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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오전 11시 10분 국립 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 잠잠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시 안산 단원고 2학년 제자들을 구하던 중 순직'이라고 적힌 차가운 대리석 묘비를 아버지가 쓰다듬고 있다. 묘비가 위에서부터 검게 젖는다.

"초원아... 아빠 왔다고 또 비 내려주는 거야? 너 보러 선생님들도 오신대."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61)를 만났다.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61)를 만났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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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56분. 생일 케이크와 소주 한 병이 묘비 앞에 차려졌다. 케이크에 꽂은 초는 큰 것 3개, 작은 것 2개. 경북 구미, 대구, 원주, 경기 등 각지에서 모인 기간제 교사 6명이 준비해온 선물이었다. 세월호로 기억되는 4월 16일은 딸의 생일이기도 했다. 빗줄기는 더 거세지고 있었다.

"초원이가 참 차분하면서도, 터프한 구석이 있었어요. 지 말로는 소주 3병이 정량이래, 거참, 허허. 그래 소주 한 잔 받아 초원아. 내일 모레 생일인데, 보고 싶다."

낮 12시 25분. 술잔이 몇 차례 돌았고, 한 선생님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쳤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끝내 울지 않고 돌아섰다. 비에 젖은 케이크를 차에 실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현충원을 빠져 나오는 길이었다. "어? 날이 개네?" 식당에 도착할 즈음,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다. 아버지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세월호 이후 잃어버린 목소리를 아직도 되찾지 못했다. 그는 "인공 성대 시술을 계속 받고 있다"고 했다.

"하 참. 어떻게 고때만 딱 비가 내리네. 하늘이 내 마음을 알고 위로하는 건지, 우리 초원이가 촉촉하게 적셔주는 건지... 미신은 아니겠지만 정말 이럴 땐 그런 게 있는 것 같애. 응. 정말이야."

세월호 희생자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61)씨를 14일 대전에서 만났다. 2014년 사고 당시 26세 기간제 교사였던 고 김초원씨는 세월호 침몰 때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는 등 구조에 힘쓰다 사망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순직을 인정 받지 못하던 김 교사는 3년이 넘는 아버지의 분투 끝에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순직이 인정됐다.

그러나 지난 1월, 사망보험금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에선 끝내 패소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였다. 4월이 되면 몸부터 아파온다는 아버지 김성욱씨는 아직도 모친에게 손녀의 죽음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축산 일을 하며 키우는 병아리들을 지켜보는 게 삶의 위안이라고 했다.

김씨가 멀리서 와준 선생님들을 대전역까지 배웅할 무렵, 맑게 갠 하늘에 해가 떠 있었다. 그날 비는 더 오지 않았다.

병아리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61)를 만났다.
 김성욱씨는 "부화기에 알을 안착시켜놓고 딱 21일 지나면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 그걸 지켜보는 것이 그렇게 위안이 된다"고 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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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5주기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기억은 생생하다. 배가 기울던 상황, 시신이 올라 오던 그때 상황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요즘은 잠을 잘 못 잔다. 원래 술 담배를 전혀 안 하는데, 요즘은 집에서 만드는 과실주를 조금 마셔야 잠에 들 수가 있다. 돌씨가 지나야 한다."

- 돌씨가 뭔가.
"'돌씨'라고... 경상도 사투리다. 돌아오는 날. 딱 그날. 바로 그날. 다가오는 날. 뭐 그런 뜻이다. 올해도 돌씨가 지나야 그나마 마음에 평온이 올 거다. 아내도 그렇고 이맘때가 되면 여기저기가 아프다. 디스크도 생기고... 4월달 되면 꽃도 피고 예뻐서 다들 좋아하지 않나.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특히 초원이는 4월 16일이 생일이니까. 내가 저기(묘) 있고 초원이가 날 찾아와야 하는데, 이게 거꾸로 돼버려서... "

- 어떻게 지냈나.
"나야 뭐 여전히 흑염소 키우고 닭 키우면서 산다. 세월호 사고 이후 일주일 만에 28년 다니던 전자회사를 때려 쳤다. 안산에서 한 3년 살다가 고향인 경남 거창으로 내려갔는데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고향 집 뒤에 야산이 있어서 거기다 철조망 치고 염소 16마리부터 키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팔은 것까지 하면 250마리까진 늘렸을 거다. 소일거리로 시작했는데 직업이 돼버렸다. 닭도 100마리쯤 키우는데 알을 부화기에 넣고 기다리는 순간이 그렇게 좋다. 그 기다림. 설렘. 희망. 부화기에 알을 안착시켜놓고 딱 21일 지나면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 좀 빠른 놈은 20일만에도 나오고 좀 늦은 놈은 22일 정도 만에 스스로 나온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게 참 신비롭고, 신성하더라. 앉아서 그것만 기다린다. 다른 건 별 낙이 없는데 이게 그렇게 위안이 된다."

- 목상태가 안 좋다.
"인공 성대 시술을 계속 받고 있다. 2, 3년에 한 번씩 받는데 예전처럼 목소리가 안 나온다. 순직 인정 받기까지 하도 소리 지르고 울부짖어서 성대가 이렇게 쪼그라들었다고 하더라. 쉽게 말하면 성대가 녹은 거다."
 
- 가족들은 어떤가.

"아내와는 겉으로 내색을 잘 안 한다. 대놓고 애 얘기도 잘 안하고. 그저 서로 알뿐이다. 날짜가  다가오니까 둘 다 잠 못 이루고... 우리 어머님? 여전히 말씀 안 드렸다. 아직도 손녀가 미국 유학 간 줄 알고 계신다. 85세이신데다가 아무것도 모르시는데 지금 와서 말씀 드릴 처지가 못 되니까... 어머니는 아직도 박근혜가 불쌍하다고 하신다. 초원이랑 3살 터울 남동생이 있는데 살아선 그렇게 많이 싸우더니 누나가 가고 나니 한 6개월을 방황했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동생 생일도 4월이라 둘이 같이 생일 케이크도 하고 그랬는데..."

차별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61)를 만났다.
 그는 "기간제 교사"라서 겪은 차별이 아팠다고 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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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기간제 교사들이 찾아왔다.
"고마웠다. 동병상련이랄까. 전에도 몇 번 오셨었다. 순직 인정 받을 때 도움도 많이 주시고 발언도 많이 해주셨던 분들이다. 저도 큰 도움은 안되지만 기자회견 같은 거 있다고 하시면 가고 한다. 기간제 교사들, 굉장히 열악하다. 우리 딸 때만 해도 좀 덜 했는데 요즘은 쪼개기 계약을 하도 해서 3개월짜리 계약도 있다고 한다. 방학 때 월급 안 주려고 꼼수 쓰고... 우리 딸은 지금 없지만 저 선생님들에겐 당장 마주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안 됐기도 하고. 기간제 교사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서글프고 마음 아프다. 초원이도 똑같은 선생인데 기간제란 이유만으로 3년 동안 순직 인정 못 받지 않았나. 그거 받아내려고 오체투지까지 하고, 그 숱한 행군에 목도 버리고... 정말 힘들었다. 법이 참... 묘하다. 사람을 참 비참하게 한다."

이날 현충원을 찾았던 선생님들은 김초원 교사 덕에 기간제 교사도 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에서 일하는 기간제 교사 13년차 이아무개씨는 "그전에도 기간제 교사에 대한 보험금 지원을 요구해왔으나 김초원, 이지혜 교사 일 이후에야 뒤늦게 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현장에서의 쪼개기 계약, 고용 불안, 차별은 여전하다. 노동조합도 인정되지 않고 있어 기간제 교사들은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세월호 이후에도 바뀐 건 하나도 없다"고 호소했다.

경기도교육청이 공무원의 상해사망 보험 등을 지원하는 맞춤형 복지제도는 기간제 교사에겐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이후 세월호에서 순직한 기간제 교사들이 보험금도 못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지난 2016년 8월 경기도교육청은 기간제 교사도 '맞춤형 복지제도'에 적용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그러나 김초원 교사까지 소급적용 하진 않았다. 이에 김성욱씨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을 상대로 2017년 4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1월 패소했다.

- 지난 1월 사망보험금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경기도교육청에 패소했다.
"순직 인정도 됐는데 그렇게 나와서 어이가 없었다. 아직도 미완성인 거다. 다행히 우리 초원이 하고 이지혜 선생님 이후로 기간제 선생님들도 복지제도 적용 대상이 됐다. 근데 요즘은 또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서 기간제 교사들의 계약 기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그 혜택을 못 받게 하는 데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까지 편법을 하면서 차별하고... 참 아프고 슬픈 일이다.

초원이 소송도 마찬가지다. 기간제라고 죽어서도 또 차별 받는 것 아닌가. 초원이 죽음을 위해서라도 이렇게는 안 된다. 죽음을 헛되이 하고 명예를 더럽히는 일란 생각이 들었다. 소송을 하니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러더라. 결국 소급 적용돼서 돈 더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너무... 아프다. 자식 잃은 부모한테 도대체 돈을 얼마를 준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 그런다고 애가 돌아오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가 그랬다. 2500만 원? 아이고 내가 이 소송 이기면 10원 한 푼도 안 받고 2500만 원 전액 다 초원이 모교 공주대에 기부하겠다고.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싶었다. 곧바로 항소했다."

- 힘든 싸움이다.
"힘들다. 힘들어도 어쩌겠나. 순직 인정만 해도 3년이 넘게 걸렸다. 그나마도 이건 세월호에서 순직한 초원이랑 이지혜 선생님에게만 적용되는 거였다. 앞으로 또 비슷한 일이 기간제 교사에게 벌어지면 또 우리처럼 싸워야 한다. 이게 슬프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 때마다 생각했다. 우리 딸이 하늘에서 보고 있을 거라고... 그럼 또 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딸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근에 김용균 어머니께서 언론에 많이 나오지 않았나. 나는 그분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아들 죽고 나서 법안 통과시키려고 그렇게 힘쓴 거, 왜 그랬겠나. 뭐가 좋다고? 자식 죽음을 무의미하게 남겨둘 수 없어서다. 엄청 절실하셨을 거다. 초원이도 만약 순직이 안 됐다면 그냥 무의미한 죽음으로 묻혀버리는 거 아니냐. 아이들 구하려고 끝까지 지켰는데도, 그냥, 그냥 수학 여행가다가 물에 빠져 죽은 게 돼버리는 거다. 기간제라고 끝까지 차별 받고... 그나마 순직 처리가 돼서 의로운 죽음이 된 거지..."

울분, 그리고 유머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61)를 만났다.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61)를 만났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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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생존학생들과도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했다.

"벌써 대학교 4학년이 돼서 졸업 잘하고 취직해야 한다고 걱정을 하더라고. 초원이가 담임이었던 2학년 3반 생존 학생 8명이랑도 가끔씩 연락을 해요. 특히 요맘때 되면 카톡도 오고. 벌써 다들 어른 돼 갖고 꾸미고 다니지. 남학생들은 군대도 가고. 다 컸어 인제. 초원이랑 담임으로 오래 있지도 않았는데 많이 정들어서 같이 치킨 먹고 했던 게 생각이 난대. 아이들하고 잘 어울렸던 것 같아.

한번은 남자애 한 놈이 초원이 앞에서 막 엉엉 우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그러냐, 했더니 아니 자기가 그렇게 초원이를 괴롭혔다는 거야. 초원이가 어리다 보니까 남학생들이 어깨도 치고 짓궂은 장난도 많이 치고 했나 보더라고. 애가 그냥 통곡을 하면서 선생님 너무 많이 괴롭혔다고,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안 괴롭혔을 거라고. 미안하다고. 따로따로 애들을 만나면 절대 반말을 안 썼대 우리 초원이는."


자연스럽게 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김씨는 아직 노란 팔찌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핸드폰엔 사고 직전 CCTV에 찍힌 딸의 마지막 영상이 보관돼 있었다. 자동차 뒷 유리엔 커다란 세월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61)를 만났다.
 김씨가 세월호 사고 직전 CCTV에 담긴 고 김초원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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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이는 화장품도 안 샀어 잘. 맨날 맨 얼굴로, 청바지에 운동화. 맨날 공부 얘기만 하고. 대학 가서도 12과목 A+ 받을 정도였어. 수석 졸업에. 지금 와선 아이고 그거 다 부질 없다 싶다만... 키가 173이야. 그렇게 날씬했는데 피자 한판을 혼자 다 먹었어(웃음). 화끈해 아주 우리 딸. 한다 하면 하고. 하 참, 결혼한다고 남자 데리고 오면 아주 골탕을 먹여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말이야..."

인터뷰 내내 울분이 느껴지다가도, 김씨는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멀리 대전까지 왜 오겠다는 거야? 기자들 바람 좀 쐬고 싶어서 땡땡이 치고 싶은 거면 와도 돼. 아니면 오지마"란 식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세월호 가족이란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이 그래. 왜 그리 표정이 밝냐고. 그럼 어떡하라고?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인데 보자마자 울까? 그래야 자식 잃은 사람 도리라는 거야? 잘 웃지도 못했어 지금까지. 웃으면 웃는다고 뭐라 하고, 울면 또 '쇼'한다고 뭐라 하고. 참 힘들어. 너무 힘들었어."

마지막으로 그에게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나는 사람을 안 미워 하는데,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직도 자식 잃은 사람 보고 빨갱이라 그러고 북으로 돌아가라 그러고.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우리 집에 동물이 200마리가 넘고 개도 4마리를 키우는데, 동물도 사람이 예뻐해 주면 따르고 해 되는 짓을 안 해. 아이 참. 그런 사람들 보면 마음이 아프지. 우리는 정치랑 상관 없거든. 가족 잃은 게 정치하고 무슨 상관이야. 안 그래?

절대 정치하고는 상관이 없어. 개입하고 싶지도 않고. 거기 놀아나고 싶지도 않아. 우리가 바라는 건 돈도 아니고 진상규명 그거 하나야. 우리는 그 배가 왜 그렇게 침몰했는지 원인을 알고 싶고, 또 그 당시 해경이나 고위층에서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뿐이야. 그래야 이 나라에서 다음부턴 그런 대형 참사가 안 날 거 아냐. 벌써 5년이 됐는데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잖아. 그런 참에 무슨 빨갱이라고... 아이고 참."

 
 지난 1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61)를 만났다.
 그가 바라는 건 진상규명, 하나라고 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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