인해 보자고 했다. 비대면 거래로 만든 통장이라 내역을 뽑기가 힘들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앱을 실행시켜서 직접 확인을 시켜 달라고 한다. 돈 빌리자면서 그 정도도 안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앱을 켜 거래내역을 띄웠다. 출장 직원은 그 내역을 일일이 드래그하면서 '감사'를 시작한다.

"○○○ 씨는 누구에요? 정기적으로 돈이 나가네요." 부모님께 드리는 생활비라고 대답했다. "○○○ 씨는 누구에요?" 일전에 지인에게서 빌린 돈을 갚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들어오는 돈은 얼마 없는데 나가는 돈이 너무 많네요."

그렇게 통장 내역을 일일이 들어다 보며 '재무 감사'를 하던 직원은 그나마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 사무실에 돌아가서 마저 얘기해 보겠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몇 시간 후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승인 거절입니다. 서류는 폐기할게요."

"제가 보는 데서 부모님이랑 통화해 보세요."

첫 업체를 알아볼 때 같이 연락처를 남겼던 다른 '당일급전' 업체 직원과 마지막으로 약속이 잡혔다. 그에게서 나온 이야기도 결국 첫 업체와 같았다. 첫 거래는 무조건 30만 원이고 그 이상은 불가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시달린 나머지 돈 30만원 빌리는 것도 이렇게나 어렵구나 싶어서,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빌려야겠다고 생각한 A씨. 직원은 A씨의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연락처를 뒤져 가족과 친척, 지인, 거래처 등의 연락처를 일일이 옮겨 적기 시작했다. 나이, 사는 곳을 확인하고 얼마나 빈번하게 전화하는 사이인지까지도 일일이 체크했다.

그렇게 20여 곳 쯤 되는 연락처를 옮겨 적고 이제 다 됐나 생각한 A씨. 그러나 직원은 A씨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며 '자신이 보는 앞에서 부모님과 통화할 것'을 요구하며 거절할 시 30만 원조차도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안부 인사 정도나 하고 끊으면 된다는 말이었지만 원하는 금액 전부를 빌려주는 것도 아니면서 고작 30만 원에 부모님과의 통화까지 해야 하냐는 모멸감을 이기지 못한 A씨는 결국 30만원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직원은 무덤덤한 얼굴로 옮겨 적은 연락처들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남의 돈을 빌리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 어떤 인간적인 호의도 기대할 수 없는 '대출'은 더더욱 그렇다.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빌려주는 돈 같은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없다. 300만 원도 아닌 30만 원을 빌리기 위해 가족과 지인의 연락처를 털고 확인 통화를 강요당하는 것이 '급전대출'의 현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곳들까지 흘러들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우리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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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질, 글질을 병행중인 34세의 프리랜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