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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일주일 앞둔 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 모습.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일주일 앞둔 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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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시작되자마자 학교는 추모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이달 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학생회 아이들의 손길이 바빠진 것이다. 지난 1일, 과거 같으면 만우절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몇몇 아이들이 4월 16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듣곤 교사로서 내심 뿌듯하고 그들이 대견스러웠다.

잔인한 달 4월은 아이들에게 오로지 '세월호의 달'로 기억된다. 5.18을 겪은 이곳 광주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특히 4.16이라는 숫자에 예민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몇 달 만에 시민들이 상주를 자처하며 모임을 만들어 매주 촛불을 켜고 추모 행사를 이어온 곳이 바로 이곳 광주다.

우리 학교도 이듬해 4월 16일에는 학교와 가까운 근린공원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추모제를 열었고, 학사일정에 세월호 희생자 추모 주간을 만들어 해마다 추모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교문 옆 가로수 길에 매단 노란 리본 띠는 만 3년이 지난 재작년에 거두어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다섯 해째다 보니 아이들도 이젠 4월만 되면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할 정도라고 말한다.

올해도 추모 행사와 관련된 아이들의 아이디어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강당에 모여 추모 공연을 하자거나, 예년처럼 안산이나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자는 의견은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했다. 많은 아이들이 식상하다고 지적하면서, 5주기인 올해만큼은 추모의 의미와 참여하는 재미를 동시에 지닐 수 있는 행사여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16일 당일 교복 대신 노란색 티셔츠를 갖춰 입고 등교하자는 것부터,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세월호 관련 영화를 단체 관람하자는 의견, 점심시간 때 플래시몹을 통해 추모의 마음을 표현해보자는 제안까지 그야말로 백화제방이었다. 아예 저녁 시간 운동장에서 촛불 집회를 재현하자는 아이도 있었고, 유가족에게 편지를 써서 잊지 않았음을 보여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간 셈

토론 끝에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일사불란하게 대형 리본을 그린 뒤 흩어지는 플래시몹을 하기로 의견이 모였다. 모이는 시간에 맞춰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른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를 틀어 추모의 의미를 더한다는 계획이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많아질수록 과목별로 진행되는 계기 수업의 효과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다.

관건은 노란색 옷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다. 학생회 주도로 때아닌 '노란 옷 찾기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없다면 친척이든 이웃이든 수소문해보라며 친구들을 독려하고 있는데, 여간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한 아이는 단체로 주문하지 않으면 운동장에 대형 리본을 그리기는커녕 숫자가 모자라 데면데면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노란 옷이면 더 좋겠지만, 굳이 옷 색깔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자발적으로 운동장에 뛰어나와 리본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형식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거다. 노란 옷이 없으면, 모자도 좋고, 하다못해 노란 손수건을 가지고 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추모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고 친구들을 설득했다.

덩달아 교사들도 추모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급식소 앞에서 간이 추모 공연을 열기로 했다. 어쭙잖은 실력에다 고작 기타와 카혼 반주에 마이크 하나뿐인 '버스킹' 형태의 공연이지만, 부러 바쁜 일과 중에 짬을 내 아이들과 함께 모여 곡을 정하고 연습하는 과정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논의가 얼추 마무리될 무렵, 한 아이가 느닷없이 추모 행사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갑분싸',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그는, 참사가 터지고 한두 해까지는 '기레기'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추모 행사가 유가족들이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역할이라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행사를 위한 행사'일 뿐이라고 작심한 듯 내뱉었다.

"대통령이 쫓겨나고 정권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해마다 기념일 치르듯 관행적으로 여는 추모 행사가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 곳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냉소만 가득한 그의 반문은 기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다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죽비소리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세월호 추모 행사엔 빠짐없이 참여해왔고, 주말마다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는 그다. 지금도 촛불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집단적인 의사 표현의 대표적인 수단이지만, '촛불'만 있고 '정신'은 사라진 듯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돈보다 생명이, 이윤보다 안전이 먼저'라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가 멀다고 뉴스에 오르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사망 사고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는 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 본디 그런 모양'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부모님의 넋두리에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단다. 

아직 고등학생인 그의 냉소가 더 이상 낙담과 절망에 빠져들기 전에 기성세대는 그에게 희망의 근거를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가 교실을 떠나며 툭 던진 이 말에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5주기라는 게 순간 무색해졌다.

"지금껏 우리는 숱한 대형 참사를 겪었고, 그때마다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그런데도 그때뿐 비슷한 참사는 반복됐고, 다짐은 늘 빈말이 되고 말았죠. 곧, 우리는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사회였던 거죠. '당한 사람만 손해고, 죽은 사람만 불쌍한' 사회라면, 그런 곳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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