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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선 반장을 만난 건 성수동 수제화카페 수다에서였다. 뚝섬역 4번출구로 나온 상원길서 멀지 않은 성동지역경제혁신센터 1층. 정원이 있고 유리창으로 넘실 넘어온 빛이 밝은, 넓은 카페. 한쪽으로는 수제화 제작 도구들이 미니박물관처럼 놓였고, 여러 회사의 반짝반짝하는 구두들이 진열됐다. 
 
그는 청소년 복지분야에서만 20년 7개월을 근무했다. 현재 그의 관심은 교육, 청년, 주민으로 확장했다.
▲ 신상선 센터장은 성동구에서 신반장으로 통한다.  그는 청소년 복지분야에서만 20년 7개월을 근무했다. 현재 그의 관심은 교육, 청년, 주민으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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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권리 쟁취하고 궁지 몰린 성수동 제화노동자들

"이 곳을 제가 만들었어요."

그건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의 '제작'이다. 형광등 대신 검은 막대 조명을 사다 달고, 병원 같은 흰 벽을 그레이로 색칠하고, 키친을 넓게 만들어 작업자를 배려한 그런 실내 구조들 따위 말이다.

그건 그가 처음 복지사 이력을 시작했던 1996년 1월 3일부터 그의 일이기도 했다. 그의 청소년 시설 입사 분야는 전기 소방 등 시설 관리였다. 그러나 업무를 대하는 그의 태도나 관심은 자연스레 밖으로 드러났고, 1년여 만에 청소년 파트로 업무 변경이 이루어진다. 그를 눈여겨 본 시설 수녀님의 적극적 추천 때문이었다.

수제화 카페 <수다>에서 만났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성수동 수제화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성수동에선 제화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뜨겁게 진행됐고, '승리'했다. 같은 해 5월 제화업체 텐디가 '투쟁승리로 임금을 인상하고, 퇴직금을 받게된' 데 따른 자극과 자신감으로 성수동 노동자들도 들고 일어났던 것.

그후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에 성수동 제화공장이 줄줄이 폐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올초부터 현재까지 지속됐다.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갖고 가는 마진율 40%와 비교해 5%의 공임을 받았던 제화공들의 작은 '권리 쟁취'가 오히려 그들을 사지로 몰아대는 현실은, 아팠다.

"최근 희망제작소에서 11인의 한국 리더들에게 이 시대의 키워드를 물었던 인터뷰집을 봤다. 조한혜정 교수는 '패닉'을 말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봤다. <선망국>이란 책을 내셨더라. 우리는 먼저 망하는 국가다. 누구도, 아무데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낀다는 거다."

청소년 시설 관련자로서, 그는 조한혜정 교수를 알고 있었다. 조한 교수는 서울시 '하자센터'를 운영했다. 청소년 시설임에도 '흡연 시설'을 만들고, 대안학교를 세우고, 탈학교 아이들의 '노리단'을 만들어 놀이를 기업으로 연결했던 경험을 그도 나누었다. 신 반장은 어떻게 현실을 보고 있을까?

"우리가 경제발전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진행시켰다. 이를 위해 가족까지 희생해 가며 과한 노동을 했다. 그 긴 와중에 '개인'이 사라졌다. 우리는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서 살았다. 나 역시 성동구청년지원센터 신상선입니다, 이렇게 인사한다. 어디 관심있는, 책읽는 누구라고 밝히지 않는다. 우린 개인이 없다. 개인의 비전과 고민 위에서, 그들 자체를 성장시키는 데 관심을 누가 보여 주었던가?"
 
2019년 3월 16일. 성동구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현재 여기의 고민을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고 연대의 힘으로 풀어갈 것이다.
▲ 성동지역주민재단 재단법인 성동인 발대식에서.  2019년 3월 16일. 성동구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현재 여기의 고민을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고 연대의 힘으로 풀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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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함과 관계를 만드는 작업 중

지난 3월 16일, 신 반장은 <성동지역주민재단 재단법인-성동인>의 출범식을 진행했다. 2015년 12월부터 차근차근 길을 밟아온 3년 3개월여만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친해사회적협동조합도 만들어 지난 2016년 6월 28일 창립총회도 치렀다. 그는 발기인 대표였다.

그를 최근에는 성동혁신계획 교육문화분과에서도 만났다. 신 반장은 내가 속한 이 분과의 분과장이기도 하고, 성동구청년지원센터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와 별로 친하지 않는 내가 이정도로 아니까, 실제로 그가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그저 짐작할 뿐이다. 신 반장에게 '현재 하고 계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주민과 청년과 교육, 이 세 가지가 현재의 관심사다. 이들 안에서, 이들 당사자들이 주체로 서시도록, 자기 소리를 내실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실패에 대해 관대해져야 한다."

그는 2016년 7월 30일부로, 성동청소년수련관에서 퇴직했다. 만 20년하고도 7개월의 기간. 그동안 그는 청소년 복지 분야에서 커온 전문가였다. 2008년 1월엔 단순히 청소년 파트에서만 말고, 적자에 허덕이던 수련관 전체의 운영을 맡았다. 재정 상황은 3년여 만에 정상화(흑자)됐다.

외연도 확장했다. 청소년만이 아니라, 수련관만이 아니라, 학부모들과도 연계하고 지역사회와도 손을 잡았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지역주민재단을 추진할 수 있는 자원과 배경은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그는 안온한 곳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대신, 실패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의 손을 잡기로 했다.
 
청계천 중랑천을 경계로 성동구는 서북부와 남동부로 나뉜다. 1976년 ’풍천합성‘의 여성노동자들이 성수동에서 한양대까지 벌인 시위, 신금호와 행당에 지하철 5호선 건설 계획과 함께 불어닥친 재개발과 철거민들의 투쟁은 성동구 운동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 2019년 현재 우리는 어떤 운동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 청계천 중랑천을 경계로 성동구는 서북부와 남동부로 나뉜다. 1976년 ’풍천합성‘의 여성노동자들이 성수동에서 한양대까지 벌인 시위, 신금호와 행당에 지하철 5호선 건설 계획과 함께 불어닥친 재개발과 철거민들의 투쟁은 성동구 운동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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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정된 다음 약속을 13분 넘겼다"고, 했다. 그러고도 그는 내 말을 더 듣고, 그의 이야기도 더 했다. "건강마을치과를 주목하고 있다. 이제야 겨우 흑자로 전환됐다. 이곳이 더욱 잘되어 우리들의 든든한 재정적 버팀목이 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곳은 성동주민들이 5만 원씩 조합비를 내 창립한 곳이었다.

신 반장은 '동네 미용실'을 만들 계획도 말했다. 동네 정보가 모두 모인 곳. 이야기들의 창구, 창고가 될 곳이었다. '동네 철물점' 플랜도 갖고 있다. 독거 노인들이 집에 달려가 형광등도 갈고, 문짝도 고쳐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 관계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고 묻어 있었다.

패닉(panic, 恐惶)에 빠진 대한민국은 구원될 수 있을까? 조한혜정 교수의 <선망국의 시간>을 찾아봤다. 문화인류학자가 보지 않아도 우린 '먼저 망해가는 나라'가 맞았다. 하지만 거기 역설적 희망이 있었다. 이렇게나 아프고 어두워, 누구든 행동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됐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문제를 풀어갈 주체일 수도 있다는 것.

재단법인 성동인 발기식에서 한 문구를 봤다. '관심이 참여를, 참여가 책임을, 책임이 힘을'. 나는 비록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설립기금 통장에 돈을 보내고, 연회비로도 이체를 했다. 사랑 없이 줄 수 있지만, 주는 것 없이 사랑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내 아픔을 어떻게 누가 치료해 갈 것인가는 분명했다.  

선망국의 시간 -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조한혜정 지음, 사이행성(2018)


태그:#조한혜정, #선망국의시간, #신상선, #성동지역주민재단, #성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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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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