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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고양이 섬으로 알려진 곳들이 꽤 여럿 있다. 대개 처음에는 섬에서 쥐잡이 목적으로 데리고 들어온 고양이들인데, 워낙 빠르게 번식하다 보니 지금은 수백 마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는 섬마을인데도 고양이가 많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관광객들이 연이어 찾아오곤 한다. 

수백 마리 고양이가 있는 아이노시마 

그중에서도 아이노시마는 사람보다 고양이의 묘구 수가 훨씬 더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하루에 딱 두 차례만 작은 배가 운항하고, 그나마도 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갑자기 운항이 취소되기도 한다. 

막상 들어가면 간이 화장실만 하나 있을 뿐 관광객을 상대로 한 수익 활동도 하지 않고 편의점조차 하나 없는 한적한 섬이다. 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관광객은 정해진 경로만 돌아다닐 수 있는데, 전체를 돌아보는 데에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할 정도로 작다.

대신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고양이 무리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내가 갔을 때에도 배에서 내리자마자 언뜻 보기에도 20여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항구로 나와 손님들을 반겼다.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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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들이 간식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고양이들은 선착장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까지 사람을 졸졸 따라오기도 한다. 공터에 도착하면 고양이를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정도로 고양이가 빼곡하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면 '고양이들의 천국'이라는 섬의 별명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섬의 주민들이 고양이들을 내치거나 방치하지 않고 공생하는 존재로 받아들여 주었기에 가능한 풍경이리라.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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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곳은 작은 섬에서 감당할 수 있는 고양이의 묘구 수를 이미 한참 초과했다는 인상이 있었다. 편의점도 없는 곳이니 동물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TNR(길고양이 포획, 중성화, 제자리에 방사)을 통해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주민 수는 20여 명 안팎으로 적고 묘구 수가 수백에 이를 만큼 많다 보니 세심한 케어는 어려울 듯했다.

실제로 눈곱이 잔뜩 끼어 있거나 구내염이 심해 침을 흘리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고양이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육지에서 사료 포대를 보내주기도 하지만, 이 작은 섬에서 사료를 급여하는 것 자체도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섬 고양이의 묘생일지도 모른다. 다만 진정한 '고양이들의 천국'을 위해서는 결국 사람의 개입을 통한 적절한 공존 방법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벚꽃 고양이'를 만난 오기지마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올 봄에는 일본의 소도시 다카마쓰로 봄 여행을 다녀왔다. 다카마쓰에서 배를 타고 40여 분 들어가면 아이노시마와 마찬가지로 고양이 섬이라 불리는 오기지마에 쉽게 갈 수 있다.

오기지마는 언뜻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골목길이 산지에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오르막을 따라 집들이 여러 겹으로 차곡차곡 얽혀 있다. 아이노시마와 마찬가지로 작은 섬이지만 그래도 인구 수가 200여 명 정도로 비교적 많다.
      
고양이 섬 오기지마
 고양이 섬 오기지마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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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내리니 치즈 고양이 두어 마리가 이쪽을 힐끗 보며 게으르게 걸어왔다. 오기지마에서는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여, 미안하지만 줄 것이 없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관광객 근처를 서성이는 고양이 서너 마리를 더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오기지마는 고양이 섬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아이노시마에 비하면 고양이 수가 훨씬 적다. 이날 내가 오기지마에서 반나절을 머물며 만난 고양이는 15여 마리 정도였다. 

대신 곳곳에서 '사쿠라 네코'에 대한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쿠라 네코란 우리말로 벚꽃 고양이, 한쪽 귀 끝이 벚꽃잎처럼 V자 모양으로 잘린 고양이를 뜻한다. 귀를 자르는 것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TNR의 표식이다. 중성화 후 방사된 고양이가 또 다시 포획되지 않도록 귀를 잘라 표시하는 것인데, 일본에서는 一자가 아니라 V자로 잘라 '벚꽃 고양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사쿠라 네코(벚꽃 고양이)의 의미를 설명하는 포스터
 사쿠라 네코(벚꽃 고양이)의 의미를 설명하는 포스터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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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오기지마에서 만난 고양이들 대부분이 TNR 표식으로 귀 한쪽이 잘려 있었다. 길고양이를 중성화해주면 무분별한 번식으로 묘구 수가 증가하는 것을 막아 주민들의 불편과 민원을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수차례의 임신으로 수명이 깎여 나가는 고양이의 건강을 지키고 발정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단순히 중성화 수술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사람과 고양이의 공생에 대한 고민의 일환인 셈이다. 
   
오기지마의 길고양이
 오기지마의 길고양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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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지마의 길고양이
 오기지마의 길고양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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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TNR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해당 마을에서 그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일면을 보고 생태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고양이 수가 지나치게 많지 않아서 오히려 고양이의 케어가 안정적일 수 있을 듯했다. 

한국의 고양이 섬, 적극 환영하지만 

최근 한국에도 전남 고흥군 애도(쑥섬)에 고양이 섬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섬에서 살고 있던 30~40여 마리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며 돌보기 시작했고, 앞으로는 중성화 및 급식소 설치, 건강 체크 등의 공존 문화를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고양이에게 유독 미신과 편견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고양이에게 우호적인 지역을 조성한다는 것은 애묘인으로서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국내에도 기존에 길고양이를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돌보던 지역들이 있다.

일례로 서울 삼선동의 장수마을은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를 시작으로 길고양이를 받아들였다. 원래 길고양이를 돌보던 캣맘, 캣대디들은 더 이상 몰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급식소를 맡아 관리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장수마을은 개체수를 늘리기보다는 기존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과 공존하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서울 강동구에서도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점차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일이 줄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늘어났다. 강동구청 별관에 공식적인 길고양이 쉼터를 설치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길고양이 사업을 지속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장수마을에서는 누군가 일부러 찾아와 고양이에게 쥐약을 먹여 죽인 일이 있었고, 강동구의 길고양이 쉼터에서도 철거를 주장하는 이들과의 갈등이 고조된 바 있다. 

물론 누군가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고양이를 싫어하고 꺼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해서 고양이를 학대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는 엄연한 범죄 행위다. 

이처럼 길고양이와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또 '관광 상품'이 아니라 '생명'으로서의 고양이의 삶을 존중하는 것에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괜한 '고양이 섬' 조성에 대한 우려와 노파심도 생긴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고양이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거나 답답해서 급기야 유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다른 종(種)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많은 책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개인을 넘어서 마을과 섬 전체의 생태를 가꾸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고양이 섬 '쑥섬쑥섬 프로젝트'를 위해 TNR 지원은 물론 여러 동물 단체들과의 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르면 올해 말로 예정되어 있지만, "지속가능한 고양이섬을 만들기 위해서는 2~3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금의 포부대로 '한국의 고양이 섬'이 단순히 고양이를 내세운 관광지가 아니라 고양이의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지속 가능한 공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모범적인 모델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진정한 '고양이들의 천국'이라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 될 수 있기를 말이다. 

태그:#고양이섬, #아이노시마, #오기지마,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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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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