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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에서 감동과 성찰을 얻을 때가 많다고 얘기하면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머리가 허연 사람이 카페에서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읽고 있다거나 주위에 그런 책들을 권한다면 평범하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리는 문학 관점에서 어린이 문학을 한 번 바라보자. 어린이 시선으로 보면 새롭게 보이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되어도 미처 몰랐던 것이나 오래전에 잊었던 가치를 깨닫게 되기도 하고.

내가 참여하는 어느 공부 모임에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 여럿 있다. 몇 주 전 그 모임에서 어떤 교사가 자기 반 여학생이 여동생과 겪는 갈등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교사들이 자기 학교에서도 비슷한 갈등을 겪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며 공감을 했다. 또 모임의 다른 사람들도 어릴 적에 비슷한 갈등을 겪었노라는 회상도 했다. 

나는 터울이 많이 나서 외동처럼 자라고 아들만 하나 있어서 그런지 그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어린 그들 사이에 왜 갈등이 생기는지는 호기심이 생겼다. 형제나 자매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감정의 골짜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기에 갈등으로 커지는지 그들 감정이 닿는 곳에 따라가 보고 싶어졌다.

이런 경우에 난 동화를 찾아본다. 그들의 속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나 자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소재로 한 동화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동생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하는 이야기에 눈이 갔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길래 동생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릴까?

카스텔라로 변한 동생, 하서찬 '빵이 된 동생'
    
 제10회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수상한 책으로 <빵이 된 동생> 등 단편동화 세 편이 실렸다.
▲ <빵이 된 동생>이 실려 있는 하서찬의 <빨래는 지겨워>  제10회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수상한 책으로 <빵이 된 동생> 등 단편동화 세 편이 실렸다.
ⓒ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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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동생을 먹음직스러운 빵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서찬이 쓴 <빨래는 지겨워>에 실린 단편 '빵이 된 동생'에 나온 아이가 그렇다.

어느 날 엄마가 외출한 사이 동생이 빵이 되었다. 그것도 이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코 카스텔라로. 동생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빵이 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초코 카스텔라가 되어 있다니."

게다가 평소 씻는 걸 싫어해서 쿰쿰한 냄새가 나던 동생이 카스텔라가 되더니 기가 막힌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닌가. 마침 이 아이는 배가 무척 고프다. 점심 때가 훌쩍 지나기도 했고. 아이는 "혹시 악마가 나를 시험하려고 여기 놔둔 건 아닐까"라며 갈등한다. 살짝이라도 뜯어먹었다가 동생이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도 하고.

카스텔라를 먹고 싶을수록 동생 때문에 엄마에게 혼난 순간이 기억난다. 짜증 난 아이는 살짝 타협하고 조금 뜯어 먹으니 맛있고 더 먹고 싶어진다. 결국, 계속 뜯어 먹는 아이. 그런데, 덜컹! 엄마가 돌아왔다. 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화다운 반전이 결말에 숨어있다.

이렇듯 '빵이 된 동생'은 평소 동생을 좋아하지 않던 형의 감정을 아이의 시선으로 잘 그렸다. 특히 형으로서 동생을 챙기려던 마음을 깨달으며 한 걸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이 작품이 실려있는 하서찬의 동화집 <빨래는 지겨워>는 제10회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수상 했다. 그만큼 탄탄한 구성의 단편동화를 읽어볼 수 있다.

그런데 빵으로 변한 동생은 냄새라도 좋지. 동생을 심지어 쓰레기로 만들어 버린 동화가 있다.

쓰레기로 변한 동생, 최동영 '레기, 내 동생'
 
제8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이다.
▲ 최도영의 <레기, 내 동생> 제8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이다.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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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형 서점 어린이 책 코너에 가면 눈에 확 띄는 책이 있다. 최도영이 쓴 <레기, 내 동생>이 바로 그 책. 이 작품은 제8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이다. 표지를 보면 10리터 쓰레기봉투에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모습을 어떤 여자아이가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상황이 그려지지 않는가? 제목의 '레기'는 쓰레기의 준말일 테고 얼굴이 그려진 쓰레기봉투는 바로 동생일 테니. 서점 매대 앞 어린이들이 배꼽을 잡으며 "헐, 동생이 쓰레기로 변했대"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한동안 인기도서로 자리 잡을 듯하다.

서사는 단순하다. 여동생 때문에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언니는 동생을 두고 "물건 같으면 확 내다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담아 동생 이름을 갖고 낙서도 하고. '레미'이니까 미를 기로 고치고 쓰를 앞에다 붙여서 '쓰레기'라면서.

다음날 일어나 보니 동생은 안 보이고 10리터 쓰레기봉투가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이후 흐름은 동화답게 흐른다. 동생이 쓰레기로 변한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언니는 별의별 방법을 써가며 되돌리려 노력을 한다. 그 과정에서 언니는 동생의 마음을, 동생은 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어느덧 서로를 의지하거나 아끼고 있었던 것. "아, 이런 동생을 버리려고 했다니!"

결말은? 고생 끝에 잘 해결된다. 물론,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다. 그냥 재미있고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 번 더 비틀었다. 그 장면이 어쩌면 동화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어떤 반전인지는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결말쯤 훅 들어온 의외의 한 방이었다.

<레기, 내 동생>에 등장하는 언니는 동생을 부모 사랑을 두고 경쟁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나이는 더 많지만 성숙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마는. 그렇지만 언니는 언니다.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깨닫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에서 언급한 두 동화는 같은 성(性)으로 태어난 동생과 갈등을 겪는 형 혹은 언니의 심리를 다뤘다. 그 갈등은 동생들을 사람이 아닌 사물로 만들어 버리고, 또 그렇게 만든 후 겪는 죄책감을 다뤘다. 그 죄책감 때문에 형 혹은 언니에게 주어진 책임감을 다시 깨닫게도 하고.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리 없는 이야기로 아이들의 고민과 감정을 잘 풀어낸 동화들이다. 형제나 자매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들이기도 하고.

그런데 어떤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형제자매 혹은 남매 이야기를 동화에서나 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안 낳거나 하나만 낳는 세상이 되어가기도 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하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레기, 내 동생 - 제8회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최도영 지음, 이은지 그림, 비룡소(2019)


빨래는 지겨워 - 제10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하서찬 지음, 애슝 그림, 웅진주니어(2018)


태그:#빵이 된 동생, #레기 내 동생, #웅진주니어 문학상, #비룡소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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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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