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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흔히 때가 되기도 전에 결과부터 얻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인데요. 오늘은 이 속담에 어울리는 기사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충북대 로스쿨, 10년간 장학금 8억원 받아…사회 환원은 760만원
 
지난 4월 7일 몇몇 언론사가 '충북대 로스쿨에 입학하여 졸업한 학생들이 많은 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그를 환원하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보도한 기사 중 하나입니다.

기사에서는 장학금 지급 취지가 애향심 고취, 지역사회 기여라면서 타지로 떠나는 로스쿨생을 장학금을 받고 '먹튀'한다며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서 비난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충북 인재양성재단이 충북대 로스쿨에 지금까지 8억 원이라는 큰 돈을 기부했으나 충북대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들이 이 재단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돈은 지금까지 760만 원에 그친다고 합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문제는 팩트에 대한 비판이 타당하느냐 입니다.
 
자랑스러웠던 충북의 자식들, 단지 로스쿨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외지인이 되어야 하나요?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이후 정시모집이 끝나면 고등학교마다 요란스러운 현수막이 걸립니다. '자랑스런 000, 000대학 00학과 합격'이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학의 서열별로 이름이 도열되어 있는 이 현수막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입니다. 이 학생들 중 충북지역사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 사람들은 해당 학생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우리 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자랑스러운 000이 서울에 있는 명문 00대학교에 입학하였다고 하면서요. 그 사람이 충북지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자랑스러운 그 지역의 인재로 남습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충북대 로스쿨에 입학해서 충북 인재양성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도 대부분 '자랑스러운 충북의 자식들'입니다. 이들은 충북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거치고 대학을 타지로 갔거나 대학도 충북에서 나온 이들입니다. 그런데 단지 로스쿨에 입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자랑스러운 충북의 자녀에서 '먹튀'로 평가받게 된 것입니다.
 
충북대학교 로스쿨은 지역사회 법조인 공급에 전국 평균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2019년 4월 9일 충북지방변호사회에 확인해 본 결과 2011년 92명이었던 충북지역 변호사 숫자는, 7년 만에 162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이 증가율은 로스쿨이 도입되며 증가한 법조인의 비율과 거의 일치하는 수치입니다. 즉 충북대 로스쿨은 다른 지역의 로스쿨이 지역사회에 공급하는 법조인의 숫자 만큼을 충북지역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혹은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비단 로스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만을 특정하여 '먹튀'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요.
 
로스쿨은 귀족학교가 아닙니다. 또 로스쿨생과 다른 이들의 고난은 같은 고난입니다
 
해당 기사에서는 로스쿨 학생 1인이 받는 장학금이 중학교(30만 원)의 8.3배, 고등학교(90만 원)의 2.8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 심기보 충북도의회 부의장이 지난해 7월 제366회 도의회 임시회 때 "장애 학생들보다 로스쿨 학생이 더 많은 금액의 장학금을 받는데, 이들이 장애 학생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냐"라고 한 발언을 인용해 충북대에 지급되는 장학금이 과도하다고 애둘러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의 금액에 차이가 나는 것은 중고등 학교의 등록금과 로스쿨의 등록금에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또 장애 학생들과 로스쿨 학생들은 어느 한쪽이 더 지원을 받아야 하는 그런 우열관계가 있는 지원대상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따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입니다.

해당 발언을 올바로 수정한다면 '로스쿨 학생들이 이렇게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장애학생들은 그보다 적은 금액을 지원받고 있다. 따라서 장애학생을 지원하는 금액을 더 확충해 보자. 아니면 양자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보자' 가 아닐지요.
 
또한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의 말을 인용해 '로스쿨이 귀족학교'라고 단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미 로스쿨생들의 가계소득이 일반 학부생과 비교하였을 때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자료들이 다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기고] 로스쿨생은 정말로 금수저인가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25) 특정 주장을 마치 팩트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장학금을 받은 이들을 '먹튀'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충북지역사회에서 많은 장학금을 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충북대학교 졸업생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스쿨 1기가 변호사로 자리잡은 지 이제 7년입니다. 그들도 지금까지 공부하며 늘어온 빚을 갚고, 가계를 꾸리는데 자신들이 번 돈을 다 쓰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치이는 평범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학금을 기탁하는 나이 때가 이미 나름 일가를 이룬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이후부터임을 감안한다면, 그들에게 은혜를 갚을 시간을 좀 더 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지요.

태그:#로스쿨, #장학금, #충북참여연대, #지역인재, #충북변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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