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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쌈꾼(혁명가)', '거리의 투사' 이 말 모두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계신 백기완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생님은 민중을 위한 일이라면 앞장서기 주저하지 않으셨다. 평생 '니나(민중)'를 위해 거리에서 불쌈꾼으로 살아오신 선생님께서 최근 <버선발 이야기>란 책을 내셨다.
  
백기완 선생님 2017년 3월 11일 박근혜 탄핵이 인용된 다음날 촛불집회에서 선생은 무대에 올라 열변을 토하셨다. 처음부터 광장을 모두 떠난 뒤에도 선생님은 민중과 함께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오셨다.
▲ 백기완 선생님 2017년 3월 11일 박근혜 탄핵이 인용된 다음날 촛불집회에서 선생은 무대에 올라 열변을 토하셨다. 처음부터 광장을 모두 떠난 뒤에도 선생님은 민중과 함께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오셨다.
ⓒ 채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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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만도 안 되는 지역에 살다보니 읍내 서점에서 책을 제때 못 구하다 며칠 전에 주문해서 받았다.

양양읍내 현산공원과 남대천 벚꽃이 만개해 사진을 촬영하러 나갔을 때, 우체국에서 부재중 배달할 장소를 지정해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행여 잃어버릴까 싶어 한달음에 달려와 도착한 책을 들고 다시 사진 촬영을 하던 곳으로 갔다.

벚꽃이 만개한 화창한 봄날 남대천에서 사진촬영을 마치자, 저녁나절 다시 와서 촬영을 하리라 작정했다. 그리고 양양읍내의 또 다른 벚꽃 명소인 현산공원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폈다. 집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편하게 읽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현산공원 벚꽃이 만개한 4월 3일 버선발 이야기가 도착했다. 책을 들고 현산공원을 찾았다.
▲ 현산공원 벚꽃이 만개한 4월 3일 버선발 이야기가 도착했다. 책을 들고 현산공원을 찾았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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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 이야기 벚꽃이 활짝 피고 햇살 포근한 현산공원에서 책을 읽기엔 더 없이 좋았다. 책을 읽던 중 잠시 시간을 내 촬영했다.
▲ 버선발 이야기 벚꽃이 활짝 피고 햇살 포근한 현산공원에서 책을 읽기엔 더 없이 좋았다. 책을 읽던 중 잠시 시간을 내 촬영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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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를 잃어버릴세라 분리해 가방에 구겨지지 않게 넣고 책날개의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읽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독자들에게 하신 "글쓴이의 한마디"를 읽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그마치 여든 해가 넘도록 내 속에서 홀로 눈물 젖어온 것임을 털어놓고 싶다. 나는 이 버선발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니나(민중)를 알았다. 이어서 니나의 새름(정서)과 갈마(역사), 그리고 그것을 이끈 싸움과 든메(사상)와 하제(희망)를 깨우치면서 내 잔뼈가 굵어왔음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난해엔 더 달구름(세월)이 가기 앞서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글로 엮으려다가 그만 덜컹, 가슴탈(심장병)이 나빠져 아홉 때결(시간)도 더 칼을 댄 끝에 겨우 살아났다. 이어서 나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몰래몰래 목숨을 걸고 글을 써 매듭을 지은 것이 이 버선발 이야기라… 이하 생략

 
 
그렇게 버선발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날이 저물 때까지 단숨에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석양이 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는 걸 느꼈다. 아마도 책을 다 읽지 못했다면 어둠이 내려 가로등이 켜지고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도 모르고 있었을 듯싶다.

다른 날 같으면 새벽부터 글 한 꼭지 시작해 오전 중에 마무리 짓고 뭔가 다른 일을 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책 속에서 만나는 선생님의 우리말 풀이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단어 하나하나 일일이 자판을 두들겨 입력해 나가며 때때로 다시금 책을 펼쳐 그 낱말들의 쓰임을 살피다보니 저녁이 됐다.

그리고 인제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다시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근처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악산 주변이야 오래전부터 발길 닫는 대로 돌아쳤기에 그 지점이 대략 어떤 위치인지 안다. 종일 식사도 안 했단 걸 깨닫고 저녁밥부터 먹고 가방을 챙겨 나섰다. 문득 "선생님의 책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문을 열고 가방에 책을 챙겨 넣었다.

불쌈꾼으로 일생을 살아오신 선생님께서 민중에게 간곡하게 스스로 판을 깰 길을 찾으라는 말씀을 담은 책이 함께 해서였을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계획한 바 없이 풀어나갈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 누군가 곁에서 일일이 챙겨주지 않음에도 뜨거운 불길 사이를 오가며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안전했던 것도 이상한 경험이다.
  
버선발 이야기 산불이 번지는 현장에서 이틀 동안 함께했던 백기완 선생님의 버선발 이야기, 숙소에서 사진을 편집하고 글을 쓰는 틈틈이 인터넷이 느려 기다릴 때마다 몇 줄이라도 읽었다.
▲ 버선발 이야기 산불이 번지는 현장에서 이틀 동안 함께했던 백기완 선생님의 버선발 이야기, 숙소에서 사진을 편집하고 글을 쓰는 틈틈이 인터넷이 느려 기다릴 때마다 몇 줄이라도 읽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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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 이야기 책갈피가 없으니 숙소에 있던 화장지를 잘게 잘라 그걸로 책갈피를 대신했다.
▲ 버선발 이야기 책갈피가 없으니 숙소에 있던 화장지를 잘게 잘라 그걸로 책갈피를 대신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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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일시적으로 현장을 떠나 전기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산불 때문에 언제 전기를 차단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이 지나는 길목에서 최대한 벗어난 지역) 장소로 이동해 숙소를 잡고 현장 상황을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송고하며 틈틈이 다시 책을 펼쳐 놓고 읽었다.

때때로 "아, 이 대목은 버선발 이야기를 읽은 감상문을 쓰게 되면 꼭 인용해야겠다" 싶은 구절엔 숙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장지를 잘게 찢어 표시를 해가며 노트북과 책 사이로 시선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요 땅덩이 놈 요놈, 우리 엄마 괴롭히는 놈 요놈, 네 놈을 알알이 앙짱(박살) 낼 때까지 내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어림없는 소리. 내 끝까지 네놈을 콩가루로 알랑알랑 바술 때까지 짓이기고 말 거다. 우리 엄마 울리는 요 우라질 땅덩이 놈 요놈….' 「버선발 이야기 90쪽, '나 아직은 살아있어 엄마' 중에서」
 
 
여섯 살이 되자 눈 내리는 밤 머슴으로 끌려가게 된 버선발을 엄마는 자신의 하나 뿐인 겨울저고리를 입혀 물푸레나무 지팡이 하나, 나무칼 하나 쥐어 주고 도망치게 한다. 그리고 버선발을 잡으러 왔던 추격꾼들에게 발가벗겨진 채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헤어진 엄마가 잠꼬대로 외쳤던 그 원수 같은 땅을 짓찧는 것이다.

'머슴'이란 거… 세상에 머슴 아닌 사람 어디 있으랴. 모두 누군가에 속박되어 평생을 허덕이고,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나 무엇인가에 빠져 자신이 머슴인 줄 모르고 살아갈 뿐이지 않은가.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을 때 거기 모두 다 같은 평화와 공존을 목적으로 나섰던가? 어쩌면 선생님께서 단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앞장 서셨던 이유가 각자의 이해와 타산마저 촛불에 태워버리라 일깨우시기 위함 아니었을까.

엄마는 곧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세상이고, 그런 엄마를 괴롭히는 땅은 가진 자들이 세상 모든 걸 복속시키기 위해 알량한 제도라는 허울이 아닐까. 한 시간에 만 원을 주면 경제가 망한다고 악다구니를 쓰다가도, 제 주머니를 채울 때는 슬그머니 그 시간당 만 원의 몇 곱절씩 더 받아내는 거짓된 자들만을 위한 제도 말이다.

다시 <버선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말이다. 빌뱅이가 찾아오면 식은 밥 한 술을 쪼개주고는 나누어주었다 그런다. 그것도 눈물겹게 아름다운 마음이긴 하다. 하지만 가난은 말이다, 가난이란 그렇게 새름(정)만 나누어서 풀리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한 술 식은 밥이 아니라 솥째 빼주신 것은 무어냐. 그건 가난은 함께 갈라 쳐야 할 거친 수렁, 사람과 사람의 새름까지 삼키는 고얀 것들의 끔찍한 빨대, 그것을 뿌리부터 발칵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런 뜻이란 말이다."「버선발 이야기 133쪽, '사람이라는 것의 뜸꺼리' 중에서」
 
 
어려운 말로 사람들의 귀를 틀어막고, 그게 자신이 아주 대단히 잘난 인물로 보이는 줄 착각하는 무지몽매한 자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이상한 현상을 맨날 보게 되니 눈이 어지럽다. 민중이 신명을 누리며 살아갈 따사로운 정서가 바탕이 된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그리하여 제도로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함이 옳은 일이다.

그런데 민중에게 빼앗기 위한 제도로 착취하던 자들이 설치던 과거를 역사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들이 자신만을 위해 착취를 순조롭게 하려고 만든 허무맹랑한 규칙을 법이라 우기지 않던가.

선생님은 버선발의 동무인 개암이의 입을 통해 민중들이 깨닫게 하고자 한다. 민중에게 대물림 된 가난이 몇 푼 동정만으로 해갈될 턱이 없다. 아니 나눔보다야 틀림없이 아름답게 보이긴 한다. 하지만 함께 갈라 쳐야 할 수렁처럼 여기고 뿌리부터 완전히 발칵 뒤집어엎을 때에야 온전히 민중의 지독한 통증이 아물게 된다.

그런데 민중은 과연 그렇게 할 줄 알까? 당장의 내 이득부터 챙기기 바쁘지 않은가? 나 아닌 네가 해서는 안 되고, 나는 옳은데 너는 틀리다고 떠들지 아니 하드냔 말이다. 그리고 너는 나보다 덜 가져야 된다는 뚱심을 도사려 품고 있지는 아니 하드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려고 하면 말이다. 아무려나 사람부터 바꾸어야 하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는 이 살곳(사람이 사람으로 살 만한 곳)을 따로 떼서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과 함께 사람의 이 얄곳(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곳)을 아울러 바꾸어야 한단 말이다." - <버선발 이야기> 135쪽, '사람이라는 것의 뜸꺼리' 중에서
 
 
"개벽이 일어나기 전엔 어림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스스로를 깨우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더란 말이다. 스스로를 깨우치는 게 개벽인데 그걸 남 탓으로만 돌리고 순순히 머슴질을 하러 들어가더라 말이다. 종놈은 그나마 먹고 자는 문제는 해결되니 머슴질을 떠나 종놈 질을 선택하기 주저하지 않더란 말이다. 그러면서 개벽 타령을 하니 세상이 변하겠나.
  
현산공원 점심 무렵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할 때 본 현산공원의 풍경이다. 다 읽고 났을 땐 해가 기울고 석양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 현산공원 점심 무렵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할 때 본 현산공원의 풍경이다. 다 읽고 났을 땐 해가 기울고 석양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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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모르겠다. "동지인 줄 알았는데 영 싹퉁머리 없고 모진 놈이더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받더라도 내가 <버선발 이야기>를 통해 선생님께서 민중에게 전하고자 하신 바라 느낀 걸 밝혀야 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당차게 먹고 힘을 모아 본 적이 있는지, 그래서 반드시 그 목적에 이르렀는지 묻고 싶다. 비정규직만 나라와 사업자가 찾아 일자리가 늘 불안하다면 모두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만 주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 터무니없이 이익만 내려는 못된 장사치가 있다면 모두 합심해 팔아주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들 하는지 보자. "저놈이 잘리면 내가 일을 할 수 있어"란 비열한 생각을 품지 않았던가. "비정규직이면 어때, 잘하면 정규직으로 올려줄지도 모르잖아" 이런 생각으로 누군가는 반드시 대열을 이탈해 "언제든 그 일 할 놈들 줄을 서 있거든" 하게 만든 게 누구인지 먼저 챙겨 볼 일 아닌가.

욕심 가득한 못된 장사치는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도 아무도 거들지 않으면 되고, 아예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문을 닫던가, 이참에 개과천선해서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우리 가족들이 날 위해 열심히 일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마다 찾아주시는 저 분들이 우리 가족 모두를 살 수 있게 하니 얼마나 고마운가. 나도 베풀며 살아가야 돼" 하고 실천하게 될지.

밖에서 깃발 휘날리며 일자리를 달라고 외칠 때 나는 안에서 구경하며 "내 일이 아니니 다행이지. 저 사람들은 매일 저러니 저렇게 살 수밖에 없어"라 했었기 때문에 오늘 내가 밖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게 된 건 아닌가, 돌이켜 반성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의 아픔을 내 아픔만큼 아리게 생각했을 때 우리 모두가 좋은 세상을 만나 살아가는 법이니.

일생을 민중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참다운 살곳을 위해 불쌈꾼으로 앞장 서셨던 선생님께서 <버선발 이야기>에서 하시고자 한 말씀은 여기 더 이상 선생님의 책 내용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무얼 향한 손짓인가 민중은 깨달아야 된다.

선생님이 바로 버선발이시다. 선생님께서 "노나메기"라 하신 그 말씀 한 마디가 이미 톡배 놈을 짓이겨 버린 버선발의 발 궁구르기다. 민중이 어떻게 행동해야 반듯하고 흔들림이 없이 앞으로 나가는 길을 여는가를 이르는, 무명옷을 지을 때 바느질 길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공그르기와 같은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남아 있는 납쇠와 쫄망쇠, 빽쇠까지도 모조리 선생님이 들어내주길 손 놓고 기다려야 할까? 박땀, 안간땀, 피땀, 무지땀을 착취 당한 니나가 정신 번쩍 차림이 진정한 노나메기 세상이다.

민중이 스스로 사람임을 외칠 줄 아는 것, 사람이란 걸 스스로 알아 외칠 줄 아는 그 순간부터가 온갖 사슬로부터 풀려 해방을 맞는 거란 얘기다.

그리고 끝으로, 4월 23일 저녁 7시부터 8시 반까지 중구 정동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행사를 한다는데, 시간이 어찌 될지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수는 없으나 어떻게든 그때 선생을 뵐 예정이다. 그런데 서명을 부탁드릴 기회나 있을지 모르겠다.
 
 4월 23일(화)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 ‘버선발 이야기’ 출판기념 한마당 행사가 백기완 선생님을 모시고 열린다.
 4월 23일(화)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 ‘버선발 이야기’ 출판기념 한마당 행사가 백기완 선생님을 모시고 열린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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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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