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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동 중정터로 향하는 길
 이문동 중정터로 향하는 길
ⓒ 지금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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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 중앙정보부터로 탁본 모임을 하러 가는 길, 군데군데 골목길이 이어진다. 옛날 집들이 있는 곳을 지나 한 무더기 생활쓰레기들이 쌓인 길가를 지나게 되었다. 오늘이 쓰레기 내놓는 날인가 하며 걸어가는 일행에게 옆 주택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주민이 한 마디 한다. 

주민= "우리나라 좋은 나라에요."
일행= "네? 왜요?"
주민= "쓰레기를 저렇게 한 무더기 쌓아놔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은 나라라고요."

 
 한무더기의 쓰레기
 한무더기의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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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한 주민의 말을 뒤로하고 갈 길을 재촉하는데, 김순자가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말을 읊조리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라고 했다. 잠깐 생각하던 그녀는 어렸을 적 배운 동요라며 그 구절을 이야기했다. 

"옛날에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쳤어요.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거짓말 안 하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노래 부른 기억이 나는데요." 

당시에는 무슨 노래인지 기억이 안 났지만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1945년 윤석중이 만든 '새 나라의 어린이'란 이름의 동요였다. 김순자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구절을 부르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러지 못한 어른들이 아이들이라도 욕심 없이 거짓말하지 말라며 만든 게 아니겠느냐'고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곳도 아닌 한 번 잡혀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다는 이문동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을 가는 길이라 더 생각이 많아진다. 정말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인 걸까? 적어도 고문과 폭력을 당해 조작 간첩이 된 피해자들에게 있어 이 나라는 마냥 좋은 나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선생님, 여기 바로 옆에 의릉이라는 곳이 있어요." 
"왕릉이 바로 옆에 있어? 그 옆에다 사람 고문하는 곳을 만든 거야?"


최양준은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중앙정보부 바로 옆에 왕릉이 있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고 했다. 부산 보안대에서 고문 수사를 받다가 서울 서빙고로 끌려온 그는 나중에 비슷한 처지로 복역을 하게 된 조작간첩 피해자들로부터 이문동 중정의 악명을 들었다. 

"그 당시 안기부나 보안대나 시경대나 방법은 똑같았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고통을 어떻게 비교하겠나. 이사영 선생이 여기서 고생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
 
 미술원 앞에서
 미술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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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남아있는 예전 건물인 미술원 앞에서 이사영, 김순자, 최양준은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대학 건물이 주는 어색함과 한편으로 여전히 차갑게 보이는 건물의 외관, 그리고 보안 카메라가 주는 기묘한 분위기가 일행을 망설이게 했다.

"이렇게 넓은 부지에 사람 고문하는 곳을 만들고.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미술원의 보안카메라
 미술원의 보안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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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도 잠시 건물 안으로 들어선 일행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과거의 중앙정보부를 상상하며 나름의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최양준은 미술원 학생들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벽면의 손자국을 남기고 싶어 했다. '묻어나지 않겠지만 애써 그 손바닥을 담으려는 자신의 마음만큼은 담길 것'이라고 보았기에 목탄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지하층 벽면의 손바닥
 지하층 벽면의 손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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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의 질감을 남기려는 최양준
 벽의 질감을 남기려는 최양준
ⓒ 최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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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자는 지하층에서 굉음이 울리는 공간의 명패를 탁본으로 남겼다. 이유를 물으니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유일한 곳이 보일러실이지 않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육중한 철문에는 '기'자 날아간 '계실'이란 팻말이 붙어있었다.

"고문받던 사람도, 고문하던 사람도 없는 자리에 이제는 기계만 돌아가고 있네."
 
 기계실의 팻말을 남긴 김순자
 기계실의 팻말을 남긴 김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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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원을 뒤로하고 일행은 미술원 바로 옆에 있는 의릉으로 들어갔다. 매표소 앞에서 잠시 기다리시라 하고 표를 사려 하니 최양준이 호쾌하게 이야기한다.
 
 한예종 옆에 위치한 의릉
 한예종 옆에 위치한 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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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 명은 칠십 넘은 노인들이라 무료야. 현우씨랑 청년들 표만 사면 돼!"

탁본을 하며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진 채로 아직은 쌀쌀하지만 그래도 청명한 하늘이 열린 의릉을 거닐었다. 이제 막 핀 꽃과 아직 싹만 틔운 식물들을 보며 안쪽으로 걸어들 어가 의릉 뒤편에 있는 구 중앙정보부 강당 앞에 섰다. 이곳은 과거 1972년 7월 4일, 남한과 북한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곳이었다.
 
 의릉을 걷고 있는 이사영, 최양준, 김순자(왼쪽부터)
 의릉을 걷고 있는 이사영, 최양준, 김순자(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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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중앙정보부 건물
 구 중앙정보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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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중앙정보부 안내판을 탁본하는 최양준, 이사영(왼쪽부터)
 구 중앙정보부 안내판을 탁본하는 최양준, 이사영(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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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봐도 손색없는 문구잖아. 지켜만 졌다면 우리가 나중에 그 고생을 안 했을 수도 있지."

최양준은 '7.4 남북공동성명의 문구'를 이야기하며 "이게 지켜졌으면 조작 간첩도 필요 없었을 것이고 고문도, 폭력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사영은 공동성명 이후 2년 뒤 성명이 이루어진 의릉의 중앙정보부 강당 옆에서 고문을 받았다.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중앙정보부의 터, 과거의 모습을 되찾은 의릉, 그리고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또 기억을 밀어내며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 가는 사람들. 긴 겨울의 끝에 피는 꽃을 생각하며 일행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이문동 중앙정보부터를 뒤로 했다.
 
 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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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에 남긴 잔혹한 기억]
① 그녀는 왜 남영동 대공분실 머릿돌을 탁본했나 http://omn.kr/1hjit
② 고문실의 문구멍은 거꾸로 뚫려 있구나 http://omn.kr/1hm1v
③ 그가 고문 받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http://omn.kr/1hm1x
④ "앞 못보는 아버지가 북한 암호해독?" 참혹한 고문 흔적 http://omn.kr/1hsk6
⑤ 일본 청년과 한국 청년, 수상한 조합의 수상한 작업 http://omn.kr/1i10q
한예종 학생들은 알까, 여기서 사람 고문했다는 걸 http://omn.kr/1if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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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지금여기에"라는 단체에서 일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