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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페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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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는 늦어도 오는 2021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2일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제269조 '낙태의 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2020년 말까지 국회가 낙태죄가 사라진 자리에 어떤 조건과 정책들을 채워 넣는지에 따라 그 세부적인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임신 중절로 인한 처벌은 우선적으로 삭제될 것임이 확실하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병원에서 임신 중절이 가능해진다'라는 한 줄의 변화를 넘어서 우리 삶 다양한 부분에서의 완전한 변화가 예고된다. 낙태죄 폐지는 임신과 출산의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아마 낙태죄 폐지의 기분 좋은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는 부분은, 우리의 '섹스'가 될 것이다.
 
섹스는 평등했던 적이 없다
 
이성 간의 섹스가 결코 평등하지 못하다는 혐의를 받아온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의 몸이 임신이 가능한 몸이라는 데 있었다. 여성과 남성이 상호 동의 하에 섹스하더라도 여성의 경우엔 '임신에 대한 불안'이 성적 쾌락의 총량에서 뺄셈 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피임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 모두가 한쪽 성별에만 쏠리게 됐다.
 
이렇듯 불평등한 섹스에 대한 저항은 여성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져 왔다. 피임에 대한 유념은 물론이고, 임신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해 삽입 섹스를 거부하는 방식도 가능했다. 하지만 둘이서 하는 섹스의 또 다른 주체인 남성들의 협조와 지지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성들은 섹스를 눈 앞에 두고 임신을 걱정하는 여성들에 대해 '유난 떤다'는 식으로 반응하기 일쑤였으니까.
 
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어디서나 인류 공통의 흥미이자 호기심,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그것은 전적으로 쾌락의 영역이었다면, 여성들에게는 달랐다. 쾌락의 크기 만큼이나 커다란 것이 공포와 불안의 크기였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그 공포의 크기를 줄이기는커녕 더 단단히 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선봉에는 형법 제269조, 낙태죄가 있던 것이었다.
 
'섹슈얼리티'의 주체로 올라서기 위한 첫 발걸음   섹스를 하기로 선택하는 것, 섹스를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모두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개인적인 지향과 사회적인 영향이 복합된 결과이다. 이 과정 안에서 어떤 여성들은 섹스를 하기로 선택해왔을 것이다. 평등하고 건강하게 섹슈얼리티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인 토양이 척박하더라도, 성적인 쾌락을 자체적으로 검열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몸에 대한 국가의 강도 높은 통제인 낙태죄가 존재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섹슈얼리티의 주체로 올라서고자 하는 여성들의 모든 행동은 그 자체로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여성들은 이제야, 그 쾌락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욕심을 낼 수 있게 됐다. 이것은 즉 이성 섹스 관계에서 파트너와 '거의' 동등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연애'와 '성 해방' 등의 근대적인 개념이 우리 사회에 들어온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 개념이 여성의 충분한 기쁨을 동반하며 발휘되기까지는 한참이 걸린 셈이다. 낙태죄가 폐지되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갈 길이 멀다. 그렇지만 우리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명백하게 약속받은 딱 한 가지가 있다면, 여성들은 이제 '최악을 대비'하지 않아도 되는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섹슈얼리티, 법, 국가  
   
 나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름대로 안전하게 섹스하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대개 남자에게 배우는 섹스는 그 자체로 한계적이다.
 여성들은 이제야 온전한 "쾌락"에 욕심을 낼 수 있게 됐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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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가가 더 이상 개인의 신체를 통제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선언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낙태죄 폐지가 그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논의를 넘어, 다양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로 넓게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배경이다.
 
섹슈얼리티의 개념은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엔 힘이 든다. '성 행위'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성적 기호와 성행위를 아우르는 모든 행위와 욕망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더 본질로 들어가자면 '섹스와 젠더, 그리고 남녀이분법과 권력 관계,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이외의 성별 등'에 관련한 모든 논의를 말한다. 당연히 이는 국민의 다양한 생애주기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낙태죄 폐지는 여성들이 지고 있었던 짐을 하나 덜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동안의 '섹슈얼리티 통제'에 대한 해제 조치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줄수밖에 없는 이유다. 낙태죄 폐지는 다양한 모습의 생애주기를 국가가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당신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낙태죄 폐지'의 유쾌한 간섭을 생의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낙태죄가 사라진 자리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투쟁은 끝이 났다. 오늘부터는 기분 좋은 투쟁의 시작이다. 낙태죄 폐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후피임약과 먹는낙태약(미프진)의 쉽고 간편한 처방이다. 또한 임신 제1삼분기(수정 후 14주 이내)엔 여성이 임신중절을 선택할지 말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여성 스스로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신체적-정신적 외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신중절 전후로는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돌봄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국가의 다정한 태도 역시 중요하다.
 
2019년 4월 11일은, '검열'과 '통제'라는 국가주의와 가부장제의 핵심 권력을 여성의 삶과 체험, 여성의 언어로 품위 있게 부숴버린 날이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새로운 세계, 더 다양한 섹슈얼리티와 삶의 형태를 국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나라가 우리 앞에 펼쳐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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